[36.5˚C] '꽃 같은 치매', 당신도 걸릴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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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36.5℃는 한국일보 중견 기자들이 너무 뜨겁지도 너무 차갑지도 않게, 사람의 온기로 써 내려가는 세상 이야기입니다.
"왜 막아야 하죠? 치매 환자들도 자유롭게 돌아다닐 수 있어야죠."(덴마크) "치매 정책을 만드는 데 치매 환자 당사자 이야기를 듣는 게 당연하지 않나요?"(일본) 그들에게 치매 환자는 똑같은 사람이었다.
'꽃 같은 치매'는 당신도 걸릴 수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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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36.5℃는 한국일보 중견 기자들이 너무 뜨겁지도 너무 차갑지도 않게, 사람의 온기로 써 내려가는 세상 이야기입니다.
어르신은 종일 창문만 쳐다보고 계셨다. 작은 방을 가득 채운 커다란 캠핑 의자가 어르신이 머무는 세상의 전부였다. 평생 가구 만드는 일을 하며 가정을 건사해 온 박관영 할아버지(77·가명)의 삶은 치매 이후 지워졌다.
아내가 돈을 벌러 나가면 TV 보는 것 말곤 할 게 없다. "나가고 싶은데 이제 다리가 아파서 못 나가." 할머니는 차라리 다행이라고 했다. "우리 집 양반은 그래도 착한 치매야. 저렇게 얌전히 있으니까 편하죠." 배회 증상이 심한 치매 환자를 찾고 있었기에, 할아버지 사례는 기사에 담을 수 없었다. "그러게요. 다른 분들은 정말 많이 심하신데, 다행이네요."
결과적으로 허탕이 된 취재를 마치고 돌아오는 길, 할머니와 주고받은 말이 계속 마음에 걸렸다. 할아버지에게도 다행인 걸까. 결코 그렇지 않았다. 그는 나가고 싶어 했다. "집에만 있으니까 답답하지. 심심하고." 그럼에도 많은 치매 환자들은 그처럼 갇혀서 생을 마감하고 있다. 좁은 방에서, 홀로 외롭게, 그저 멍하니. 살아도 죽어 있는 삶일지 모른다.
"걱정이에요. 좋은 기획인데 기사 나가면 어르신들에게 안 좋은 방향으로 흘러갈까 봐서요." 치매 실종 문제를 다룬 '미씽, 사라진 당신을 찾아서' 기획을 준비하며 만난 강선옥 강서구치매안심센터 총괄팀장은 우려했다. 실제로 그랬다. 누리꾼들은 치매 실종과 배회의 심각성에 놀람과 동시에 그렇다면 치매 환자들이 더 나가지 못하도록 철저히 가둬야 하는 것 아니냐고 한마디씩 보탰다.
고립은 최악의 대안이지만, 마냥 비난하기도 어렵다. 치매에 걸린 아내를 돌보기 위해 직장까지 그만두고 종일 동네 산책에 나서는 미아동 잉꼬부부의 남편처럼 "아내를 (집 안) 감옥에만 가두거나, 내 삶을 포기하거나" 양자택일을 강요받는 상황에서 어떤 선택을 할 수 있을까. 취재팀 모두 답을 찾지 못하고 '배회'했던 것 같다.
답이 없으면 문제를 바꾸면 됐다. 치매 선진국들은 치매 실종을 막을 대안을 묻는 우리에게 도리어 질문을 던졌다. "왜 막아야 하죠? 치매 환자들도 자유롭게 돌아다닐 수 있어야죠."(덴마크) "치매 정책을 만드는 데 치매 환자 당사자 이야기를 듣는 게 당연하지 않나요?"(일본) 그들에게 치매 환자는 똑같은 사람이었다. 치매 이전과 이후 다르지 않은 삶을 계속 이어 나갔고, 치매 때문에 삶을 멈출 필요도 없었다.
10년 넘게 치매 환자를 돌본 장기중 아주편한병원 부원장은 "꽃 같은 치매"에 걸렸다고 말하는 환자를 만난 적이 있다. 처음엔 욕을 하는 줄 알았으나, 아니었다. '치매도 꽃 같다'고 말할 만큼, 고통을 품어내는 할머니의 삶의 방식, 주변을 유쾌하게 만들었던 삶의 여유가 녹아든 표현이었다. 병만 바라봤다면 지나치고 묻혔을 말. "질병 너머 사람을 바라보자"는 치매 선진국의 철학은 이런 작은 관심에서 시작됐을 것이다. 엑설런스랩이 기획을 마무리하며 치매 인식 개선 캠페인 #기억해챌린지를 시작한 것도 같은 이유였다. 생각을 바꾸지 않으면 아무것도 바뀌는 건 없다.
우리 모두 늙는다. 치매는 누가 아니라 언제 걸리느냐의 문제다. 그러니 치매 환자를 어떻게 대할지, 사회가 더 열린 마음으로 고민을 시작했으면 한다. '꽃 같은 치매'는 당신도 걸릴 수 있으니까.
강윤주 기자 kkang@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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