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계라 억울한 10년 옥살이… “이철수 사건은 잊혀선 안 된다”
아시아계 편견, 재미동포 구명운동 다뤄
하줄리 이성민 감독 "전달돼야 할 이야기"
1973년 6월 3일 미국 샌프란시스코 차이나타운에서 총격 사건이 발생한다. 중국계 갱 1명이 숨진다. 21세 재미동포 청년 이철수씨가 용의자로 체포된다. 이씨는 결백을 주장하나 종신형을 선고받는다. 아시아인 얼굴 구분을 잘 못하는 목격자들의 증언이 결정타가 됐다. 재미동포 이경원 기자가 이 사건을 취재하고 재판에 문제가 많았음을 보도한다. 재미동포 사회는 이씨 구명에 나선다. 훗날 아시아계가 동참하게 되는 ‘프리 철수 리’ 운동이었다.
18일 개봉하는 다큐멘터리영화 ‘프리 철수 리’는 인종차별의 희생자였던 이씨의 삶을 돌아본다. 재미동포 언론인 하줄리ㆍ이성민 감독이 공동 연출했다. 두 감독은 지난달 서울 중구 한국일보 본사를 찾아 영화 제작 과정과 이씨에 대한 이야기를 전했다.
하 감독은 18세 때 인턴기자로 일할 때 이경원 기자에게 이씨 사건을 들었다. 누명을 쓰고 교도소에 갇혔다가 자신을 위협하는 갱을 살해하는 바람에 나락에 떨어졌던 이씨를 석방하려는 아시아계 공동체의 노력은 그의 마음을 흔들기에 충분했다. 하 감독은 “기자가 억울한 사건을 밝혀낸 것에 큰 영감을 받아 언론인의 꿈을 갖게 됐다”고 말했다.
2014년 이씨가 세상을 떠났다. 하 감독은 장례식에서 이 기자와 재회했다. 그는 “감동적이었던 이씨의 이야기가 잊히고 기억되지 않는 것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고 돌아봤다. 재미동포 잡지 코레암 저널 편집장이었던 하 감독은 프리랜서 언론인 이성민 감독에게 영화화를 제안했다. 종종 협업해 서로 잘 아는 데다 비디오 편집 이력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 감독은 “저 역시 역사적 사건이 왜 잊혔는지 의문이 들었다”며 “다음 세대에게 꼭 전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작업은 지난했다. 영화화 착수부터 완성까지 6년 넘는 시간이 걸렸다. 이씨 관련 자료를 찾는 것부터가 난제였다. 하 감독은 “재미동포는 미국 사회에서 워낙 소수집단이라 도서관 등 공공기관조차 디지털화된 자료가 많지 않았다”고 말했다. 이씨 구명운동 당시 방송된 다큐멘터리 관련 영상 자료, 2007년 다큐멘터리 제작을 시도했다가 완성되지 않아 묻혀있던 영상들을 찾으면서 작업은 동력을 받았다. 하 감독은 “제 인생에서 가장 어려운 일이었다”고 털어놓았다. 그러면서도 “잘못된 판결을 받은 사람의 무죄를 밝히고 석방시키는 것보다 어렵겠냐고 생각하며 끝까지 집중해 완성하려 했다”고 덧붙였다.
이씨는 교도소에 있으면서도 당당한 태도를 보여 이민자 사회에 큰 반향을 일으켰다. 12세 때 어머니의 손에 이끌려 미국에 왔다가 적응하지 못하고 불량한 청소년기를 보낸 과거가, 힘겹게 미국사회에 적응하고 있는 동포들의 공감을 얻기도 했다. 이씨 구명운동은 재미동포 사회를 하나로 만드는 구심점이 됐다. 영화 전반부는 당시 이씨를 비롯한 아시아계에 대한 미국사회의 편견, 인권을 바탕으로 한 아시아계의 활동을 조명한다. 보편적인 인간애의 승리가 마음을 뜨겁게 한다.
재심을 거쳐 10년 만에 교도소에서 나온 이씨는 재미동포들에게 영웅대접을 받는다. 영광은 오래 가지 않는다. 그는 잘못된 길에 접어든다. 수감 후유증이 적지 않게 작용했다. 그는 폭력조직에 가담했다가 큰 사건에 휘말리지만 우여곡절 끝에 다시 동포 사회로 돌아온다. 영화 후반부는 이씨의 유년기와 출옥 이후 방황, 회개과정을 되짚는다. 이씨의 출생과정과 성장은 불우했던 한국 현대사를 응축한다. 하 감독은 “이씨가 이경원 기자에게 생전 보낸 편지에서 한국에서 살았으면 좀 더 행복하지 않았을까 물었다”고 전했다.
영화에는 수감 당시 이씨의 심정이 담긴 목소리가 자주 등장한다. 재미동포 서배스천 윤씨가 이씨를 대신해 목소리 연기를 한다. 윤씨는 아시아계 갱단에서 활동하다 살인사건에 연루돼 15년형을 선고받고 12년을 복역했다. 하 감독은 “윤씨는 이씨처럼 불우한 환경에서 자랐고 10대 시절 따돌림을 당했다”며 “재미동포로서의 외로움, 수감 생활 중 느낀 감정 등을 제대로 반영해주리라 기대했다”고 말했다. 그는 “윤씨는 인권단체에서 활동하고 있다”며 “또 다른 철수 같은 사람들이 두 번째 기회를 갖기를 희망한다”고 말했다.
라제기 영화전문기자 wenders@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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