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대 뒤덮은 3500개 십자가… “전통 그대로 보여주는 건 내 방식 아냐”
알렉스 오예, 오페라 ‘노르마’ 연출
1992년 스페인 바르셀로나 올림픽 개막식. 주경기장 한복판에 거대한 선박 모형이 들어왔다. 그리스 신화 속 헤라클레스의 모험을 상징하는 구조물로 파도와 역경을 헤치고 지중해 연안에 무사히 도달한다는 설정이었다. 올림픽 개막식에서 신화와 현실을 맞물린 대담한 구상으로 전 세계 5억명의 시청자를 사로잡았던 주인공이 스페인 연출가 알렉스 오예(63)다. 오는 26~29일 예술의전당에서 열리는 벨리니의 오페라 ‘노르마’ 연출을 맡은 그는 지난달 26일 내한 간담회에서 “오래전이라서 젊은 분들은 기억이 안 나겠지만 당시 개막식이 제 경력의 전환점이 된 것만은 분명한 사실”이라며 웃었다.
오예는 ‘이탈리아 오페라의 종가’로 불리는 밀라노 라 스칼라부터 영국 런던의 로열 오페라하우스까지 세계 명문 극장의 러브콜을 한 몸에 받는 거장. 하지만 역설적으로 본격적으로 오페라에 입문한 건 30대에 이르러서다. 그의 예술적 출발점은 오히려 인형극을 비롯해 연극·마임·무용 같은 다양한 거리극이었다. 오예는 “아마추어 배우였던 아버지를 따라서 일요일마다 보기 시작한 인형극에 빠져서 인형극을 전공했다”고 했다.
1979년 스페인의 비주얼 아트 그룹인 ‘라 푸라 델스 바우스’의 공동 창립 멤버로 들어가면서 세계적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기존 공연장뿐 아니라 폐공장과 폐가(廢家), 거리 같은 다양한 장소에서 이질적 공연 장르들을 결합한 파격적 시도를 선보였다. 당시 이들의 공연 무대에는 도축장과 교도소, 장례식장 등도 포함됐다. 1984년에는 매번 공연마다 완성된 신차를 한 대씩 부수는 과격한 퍼포먼스도 벌였다. 그는 “40여 년의 스페인 군사 독재가 끝난 직후 자유로운 사회적 분위기와 감성을 담으려고 했다. 이 때문에 한 해 동안 250여 대를 부수기는 했지만…”이라며 웃었다.
오페라에서도 마찬가지로 전통적 해석보다는 과감하고 현대적인 연출을 가미하는 것으로 명성이 높다. 이번 ‘노르마’에서도 3500여 개에 이르는 십자가를 무대 전면에 배치해서 강렬한 시각적 이미지를 선사한다. 고대 로마의 원작 배경 대신에 TV와 총이 등장하고 여주인공 노르마는 치마 대신에 바지 정장을 입는 방식이다. 2016년 영국 로열 오페라하우스에서 공연할 당시에도 화제와 논란을 모았던 무대 연출이다. 영국 가디언은 당시 그의 연출에 대해 “충격적이고 도발적이며, 가끔은 아름답지만, 종종 거슬리는 해석”이라고 평했다. 오예는 “200여 년 전의 오페라 작품을 전통적인 방식 그대로 올리는 것에는 큰 관심이 없다. 오늘날의 관객이 교감하고 참여할 수 있도록 현실에 맞게 각색하는 것이 언제나 목표”라고 했다.
Copyright © 조선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North Korea launches SRBMs hours before U.S. presidential election
- 서초 원지·우면동에 2만가구... 수도권 그린벨트 4곳 풀어 5만호 짓는다
- 결혼 축의금 3년새 23% 올랐다…얼마 내야 적당할까?
- “복무 연장하면 4500만원 현금 보너스” 약속한 이 나라
- 대구시, 국가유공자 우선주차구역 확대 나서
- "군생활에 큰힘 됐다" 제대한 손님이 식당에 놓고 간 5만원, 무슨 사연?
- ‘윤 대통령 부부 공천 개입 의혹’ 핵심 명태균, 8일 검찰 조사
- 미국 가는 항공 소포서 의문의 화재… 배후는 러시아 정보기관?
- 공공기관 기관장만 내연차 세단타는 꼼수 사라진다
- 女군무원 살해하고 시신 훼손한 현역 육군 소령 구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