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사일언] 언어의 독재

안톤 허·'저주토끼' 영문판 번역가 2023. 10. 3. 03: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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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동안 ‘올바른 우리말 사용’과 관련된 기사에 단골로 등장하는 오류 사항이 있었는데, 바로 ‘짜장면’의 맞춤법이다. 짜장면은 잘못된 표기법이고 표준어는 ‘자장면’이라는 얘기였다. 당시나 지금이나 짜장면을 자장면이라고 말하는 사람은 텔레비전 아나운서밖에 없었다. 국립국어원은 아주 오랫동안 자장면 단독 표기법을 거의 억지 수준으로 고집해왔고 2011년이 되어서야 자장면과 짜장면을 복수 표준어로 인정했다. 한국인은 타인의 통제에 대해 강한 욕구를 가진 것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 이런 ‘오지랖(참견하는 성향) 정서’가 언어 생활에 나타난 것이 바로 짜장면 표기법 사례가 아닐까 생각한다.

언어는 본래 진화하고 가끔은 국어학자들이 생각하는 방향과 다르게 갈 때가 있다. 이때 언어를 따라갈 생각을 안 하고 그 언어를 통제하려는 것이 언어 권력자들의 본능이다. 반면, 미국의 표준어 사전 격인 메리엄-웹스터 사전은 정책적으로 언어를 통제하려고 하지 않고 묘사하려고만 한다(descriptive, not prescriptive). 즉 언어는 만인의 소유이며 ‘올바른 언어’의 정의는 권력자가 아니라 대중에게 있다는 취지다. 영어는 이만큼 개방적이며 역동적인 셈이다. 우리는 영어를 학교에서만 배우고 사용하다 보니 라틴어처럼 고정된 죽은 언어, 채점을 위한 언어로만 인식해 이를 못 느낄 뿐이다.

물론 표준어의 존재에 이유가 있고, 영어에도 표준어 개념이 없는 것은 아니다. 소통을 위한 도구인 만큼 두 화자 사이 공통어를 가지고 있어야 언어의 본질적 역할이 가능해지기 때문이다. 하지만 언어는 단순히 소통과 통제를 위한 도구만이 아니다. 자기 표현의 도구, 즉 자유를 위한 도구이기도 하다. 자신의 생각을 확인할 수 있어야 자신을 통제하려고 드는 사상들에 대해 비판적이고 회의적으로 접근할 수 있는데, 이러한 접근은 언어에 대한 친밀한 감각 없이는 불가능하다. 독재자에게 가장 위험한 사람은 무기를 가진 사람, 권력을 가진 사람이 아니라 이러한 언어 감각을 가진 사람이다. 독재자가 표현의 자유, 사상의 자유를 가장 먼저 통제하려는 것이 이 사실을 암시한다.

※ 10월 일사일언은 안톤 허를 포함해 에노모토 야스타카 ‘진짜 도쿄 맛집을 알려줄게요’(필명:도쿄네모) 저자, 정희정 2023 조선일보 신춘문예 희곡 당선자, 김희선 약사·소설가, 채길우 시인·제약회사 연구원이 번갈아 집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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