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시각] ‘빅 마우스’가 된 前 대통령
문재인 전 대통령이 퇴임 후 처음 상경한 지난 19일 여의도에선 ‘9·19 평양공동선언’ 5주년을 기념하는 행사가 열렸다. 문재인 정부에서 청와대 비서관, 외교부 차관을 지내며 5년 내내 학교를 비운 교수도 이날만큼은 당일 휴강을 통보하고 자리를 지켰다고 하니 얼마나 많은 사람이 총출동했는지는 두말하면 잔소리다. 전직 총리·여당 대표·장관들이 한마디씩 거들었으니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우리 정부는 ‘평화의 봄’이란 위대한 레거시를 남겼는데 윤석열 정부가 남북 관계를 파탄냈다.”
문 전 대통령도 이날 작심한 듯 독설을 쏟아냈다. 국내총생산(GDP)·환율뿐만 아니라 대중에게 생소한 국가부도위험지수(CDS)까지 들고나와 진보 정부의 ‘우수성’을 역설했다. 야당 대변인이나 친야(親野) 성향 정치 평론가 정도가 할 법한 초식이다. 불편한 진실은 외면하고 ‘우리 편’인 국민만 바라보는 메시지도 그대로였다. “군사적 긴장이 높아져 천안함·연평도 사건이 발생했다”면서도 북한의 일방 도발 때문이라는 언급은 하지 않았다. “문재인 정부 출범 당시의 엄중함이 미측 관계자들 증언에 의해 사실로 확인됐다”면서도 그들의 회고록에 ‘평화의 봄’의 민낯이 어떻게 기술돼 있는지에 대해선 눈을 감았다. 마이크 펜스 전 미국 부통령은 “문 대통령이 나와 김여정의 만남을 강요할 것이 명백했지만 어림도 없는 일”이라고 썼다.
전직 대통령의 퇴임 후 언행에 고개를 갸우뚱했던 적이 적지 않다. 지난 8엔 일본 오염수 방류 문제를 놓고 “한마디 하지 않을 수 없다”며 일개 국회의원과 체급에 안 맞는 설전을 벌였다. 홍범도 장군 흉상 철거, 잼버리 대회 파행 등 현안에 대한 논평도 거침이 없다. 안 그래도 모든 사안에 있어 보수·진보로 갈리는 정치적 내전(內戰) 상황인데 어른 역할이 기대되는 전 대통령까지 야권의 ‘빅 마우스’를 자처하며 국민의 피로감을 가중시키고 있다. 문 전 대통령 주장처럼 그렇게 훌륭한 정권이었다면 왜 1987년 이후 처음으로 5년 만에 정권 교체가 이뤄졌는지 미스터리다.
유튜브에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이 찬송가 ‘어메이징 그레이스’를 부르는 영상이 있다. 2015년 백인 청년의 총기 난사로 숨진 흑인 목사 장례식에 참석해 추모사를 읽던 도중 즉흥적으로 노래를 부르고 희생자 9명의 이름을 하나하나 호명했다. 인종 갈등을 부추겨 정파적 이익을 취하는 대신 무반주 노래로 국민 통합의 메시지를 갈음한 것인데 가장 대통령다웠던(presidential) 장면이라 생각한다. 국가가 세금으로 전직 대통령을 예우하는 이유가 있을 것이다. 문 전 대통령이 지금이라도 국민 모두가 고개를 끄덕일 만한 일들을 찾아 하길 바란다. 위대한 레거시를 남긴 5년이었든 실정(失政)이 이어진 5년이었든 건강한 모습으로 대외 활동이 가능한 전직 대통령의 존재는 소중하고, 정권에 대한 평가는 역사에 맡기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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