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영화 어때]박찬욱을 울린 눈망울, 영화 ‘당나귀 EO’

신정선 기자 2023. 10. 3. 00:05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그 영화 어때 뉴스레터 구독하기 ☞ https://page.stibee.com/subscriptions/275746

안녕하세요, 조선일보 문화부 신정선 기자입니다. ‘그 영화 어때’ 9번째 레터는 3일 개봉하는 영화 ‘당나귀 이오(EO)’입니다. 이 영화를 레터로 보내야할지 말아야할지 고민했습니다. 영화를 보고 나서 그날 내내 마음이 안 좋았거든요. 영화는 분명 수작입니다. 그런데 보고 나면 슬퍼져요. 마음이 정화되는 슬픔과는 다른, 찌르르쿡쿡 찔리는 슬픔. 그렇지만 ‘박찬욱도 울렸다면서 무슨 영화야?’라고 궁금하실 분들이 계실 듯 하여 레터로 보내봅니다.

올해 칸 영화제 심사위원상을 받은 영화 '당나귀 EO'는 생명의 본질을 돌아보게 하는 수작이다.

영화 원제는 이오(‘EO’)입니다. 주인공 당나귀 이름이고요. 참 잘 지었다 싶어요. 보고나서도 귓가에서 계속 ‘이오이오’하면서 울리는데 요정이 외는 주문 같기도 하고 어릴 적 듣던 동요의 후렴구 같기도 하면서 홀리는 기분입니다.

폴란드 영화입니다. 감독은 예르지 스콜리모프스키. 첨 들으셔도 괜찮습니다. 저도 그랬는데 보는 데 아무 지장없었습니다. 영화 수입사에서 ‘영화 역사상 최고의 감독 중 한 명인 로베르 브레송의 걸작 ‘당나귀 발타자르’를 현대식으로 재해석한 작품'이라는데, 모르셔도 상관없습니다. (때로는 지식이 감상을 방해합니다) 이자벨 위페르가 나오는데, 아주 잠시고, 꼭 그녀가 아니어도 되지 않을까 싶을 정도로 크게 인상적이지 않았습니다. 즉, 당나귀가 나온다, 이름이 이오다, 이것만 알고 보시면 됩니다.

제가 제목을 ‘박찬욱도 울린’이라고 달았는데, 이유가 있습니다. ‘이오’는 올해 아카데미상 국제장편영화상 후보에 올랐습니다. 네, 박찬욱 감독의 ‘헤어질 결심’이 아쉽게 떨어진 그 부문입니다. 5편만 올라갈 수 있죠. 아니, 박해일과 탕웨이가 한낱 당나귀에 밀렸단 말인가, 하실 텐데 영화를 보시면 어느 정도 납득이 가실 거에요. 아카데미만 올라간 게 아니고 올해 칸영화제에서 심사위원상과 사운드트랙상도 받았습니다. 폴란드영화상에선 작품상과 감독상 등 6개 부문을 수상했고요.

영화 '당나귀 EO' 중 한 장면. EO에게 유일한 안식은 서커스단 소녀의 다정한 손길, 그 기억이었다.

영화는 한마디로 ‘버려진 당나귀가 개고생 하는 얘기’입니다. 서커스단에 있던 이오는 동물 학대 비난 때문에 서커스단이 해체되면서 세상을 떠돌게 됩니다. 어떻게 살아가야할지 막막합니다. 아무도 없는 허허벌판에서 정처없이 헤매고, 음습한 터널에서 박쥐를 만나 덜덜 떨고, 얼떨결에 시위대에 휩쓸리고, 난데없이 축구장에 쓸려갔다 훌리건에게 얻어맞고 죽다 살아납니다. 세상 가득한 공포와 외로움 한가운데에서 이오가 떠올리는 것은 서커스단 소녀의 손길입니다. 이오이오 부르며 다정하게 등을 쓰다듬어 주던 손길. 이오에게 유일한 위안이었죠.

주인공 당나귀는 진짜 당나귀가 연기(?)했습니다. 6마리가 돌아가면서 맡았는데, 이름이 마리에타, 타코, 홀라, 로코, 멜라, 에토르래요. 당나귀 눈망울이 그렇게 그렁그렁한 줄 영화를 보고 알았습니다.

영화 수입사에서는 “환경과 동물권 문제에 대한 날카롭고 진중한 메시지를 던진다”고 하는데. 글쎄요. 그런 주제가 전부라면 저부터가 레터로 소개할 것 같지 않습니다. 혹시나 ‘당나귀 나오는 동물권 주장 계몽 영화'로 오해하시는 분이 계실까 해서 말씀드려요. 아닙니다.

주인공은 당나귀지만, 가끔은 길 잃은 댕댕이 같기도 하고, 엄마 없는 사이 혼자 놀고 있는 꼬마처럼 보이기도 해요. 살아가는 모든 것, 생명을 가진 모든 존재가 통과하는 삶이라는 혼돈, 낯설고 외로울 수밖에 없는 여정을 보여주는 게 아닐까 싶었어요. 이오에게 소녀의 손길이 있었듯, 나의 안식, 생의 끝까지 간직할 마지막 위안은 무엇일까, 생각해보게도 되죠.

영화를 보다 보면 가련한 저 생명이 어서 안식을 찾길 기원하게 됩니다. 그리고 그 답은.

보시고 나면 마지막 장면이 내내 생각나실 거에요. 어쩔 수 없습니다. 정말 그럴 줄은…

쓰다 보니 다시 마음이 아파지네요. 보라는 건지 말라는 건지 저도 모르겠는 오늘의 레터는 이만 줄이겠습니다. 다음 레터는 발랄한 걸로 준비해야겠습니다. 감사합니다.

그 영화 어때 뉴스레터 구독하기 ☞ https://page.stibee.com/subscriptions/275746

Copyright © 조선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