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민철의 꽃이야기] 박완서 문학관 지으면 꼭 심어야할 꽃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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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 중앙도서관에 고(故) 박완서(1931~2011) 작가의 소장 책과 생전 일기 등을 전시하는 ‘박완서 아카이브’가 들어선다고 합니다. 2024년 2학기 이전까지 관악캠퍼스 중앙도서관 2층에 약 99㎡(30평) 규모로 만들어 일반인들도 관람할 수 있게 할 예정이라고 합니다. 고인은 1950년 서울대 국문과에 입학했지만 곧바로 6·25가 터지면서 학교를 중퇴했는데 2006년 서울대에서 명예문학박사 학위를 받은 인연이 있습니다.
◇주요 작가 중 박완서만 문학관 없어
박완서 아카이브가 생기는 것은 좋은 일입니다. 그러나 한편으로 아쉬움도 적지 않습니다. 박완서는 그 어느 작가 못지않게 국민의 사랑을 받는 작가인데 문학관 또는 기념관이 아니라 아카이브 형태이기 때문입니다. 이미 구리 인창도서관에 아카이브 형태의 박완서자료실이 있기도 합니다.
‘토지’의 작가 박경리의 경우 원주시 단구동 옛 집터에 박경리문학공원, 작가가 말년을 보낸 원주시 흥업면 매지리에 토지문화관, 경남 하동 최참판댁에 박경리문학관, 고향인 경남 통영에 박경리기념관 등 문학관·기념관이 4개나 있습니다. ‘태백산맥’, ‘아리랑’, ‘한강’의 작가 조정래의 경우도 전남 보성에 태백산맥문학관, 전북 김제에 아리랑문학관이 있고, ‘혼불’의 최명희도 고향인 전북 전주에 최명희문학관, 소설의 배경인 남원에 혼불문학관이 있습니다. 이밖에도 황순원의 소나기마을(경기도 양평), 경북 경주의 동리·목월문학관, 강원도 봉평의 이효석문학관, 춘천의 김유정문학촌, 부산 금정의 요산김정한문학관, 경남 하동의 이병주문학관, 전북 군산의 채만식문학관 등에서 보듯 웬만한 작가들은 문학관을 갖고 있습니다.
그런데 박완서와 같이 역작을 많이 남겼고 국민의 사랑도 받는 작가의 문학관이, 별세 후 12년이 지나도록 만들어지지 않았다는 것은 잘못된 일이고 부끄러운 일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문학관은 주로 작가 고향에서 만드는 경우가 많은데 박완서 작가는 고향이 이북(경기도 개풍)이라는 점이 주로 작용하지 않았나 싶습니다. 또 작가의 출신 대학이나 책을 주로 낸 출판사에서 추진하는 경우도 있는데 박완서 작가의 경우 이마저도 여의치 않은 것 같습니다.
가장 추진하기 좋은 곳은 구리시일 것입니다. 작가가 1998년부터 2011년 별세할 때까지 구리 아치울마을에서 살았고, ‘저문 날의 삽화’ 등 1980년대 작품부터 구리 아치울마을이 배경으로 등장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입니다. 구리시도 박완서문학관을 추진해 설계도까지 마련한 적이 있습니다. 그러나 시장이 바뀌면서 사업비 증가 등을 이유로 흐지부지해 안타까울 따름입니다. 구리시에 박완서문학관을 만들면 시민들의 자긍심과 시의 문화적 가치가 올라가고 관광 측면에서도 상당한 도움을 줄 텐데 무산시킨 이유를 납득하기 어렵습니다.
◇분꽃·싱아·능소화, 기념관 지으면 심어야할 꽃들
머지않아 박완서문학관이 생길 것으로 믿습니다. 박완서 문학관을 지으면 정원·화단에 어떤 꽃을 심어야할까요. 저는 분꽃, 싱아, 능소화, 박태기나무는 꼭 심어야한다고 생각합니다.
박완서 작가는 2002년 한 독자모임에서 “무슨 꽃을 좋아하느냐”고 묻자 분꽃이라고 했습니다. 왜 분꽃을 가장 좋아하는지 궁금했지만 더 이상 설명은 없었습니다. 다만 작가가 분꽃에 친근감을 느끼며 이 꽃을 특별히 여긴 것은 확실합니다. 산문집 ‘두부’에서 작가는 구리 노란집으로 이사한 해, 심지도 않았는데 분꽃이 여봐란 듯이 모습을 드러냈다고 반가워했습니다. 그러면서 “내 아득한 유년기로부터 나를 따라다니다가 이제야 겨우 현신(現身)할 자리를 얻은 것처럼 느껴져 반갑기도 하고 측은하기도 했다”며 “오랜 세월 잊고 지냈지만 분꽃은 나하고 가장 친하던 내 유년의 꽃”이라고 했습니다.

작가는 또 ‘그대 아직도 꿈꾸고 있는가’ 등 소설과 여러 글에서 어릴 적 분꽃이 피는 것을 지켜본 일화를 소개하면서 “사람도 너무 눈독이나 손독이 들면 아무리 좋은 자질을 갖고 태어나도 제대로 꽃피기 어렵다”는 점을 강조했습니다.
그 다음 싱아는 이제 박완서 소설의 상징과도 같은 식물입니다.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에서는 싱아가 여덟 살 소녀의 고향에 대한 그리움을 상징하고 있습니다. 이 소설 덕분에 이제 싱아를 잘 모르는 국민은 있을지 몰라도 싱아를 들어보지 못한 국민은 거의 없을 것 같습니다.

작가는 산문집 ‘꼴찌에게 보내는 갈채’에서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에 싱아란 소리는 네 번 밖에 안 나오는데 왜 그런 제목을 붙였느냐는 질문을 받은 적이 있다”며 “싱아가 중요한 건 아니다. 산딸기나 칡뿌리, 새금풀(괭이밥)로 바꿔 놓아도 무방하다”고 했습니다. 그러면서 “내가 말하고 싶은 건 자연에 순응하는 사람에서 거스르고 투쟁하는 삶으로 넘어가는 과정에서 받은 문화적인 충격이랄까 이질감에 대해서다. 나는 아직도 그런 이질감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고 했습니다.
능소화와 박태기나무 꽃은 박완서가 꽃에 대한 묘사, 특히 꽃을 주인공 성격이나 감정에 이입(移入)하는 방식이 얼마나 탁월한지 보여주는 대표적인 꽃이기에 문학관 화단에 꼭 심었으면 좋겠습니다. 능소화는 ‘아주 오래된 농담’에서 여주인공 현금처럼 ‘팜므 파탈’ 이미지를 갖는 꽃입니다. 소설에서 능소화를 ‘분홍빛 혀’, ‘장작더미에서 타오르는 불꽃’에 비유하는 등 화려하기 이를 데 없습니다. 이 소설에 나오는 능소화 표현이 워낙 강해서인지, 인터넷이나 소셜미디어에서 능소화 사진에 ‘박완서 소설에 나오는 꽃’이라는 표현이 종종 보입니다.

박태기나무 꽃은 ‘친절한 복희씨’에 나옵니다. 이 소설만큼 박태기나무꽃 특징을 잘 잡아내 묘사한 소설을 보지 못했습니다. 주인공 할머니는 결혼 전 가게에서 식모처럼 일할 때, 가게 군식구 중 한 명인 대학생이 자신의 거친 손등을 보고 글리세린을 발라줄 때 느낀 떨림의 기억이 있습니다.
<나는 내 몸이 한 그루의 박태기나무가 된 것 같았다. 봄날 느닷없이 딱딱한 가장귀에서 꽃자루도 없이 직접 진홍색 요요한 꽃을 뿜어내는 박태기나무. 내 얼굴은 이미 박태기꽃 빛깔이 되어 있을 거였다. 나는 내 몸에 그런 황홀한 감각이 숨어 있을 줄은 몰랐다.>

버스 차장을 목표로 상경한 순박한 시골 처녀가 처음 느낀 떨림을 박태기꽃에 비유해 어쩌면 이렇게 생생하게 그릴 수 있을까요. 작가의 이 표현으로, 박태기나무 꽃은 화단의 흔하디흔한 꽃에서 문학적인 상징을 갖는 꽃으로, ‘황홀한 감각’을 숨긴 꽃으로 다시 태어났습니다.
부디 빠른 시일 내에 박완서 문학관이 생기고 그 정원에 작가가 좋아한 꽃들, 박완서 문학에서 주요 소재 또는 상징으로 나온 꽃들이 가득 피어있는 모습을 보았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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