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세를 피하고 싶어서[2030세상/박찬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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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어릴 때부터 전세 제도를 이해하기 어려웠다.
왜 내가 돈을 맡기면 공짜로 살 수 있는가? 남의 목돈을 맡아주고 집을 빌려주는 사람은 뭐가 좋은가? 옛날 사정을 듣고 정황을 알았다.
보통은 돈을 모으고 전세자금대출을 더해 도시 곳곳의 신축(에 가까운) 원룸에 거주하며 주택청약을 노리다가 당첨되면 그 집을 구매한다.
싼 만큼 집이 낡고 집주인이 특이해서 돈을 써 수리를 하며 집주인의 눈치를 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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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이 사정을 알고 전세로 살지 않기로 결심했다. 일단 복잡한 구조의 거래가 별로였다. 사면 사는 거고 빌리면 빌리는 거지, 거래가 복잡해질수록 그 사이 구멍을 노리는 뭔가가 있다는 게 내 세계관이다. 게다가 지금은 저성장시대다. 어느 은행도 연이율 20%를 주지 않는다. 전세대출자금도 원치 않았다. 복잡한 구조의 거래를 좋아하지 않으니까. 내 수입은 뻔하고 물려받을 게 없어도 월세에 익숙해져야 한다고 결론 내렸다. 좋든 싫든 도시 생활비의 일부로.
난 본의 아니게 한국형 주거 표준에 역행한 셈이 됐다. 보통은 돈을 모으고 전세자금대출을 더해 도시 곳곳의 신축(에 가까운) 원룸에 거주하며 주택청약을 노리다가 당첨되면 그 집을 구매한다. 어찌 되든 인테리어는 못 하나 박지 않는 ‘오늘의집’ 풍이다. 나는 다 원치 않았다. 누가 정한지도 모르는 ‘대세 가성비’에 따라 살려고 대학 교육까지 받은 게 아니었다. 일부 비효율이 있어도 내가 납득한 방식으로 살고 싶었다.
뭐든 표준에서 벗어나면 대가가 따르고 나도 그랬다. 독립한 첫 집은 월세가 저렴한 단독주택이었다. 싼 만큼 집이 낡고 집주인이 특이해서 돈을 써 수리를 하며 집주인의 눈치를 봤다. 살아 보니 낡은 집과는 잘 맞았는데 이 주인과는 오래 살 수 없을 것 같았다. 그래서 집을 샀다. 나는 부자가 아니다. 선대께 받은 것도 없다. 그 집은 ‘서울에 이런 집이 있나’ 싶을 정도로 낡고 좁은 집단주택이라 한참 동안 거래가 이루어지지 않았다. 지지난 정부 때라 집도 저렴했고 대출도 잘 나왔다. 다만 모두의 만류 혹은 이상한 사람으로 보는 시선이 좀 있었다. 그 정도야 뭐. 나는 그 집이 좋았다.
그 후 일들은 아시는 대로다. 집값이 폭등해 한국 역사상 없을 것 같던 전세 멸종설이 나오기 시작했다. 움직이지 않던 금리 상승에 맞춰 물가도 올랐다. 전세 사기도 대단했다. 나는 그동안 집을 고치고 있었다. 역시 돈이 모자라 내가 주요 업자들을 찾고 악성 재고 건자재를 샀다. 본업과 병행했으니 시행착오 가득에 돈도 생각보다 더 썼다. 아깝지 않았다. 모든 배움은 대가를 치른다는 걸 이제는 알기 때문이었다.
전세를 피하려 시작한 일들이 몇 가지 나비효과를 불렀다. 전세를 피했으니 전세 사기에서 자유로웠다. 아무도 안 사던 집을 싸게 산 덕에 집값 폭등 시대에도 살던 동네에 살 수 있었다. 아울러 내가 새로 꾸민 헌 집의 일부가 지금 광주디자인비엔날레에 전시 중이다. 헌 월세방을 고친 과정을 책으로 냈는데, 큐레이터께서 그걸 보고 ‘당신의 취향이 담긴 거주 공간을 전시하고 싶다’는 제안을 주셨다. 아직 덥던 9월 초 이름부터 거시기한 광주비엔날레 거시기홀에서 전시 설치를 마무리하며 생각했다. 역시 사는 건 모를 일이었다.
박찬용 ‘아레나 옴므 플러스’ 피처 디렉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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