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제예산 반토막, 독서사업도 5분의 1로… “지원줄어 문화계 타격”[인사이드&인사이트]
문학나눔도서보급 전액 삭감… 지역 영화문화 활성화 예산 폐지
‘윤석열차’ 논란 기관 예산 절반… 문체부 “비효율-부정 수급 정리”
“중소 출판·콘텐츠 예산 신설”… “문화계와 소통 부재 심각” 우려
8월 29일 문화체육관광부가 발표한 예산안에 따르면 문화예술 예산은 올해 2조3140억 원에서 내년 2조2704억 원으로 436억 원(1.9%) 줄어든다. 문체부 전체 예산안이 올해 6조7408억 원에서 내년 6조9796억 원으로 2388억 원(3.5%) 늘어난 것과 대조적이다. 문체부가 세부 예산안 전체를 공개하진 않았지만 삭감 폭이 큰 분야에선 “문화산업의 기초 체력을 약화시킬 것”이라는 우려가 나온다. 반면 문체부는 “비효율적 사업을 정리하는 등 정책적 판단에 따른 것이고, 콘텐츠 예산은 오히려 1250억 원 늘렸다”는 입장이다.》
● “출판 예산 62억 원 줄어” vs “중소출판사 육성 예산 신규 편성”
반발이 큰 대표적인 분야가 출판계다. 한국출판인회의와 한국서점조합연합회, 한국작가회의 등 출판 단체들은 “정부가 지원하는 출판 예산은 올해 529억 원이지만 내년 예년은 62억 원(12%) 줄어든 467억 원에 불과하다”며 반발하고 있다. 특히 출판 단체들은 문체부 산하 공공기관인 한국문화예술위원회가 연간 520종의 문학 도서를 선정·구입해 도서관에 배포하는 ‘문학나눔 도서 보급 사업’ 예산이 올해 20억 원이었지만 내년엔 아예 편성되지 않았고, 동아리와 이동식 도서관 등을 지원하는 ‘국민독서문화증진 지원 사업’은 올해 60억 원 규모로 예산이 편성됐지만, 내년엔 12억 원으로 줄어든다고 밝혔다.
이광호 한국출판인회의 회장은 “올 5월 온라인 서점 알라딘 전자책(e북) 해킹 사건과 지속적인 독서 인구 하락으로 출판 시장이 어려운 상황”이라며 “영화, 드라마 등 타 분야로 지식재산권(IP) 활용 가능성이 높은 출판에 대한 지원이 줄어든다면 한국 문화산업의 뿌리가 흔들릴 것”이라고 했다.
반면 문체부는 우수 중소출판사 육성 예산 30억 원을 새로 편성했다는 입장이다. 또 내년 예산을 없앤 ‘문학나눔 도서 보급 사업’은 비문학 도서를 선정·구입해 도서관에 배포하던 기존 세종도서 지원 사업으로 통합 운영할 계획이라고 반박했다. 김성은 문체부 출판인쇄독서진흥과장은 “‘국민독서문화증진 지원 사업’ 예산이 줄어든 건 보조금 부정 수급 사례가 발견됐기 때문”이라며 “장애인의 차별 없는 독서 기회 보장을 위한 예산 12억 원도 새로 편성했다”고 밝혔다.
● “영화제 예산 반 토막” vs “영상 투자 예산 대폭 확대”
문체부와 영화진흥위원회에 따르면 ‘국내외 영화제 육성’ 예산은 올해 56억 원에서 내년 28억 원으로 반 토막 났다. ‘지역 영화 문화 활성화 지원’ 예산은 올해 12억 원이지만 내년엔 폐지된다. 56개 영화제가 참여한 ‘국내개최영화제연대’는 지난달 14일 성명서를 내고 삭감 철회를 요구했다. 영화제연대에 참여한 서울독립영화제의 김동현 집행위원장은 “지금의 1000만 감독들 역시 10년 이상 작은 영화제에서 작품을 선보였던 이들”이라며 “작은 영화제에서 이런 과정을 거쳐야 다음 작품을 만들 동력과 네트워크가 생긴다. 예산 삭감은 안 그래도 부족한 한국 영화의 다양성을 더 해칠 것”이라고 했다.
반면 문체부는 지역 영화제 지원은 원칙적으로 지방자치단체의 역할이라는 입장이다. 그동안 지역 영화제가 난립한다는 지적이 있었던 만큼 ‘국내외 영화제 육성’ 예산 지원 대상을 기존 40개 영화제에서 20여 개로 줄여 경쟁력 있는 영화제를 지원하겠다는 것. 강민아 문체부 영상콘텐츠산업과장은 “한국 영화 투자·제작 활성화를 위한 영상전문투자조합 출자 예산을 올해 80억 원에서 내년 250억 원으로 늘린다”며 “온라인 동영상 서비스(OTT)를 비롯해 영화, 드라마 등 투자 대상에 제한이 없는 ‘콘텐츠 전략펀드’ 예산 450억 원도 신설한다”고 했다.
● “‘윤석열차’ 논란 맞물려 삭감” vs “부진 사업 예산 줄인 것”
일각에선 ‘미운털’이 박힌 곳의 예산을 줄였다는 의견이 나온다. 한국만화영상진흥원에 따르면 진흥원에 대한 내년 문체부 예산은 60억 원으로, 올해(116억 원)보다 56억 원 줄어 거의 절반이 됐다. 진흥원의 만화산업 전문교육 인력 양성 사업과 만화 교육을 지원하는 웹툰창작체험관 사업은 예산이 모두 삭감됐다. 문체부는 진흥원 사업과 상당 부분 겹치는 ‘웹툰산업 전문인력 교육 사업’을 직접 하는 사업으로 신설해 20억 원을 배정했다. 이에 대해 비슷한 분야에 지원할 예산을 진흥원에서 뺐다는 지적이 나온다.
진흥원은 지난해 주최한 전국학생만화공모전에서 한 고교생이 그린 만화 ‘윤석열차’가 금상을 받으며 논란이 됐다. 만화는 윤석열 대통령의 얼굴을 기차 전면에 그렸고, 부인 김건희 여사를 연상시키는 인물과 칼을 휘두르는 검사들이 기차에 탄 모습을 담았다. 공모전을 후원한 문체부는 학생 대상 공모전에서 정치적 내용을 담은 작품은 다루지 않기로 한 후원 조건을 위반했다고 진흥원에 경고했다. 한 만화계 관계자는 “진흥원 예산 삭감은 정부 기조와 맞지 않는 창작자, 단체에 불이익을 줄 수 있다는 메시지로 비칠 수 있다”며 “논란이 있었던 사안인 만큼 예산안 책정에 좀 더 신중하게 접근했어야 한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문체부는 비효율적 사업을 정리했을 뿐이라는 입장이다. 박현경 문체부 대중문화산업과장은 “지역웹툰캠퍼스 사업 등 투입 대비 효과가 부진한 사업의 예산을 줄인 것”이라며 “만화 출판 지원, 만화 콘텐츠 다각화 지원, 수출 작품 번역 지원 사업에선 부정 수급 사례가 발견돼 예산을 삭감했다”고 했다.
● “문화계와 소통부터 해야”
일각에서는 꼭 필요한 분야를 제외하면 정부의 창작자에 대한 직접 지원은 줄이고, 취약계층 등 국민의 문화 향유를 보조하는 간접 지원 방식으로 전환하는 것이 옳다는 의견도 나온다. 정부가 창작자를 직접 지원하면 필연적으로 배제되는 이들이 생기기에 ‘문화계 블랙리스트’ 논란이 일 수 있는 단초를 제공한다는 것이다. 한 출판계 관계자는 “독립출판, 독립영화 등 일부 분야를 제외하곤 문화 역시 상업성을 고려해야 한다”며 “문화계가 수익성을 높여 자립하는 방향으로 유도하는 것이 옳다”고 했다.
근본적으로 정부와 문화계의 소통 부재가 가장 큰 문제라는 지적이 나온다. 앞서 8월 문체부는 서울국제도서전 회계 보고 과정의 문제를 발견했다며 윤철호 대한출판문화협회 회장과 주일우 서울국제도서전 대표에 대해 경찰에 수사를 의뢰했다. 문화계에선 실제 문제가 있는지를 떠나 수사 의뢰까지 할 사안은 아니었다는 의견이 우세하다.
이동연 한국예술종합학교 한국예술학과 교수는 “정부가 문화예술인들에게 예산안을 설명하려는 시도가 부족했다. 다양한 행위자가 참여하고 소통하는 방식을 통해 정부에 대한 문화예술계의 불신을 없애려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호재 기자 hoho@donga.com
최지선 기자 aurink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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