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대결 승리…전지희-신유빈 21년 만에 '금빛 미소'

김지한 기자(hanspo@mk.co.kr) 2023. 10. 2. 23: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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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저우 아시안게임 탁구 여자 복식 금메달 쾌거
2년 반 호흡, 여복 세계 1위
北 차수영-박수경 4대1 제압
中 2개 조 탈락 행운도 따라
신, 지난해 수술 두 번 슬럼프
단체전 눈물 씻고 환한 웃음
전, 귀화 12년 만에 결실 맺어
"한국서 제2 인생, 좋은 성과"
2일 중국 항저우 궁수 캐널시티 스포츠파크 체육관에서 열린 19회 항저우 아시안게임 탁구 여자 복식 결승전에서 북한 차수영-박수경을 이기고 금메달을 획득한 전지희(왼쪽)-신유빈이 포옹하며 기뻐하고 있다. 연합뉴스

녹색 테이블에서 남북이 아시안게임 금메달을 놓고 맞섰다. 체육관 한편에 나란히 위아래로 앉은 남북한 선수들 사이에서는 팽팽한 긴장감이 흘렀다. 그러나 탁구 여자 복식 세계 1위 신유빈-전지희는 강했다. 북한의 신예 차수영-박수경을 경기 내내 압도했다. 금메달을 확정 짓는 마지막 포인트를 확보하자 신유빈과 전지희는 서로 진하게 안으면서 자축했다. 21년 만에 한국 탁구가 아시안게임에서 금메달을 획득한 순간이었다.

신유빈-전지희는 2일 중국 항저우 궁수 캐널시티 스포츠파크 체육관에서 열린 아시안게임 탁구 여자 복식 결승에서 차수영-박수경을 4대1로 누르고 금메달을 획득했다. 2002년 부산 아시안게임 여자 복식 이은실-석은미 이후 21년 만에 한국 탁구가 아시안게임에서 수확한 금메달이었다.

신유빈-전지희는 한국 탁구 간판 복식 조합이다. 도쿄올림픽을 앞둔 2021년 3월 둘은 처음 여자 복식조로 호흡을 맞췄다. 왼손잡이 전지희와 오른손잡이 신유빈의 조합은 2년 반 동안 각종 국제대회에서 경험을 쌓으면서 크게 성장했다. 2021년 아시아선수권 우승으로 첫 성과를 냈던 둘은 지난 5월 세계선수권에서 준우승을 차지하면서 자신감을 얻었다.

이번 대회에서는 행운도 따랐다. 천멍-왕이디, 순잉샤-왕만위 등 중국 2개 조가 8강에서 탈락했고 신유빈-전지희는 거침없이 올라왔다. 16강에서 북한의 김금영-변송경, 8강에서 대만의 전즈여우-황이화를 누른 뒤 4강에서 '난적' 하리모토 미와-키하라 미유를 4대1로 물리치고 결승에 올랐다.

국제대회 경험이 없어 공식 세계랭킹이 없는 북한의 차수영-박수경은 베일에 싸인 조합이었다. 그러나 차수영-박수경은 8강에서 홍콩 간판 두호이켐-주청주를 3대2로 눌러 만만치 않은 실력을 뽐냈다.

아시안게임 탁구에서 남북이 결승을 치른 건 1990년 베이징대회 남자 단체전(한국 승) 이후 33년 만이었다. 그래도 경험이 풍부한 신유빈-전지희는 줄곧 리드를 지켰다. 1·2게임을 따내면서 주도권을 쥔 둘은 3게임을 내줬지만 4게임을 듀스 끝에 가져오면서 흐름을 끌어왔다. 이어 5게임에서 쉽게 승리한 뒤 금메달을 획득했다.

신유빈과 전지희 각자에게도 이번 금메달은 뜻깊다. 어린 시절부터 방송 프로그램을 통해 '탁구 영재'로 주목받은 신유빈은 2019년 당시 만 14세11개월16일의 나이로 최연소 탁구대표팀 멤버에 발탁됐다. 2021년 도쿄올림픽에도 출전하며 성장을 이어가던 그는 그해 11월 세계선수권 도중 오른쪽 손목 피로골절 부상으로 기권하고서 슬럼프를 맞이했다. 신유빈은 지난해에만 손목 수술을 두 차례 받았고 공을 치기도 힘들 만큼 트라우마를 겪었다.

항저우 아시안게임이 지난해 예정대로 열렸으면 나서지 못하는 상황이었다. 그러나 코로나19 대유행으로 1년 연기돼 기회가 생겼다. 신유빈은 국가대표 선발전을 통해 다시 태극마크를 달았고 항저우 아시안게임에서 맹활약했다. 단체전에서는 준결승 일본전에서 2경기를 모두 패해 눈물을 흘렸다. 그래도 그는 훌훌 털고 개인 단식과 혼합 복식에서 동메달을 획득한 뒤 여자 복식에서 마침내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탁구 여자 복식에서 금메달을 차지한 한국 전지희-신유빈(오른쪽)이 은메달을 딴 북한 차수영-박수경(왼쪽)과 시상대에 올라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신유빈은 경기 후 "아시안게임을 경험하는 모든 과정이 신기했는데 금메달까지 따내 더 신기하게 다가왔다"면서 "원래 난 이 자리에 없었다. 그래도 운 좋게 행운이 찾아와 경기를 뛸 수 있는 것만으로 감사했다. 그런데 성적도 잘 나와 잊지 못할 첫 아시안게임이 됐다"고 돌아봤다. 신유빈은 대회 내내 생글생글 웃고 신나게 춤추는 세리머니로 분위기 메이커 역할을 톡톡히 했다. 특유의 긍정 마인드대로 그는 시상대에 오르면서 전지희와 함께 하트 세리머니를 선보이며 활짝 웃었다. 신유빈은 "세리머니는 지금 아니면 언제 해보겠는가. 준비했던 세리머니를 보여줄 수 있어서 기뻤다"며 미소지었다.

전지희는 '귀화 국가대표'로서 한국에서 아시안게임 금메달로 결실을 맺었다. 중국 허베이성 랑팡시 출신인 그는 중국 청소년 국가대표까지 지낸 기대주였다. 그러나 경쟁자들에 밀리던 그는 2011년 김형석 당시 포스코에너지 감독의 권유로 새로운 기회를 찾기 위해 한국으로 귀화했다. 다만 우여곡절도 이어졌다. 국내에서는 최강자였지만 올림픽이나 세계선수권 등 굵직한 국제대회에서 큰 성적을 내지 못했다. 지난해부터는 무릎 부상 때문에 힘든 시기도 겪었다. 그러나 복식에서 신유빈과 조화를 이루고서 기량이 만개한 전지희는 항저우 아시안게임에서 금메달을 획득하고 꿈을 이뤘다.

전지희는 "중국에서 내가 수준이 떨어지면서 더 높은 자리에 못 올라갔다. 그런데 한국에서 다시 탁구 인생을 맞이할 기회를 줘서 제2의 인생을 출발할 수 있었고 좋은 성과를 낼 수 있었다"고 말했다. 그는 파트너인 신유빈을 향해서도 "작년부터는 몸이 안 좋았고 여러 가지 상황이 있었다. 올해 출발도 안 좋았다. 세계선수권부터 '다시 해보자'는 마음이었는데 잘 마쳤다. 유빈이에게 정말 고맙다"고 밝혔다.

아시안게임 금메달을 함께 이룬 둘은 이제 내년 파리올림픽을 노린다.

신유빈은 "지금처럼 하던 대로 내년 파리올림픽에 나가서도 후회 없는 경기를 만들도록 다시 노력하겠다"고 힘줘 말했다. 전지희는 "유빈이와 꼭 다시 같이 나가서 메달을 따고 싶다"고 다짐했다.

[항저우 김지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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