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안게임] 종목 바꿔 41세에 첫 출전·은메달…쿠라시 대표 김민규의 여정
(항저우=연합뉴스) 최송아 기자 = 2일 2022 항저우 아시안게임 남자 90㎏ 이하급에서 준우승하며 한국 쿠라시에 사상 첫 은메달을 안긴 김민규는 1982년생으로 올해 마흔한 살이다.
유도 선수로 태극마크까지 달았던 그는 2005년 세계선수권대회에서 김재범 등과 단체전 우승을 합작했고, 2007년 하계 유니버시아드 대회에서는 개인전 은메달을 목에 걸기도 했다.
하지만 아시안게임이나 올림픽 등 메이저 국제 종합대회 무대는 밟지 못한 채 선수 생활을 마쳤다.
이후 2018년께 시작한 쿠라시는 '체육인'으로 그의 삶에 전환점이 됐다. 쿠라시는 유도와 비슷한 우즈베키스탄의 전통 무술로, 우리나라엔 아직 유도 선수 출신을 위주로 소수 인원만 하고 있다.
쿠라시가 처음으로 아시안게임 정식 종목이 된 2018년 자카르타·팔렘방 대회를 앞뒀을 때부터 대표 선발전 문을 두드렸으나 출전하지 못한 김민규는 5년을 더 준비한 끝에 이번 대회에 나섰다.
이번 대회를 앞두고도 선발전을 통과한 뒤 대회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여파에 1년 연기되고, 갑작스럽게 생긴 참가 연령 제한에 한 살 차이로 걸려 출전이 불발될 위기에 놓이는 등 여러 고비를 넘겨야 했다.
은메달을 목에 걸고 연합뉴스와 만난 김민규는 "1983년생 이하로만 출전하도록 연령 제한이 생긴다고 해서 못 뛸 뻔했다. 그걸 풀려고 많이 노력했고, 결과적으론 풀려서 출전할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어렵게 출전한 이번 대회에서 그는 경기마다 최소 10살 어린 선수들과 경쟁했다.
이날 8강전에서 꺾은 아즈말 이샤크 자이(아프가니스탄)는 1992년생이었고, 준결승에서 맞붙은 타지키스탄의 카크나자르 나자로프는 김민규보다 15살이나 적었다.
나자로프와 접전 끝에 우세승을 거둔 김민규는 곧장 이어진 결승전에서는 무려 20년 차이인 2002년생 사데그 아자랑(이란)과 만났다.
조카뻘 선수들과 연이어 상대하며 선전을 펼쳤지만, 막판엔 힘이 떨어진 그는 결국 생애 첫 아시안게임 메달을 은빛으로 갖게 됐다.
김민규는 "핑계이긴 하지만, 아무래도 나이가 있다 보니 쉬는 시간이 없이 결승전에 들어가며 회복이 느렸다. 준결승전은 어떻게 할지 많이 생각하고 들어갔는데, 결승전에선 아무 생각이 없었다"며 아쉬워했다.
이어 "쿠라시를 알리고자 꼭 역사적인 첫 금메달을 따고 싶었는데, 결승전에서 너무 아무것도 하지 못해서 아쉽다"고 말했다.
여러 차례 아쉬움을 곱씹었지만, 그의 도전 덕분에 쿠라시는 아시안게임 사상 첫 결승 출전과 은메달을 얻었다.
정식 종목으로 도입된 자카르타 대회 땐 입상자를 내지 못한 한국 쿠라시는 지난달 30일 남자 66㎏ 이하급 권재덕과 남자 90㎏ 초과급에서 정준용이 동메달을 획득한 데 이어 은메달까지 나와 이번 대회 약진을 보였다.
"유도 선수로 은퇴하기까지 연금 점수가 부족해 연금 점수를 따고 싶었던 것도 도전의 이유였다"고 너스레를 떨기도 했지만, 김민규는 "가만히 있으면 안주하게 되니까, 도전하고 싶었다. 할 수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었다"고 말했다.
첫 아시안게임이 이제 막 끝났는데, 그는 '마지막'이라는 단어도 꺼냈다.
"체력이 뒷받침되면 조금 더 하고 싶은데, 이번에 너무 힘들었다. 나이가 나이인지라 예전에 운동할 때보다 체력이나 정신적으로 두 배는 힘들다"면서 "금메달을 딸 만한 정도까지 끌어 올리려면 시간을 투자해야 하는데, 선수 생활에 전념하는 것이 아니다 보니 그 정도의 시간을 투자하지 못할 것 같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그는 "이제 다음 아시안게임 땐 쿠라시를 더 잘하는 사람이 많이 나올 거로 생각하고, 저는 지도자로 가야 하지 않을까"라고 덧붙였다.
경기도 하남에서 유도 체육관을 운영하는 김민규는 유도와 쿠라시를 모두 가르치며 양쪽의 가교 구실을 하고 싶다는 포부를 드러냈다.
"유도와 쿠라시는 형제 같은 관계라고 생각한다"고 양쪽 모두 애정을 드러낸 그는 "선수들을 키워서 엘리트 쪽으로 보내 제 제자가 아시안게임이나 올림픽에 나갔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전했다.
songa@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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