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퇴하는 루퍼트 머독, 그의 미디어 제국이 남긴 것
민주주의 훼손부터 외설, 사생활 침해 논란까지
가감없는 평가 내놓은 가디언·네이션
머독 그룹의 WSJ "지지자와 비판자로부터 양면 평가"
[미디어오늘 김예리 기자]
뉴스코퍼레이션(뉴스코프)과 폭스 회장이자 소유주인 루퍼트 머독이 70년 만에 회장직에서 물러나겠다고 밝힌 것을 두고 영어권 외신이 머독의 유산에 대한 가감 없는 평가를 줄이어 내놓았다. 그가 세운 '미디어제국'이 뉴스방송과 정치권의 문법을 완전히 뒤바꿔놓고, 각 나라에서 민주주의를 돌이킬 수 없이 훼손했다는 평이다.
머독은 지난달 21일 직원들에게 뉴스코프와 폭스 코퍼레이션 회장직에서 물러나 명예회장직으로 전환하고, 셋째 자녀이자 장남인 라클런이 직위를 승계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 사실은 월스트리트저널(WSJ)의 당일 보도로 처음 알려졌는데, WSJ은 그가 회장으로 있는 뉴스코프가 소유한 다우존스가 발행한다.
WSJ에 따르면 머독은 직원들에게 보낸 메모를 통해 “제 직업 생활 내내 매일 뉴스와 아이디어에 골몰했고 앞으로 변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다른 역할을 맡을 때가 됐다”고 밝혔다. 그는 오는 11월 주주총회에서 각 그룹 최고경영자에서 물러나 명예회장을 맡을 예정이다.

책 <젊은 루퍼트: 머독 제국 만들기>를 쓴 언론인 월터 마시는 가디언 기고에서 “머독의 이야기는 통제, 권력, 이익에 대한 끝없는 추구이다. 루퍼트의 사임이 이를 바꾸지는 못할 것”이라고 평했다.
가디언에 따르면 머독은 1952년 아버지가 운영하던 호주 애들레이드의 신문사 '더 뉴스'에 지분을 물려받으면서 미디어업계에 진출했다. 1980년대 이르러 신문 제국을 세웠다. 호주의 '디 오스트레일리안'과 영국의 '더 타임즈', '뉴스 오브 더 월드', '더 선', 미국의 '뉴욕포스트' 등이다. 그가 회장으로 있는 뉴스코프는 WSJ을 발행하는 다우존스와 출판사 하퍼콜린스, 영국 더타임스, 호주 유로 방송 등의 모회사다.
그는 TV와 출판, 영화로 손을 뻗었다. 1985년 영화스튜디오 20세기폭스를 인수하고 1988년 영국 스카이TV를 출범했다. 1990년 출판사 하퍼콜린스, 1996년 폭스뉴스를 설립했다. 가디언은 “머독은 영국의 마거릿 대처가 노조와 전쟁을 승리하도록 지원한 것부터 도널드 트럼프가 힐러리 클린턴을 이기도록 지지한 것까지 여러 세대에 걸쳐 전 세계의 정치인들에게 영향을 미쳤다”고 평했다.

가장 주목 받는 것은 미국 폭스뉴스 채널이다. 가디언에 따르면 폭스뉴스는 CNN이 24시간 뉴스시장을 독식하던 1980년대까지 시청자들은 CNN에서 뉴스를 보고 예능 채널로 돌아가는 데 익숙했다. 폭스뉴스는 달랐다. 1996년 창립한 폭스는 사람들이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알기 위해 찾는 채널이 아니라 빌 오라일리나 션 해니티 같은 진행자를 보기 위해 찾는 채널을 고안했다. 폭스뉴스는 2002년 CNN 시청률을 제친 뒤 현재도 이를 유지하고 있다.
WSJ는 그의 퇴진 소식을 알리는 기사에서 “머독은 존 말론, 테드 터너, 섬너 레드스톤과 함께 현대 미디어 시대를 형성한 소수의 미디어 재벌 중 한 명”이라며 “정계와 재계에 영향력을 행사하며 지지자로부터는 찬사를, 비판자로부터는 비난을 받아왔다. 말년에도 활발하게 활동하며 회사를 재편하는 대형 거래를 추진했다”고 했다.

머독 소유 언론사들은 저널리즘 윤리와 범죄 스캔들에 휩싸여 언론사 폐간으로 이어지기도 했다. 2011년 머독의 뉴스코퍼레이션이 발행하는 주간지 '뉴스 오브 더 월드' 기자들이 정치인과 유명인의 휴대폰을 일상적으로 해킹하고 이 정보로 기사를 써온 사실이 발각되면서다. 납치 살인사건 피해자인 학생의 음성 메일에 불법 해킹으로 접근한 사실도 밝혀졌다. 같은 해 뉴스코퍼레이션은 영국 판매 부수 1위를 기록하던 '뉴스 오브 더 월드'를 폐간했다.
WSJ은 “머독은 1990년 회사를 거의 침몰시킬 뻔한 부채 위기와 몇 년 후 영국 신문사 기자들의 휴대폰 해킹 스캔들 등 여러 가지 어려움을 극복했다”고 평했다. 그러면서 “아마도 가장 큰 도전은 개표 기계 제조업체 '도미니언 보팅 시스템'이 폭스뉴스의 진행자와 게스트가 조 바이든의 선거 조작을 도왔다는 허위주장을 증폭시켰다며 명예훼손으로 고소했을 때였을 것”이라고 했다.

가디언은 지난달 22일 사설 <라클란이 어두운 유산을 물려받다>에서 머독의 유산과 그 그룹의 전망을 내놨다. “머독은 미국에서 가장 악영향을 끼쳤다”며 “폭스 뉴스가 트럼프와 공모하여 조장한 음모론적 사고방식은 1월6일 테러의 조건을 조성하고 미국의 민주주의를 훼손했다”고 했다. “어떤 대가도 치르겠다는 성장에 대한 전념, 민주당보다 포퓰리스트 편을 드는 그의 본능, 기후 과학을 부정하도록 조장하는 그의 뉴스매체 기록은 흥분하기 쉬운 이 시대에 점점 더 위험한 요소가 되고 있다.”
“각 나라에서 그는 사회 민주주의에 대한 '자유 시장'의 반동에 강력하게 동조했다. 영국에서 그의 신문은 마거릿 대처를 강력 지지했고, 치열한 반좌파주의와 포클랜드 전쟁, '법과 질서'에 대한 지지를 결합한 의제를 적극 홍보했다. 더 선과 더 뉴스 오브 더 월드에서 개척한 타블로이드 문화는 위선적이었다. 이 보수 신문들은 사람들의 사생활에 대한 외설적이고 잔인한 침입으로 매출을 올렸다.”

네이션은 머독 제국의 동기가 끝없는 '이익 추구'라고 평했다. “머독은 도미니언 시스템 재판 증언에서 자신의 욕심에 대해 솔직하게 털어놨다. 폭스뉴스가 광고 때문에 (선거 조작을 주장한) 마이크 린델을 정기 출연시켰다고 인정했다.” 이 매체는 머독의 폭스뉴스가 버락 오바마 전 미 대통령을 “백인에 대한 깊은 증오심을 가진 인종주의자”라고 주장한 글렌 벡의 '반 오바마 광기'를 주류화시켰고, 그의 광고주들이 항의하기 시작하자 이를 중단했다고 전했다.
네이션은 “머독보다 미국 정치의 독성, 분열, 반민주성, 폭력성을 더욱 심화시키는 데 더 많은 일을 한 사람은 없다. 그가 92세의 나이에 부끄러움 없이 은퇴할 수 있었다는 사실은 인생의 근본적인 불공평함을 일깨워 준다”고 썼다.
WSJ은 “폭스 뉴스가 공화당과 보수 정치에서 영향력이 커지면서 그는 민주당과 자유주의자들의 표적이 됐다. 하지만 머독의 지지자들은 미디어 기득권에 대담하게 도전하는 머독을 높이 평가했다”고 했다. 그러면서 “머독은 신문에 대한 열정이 남아 있었고, 목표가 정해지면 기꺼이 거액을 지불했다. 2007년 WSJ의 모기업인 다우존스를 공개 입찰 전 주가보다 67%의 프리미엄을 얹어 50억 달러에 인수한 것이 그 사례”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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