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민준의 골프세상] 유해란·박주영의 첫 승과 그 미묘한 간극
[골프한국] 유해란(22)과 박주영(32)이 각각 LPGA투어와 KLPGA투어에서 생애 첫 승의 감격을 맛봤다.
유해란은 2일(한국시간) 미국 아칸소주 로저스의 피너클CC에서 열린 LPGA투어 월마트 NW 아칸소 챔피언십 마지막 라운드에서 이글 1개와 버디 5개, 보기 2개로 5타를 줄이면서 최종합계 19언더파 194타로 2위 리니아 스톰(스웨덴)을 3타 차로 제치고 LPGA투어 20개 대회 만에 첫 승을 따냈다.
박주영(32)은 1일 경기 파주시 서원밸리CC에서 막을 내린 KLPGA투어 대보 하우스디 오픈에서 최종 합계 7언더파 209타로 2위 김재희에 4타 차이로 프로 데뷔 14년 만에 우승컵을 품었다. 출전한 대회로는 279번째다. KLPGA투어 사상 최다 출전 첫 우승 기록이다. 지난달 KG 이데일리 오픈에서 260개 대회 출전 만에 우승한 서연정의 기록을 깼다.
같은 첫 승이지만 의미와 감회의 결은 달라 보인다. 두 선수 모두 첫 승을 갈구했지만 간절함에서는 미묘한 차이가 느껴진다.
아이를 둔 주부가 되면서 우승 한번 못하고 은퇴를 생각할 수밖에 없었던 박주영에게 KLPGA투어 우승은 달에서 '방아 찧는 토끼'을 꿈꾸는 것과 다름없었다. 간절히 바라지만 이룰 수 없는 꿈이었다.
그는 LPGA투어에서 활동하고 있는 언니 박희영(36)을 따라 골퍼의 길로 들어섰다. 박희영은 KLPGA투어에서 6승을 거둔 뒤 2008년 LPGA투어에 데뷔, 통산 3승을 거두는 등 꾸준한 기세를 유지하고 있다.
박주영은 언니가 LPGA투어에 데뷔할 때인 2008~2009년 KLPGA 2부 투어인 드림투어를 거쳐 2010년 KLPGA투어에 입성하는 데 성공한다. 국내 리그를 뛰면서도 마음은 언니가 활동하는 LPGA로 향해 2014년 LPGA 퀄리파잉 토너먼트에 도전, 공동 11위에 올라 2015년부터 언니와 함께 LPGA투어에서 입성했으나 이렇다 할 성적을 내지 못하고 결국 2016년 국내로 복귀했다. 복귀한 해에 출전한 제주 삼다수 마스터스에서 준우승한 것이 그동안 거둔 최고 성적이다.
이런 박주영에 비하면 2018년 18세로 한국 여자 아마추어 챔피언십에서 우승하고 그해 아시안게임에도 출전해 5위에 오른 유해란은 처음부터 성공 가도를 달린 셈이다. 2020년 KLPGA투어 회원이 되면서 바로 신인상을 차지하는 등 LPGA투어 도전 직전까지 KLPGA투어에서 5승을 거두었다. 2018년 이정은6, 2021년 안나린이 LPGA 퀄리파잉시리즈를 거쳐 LPGA투어에 안착하는 모습을 지켜본 유해란은 2022년 Q시리즈를 수석으로 통과해 당당히 LPGA투어에 입성했다.
좋은 체격에 장타력을 갖춘 그는 LPGA투어에서 바로 강력한 신인왕 후보로 주목받았다. 올 시즌 20개 대회에 출전, 3번 컷 탈락했을 뿐이다. 다섯 번이나 톱10에 들었는데 매번 우승 경쟁을 벌이다 막판 결정적인 순간에 기회를 포착하지 못하고 우승을 놓치는 경우가 많았다.
본인은 손에 잡힐 듯 잡힐 듯한 우승기회를 놓쳐 속이 상했겠지만 한국 골프팬들은 결정적 순간에 결연하게 승부수를 던지지 못하는 그의 경기 자세에 답답함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특히 건들거리는 걸음걸이, 결정적 순간에도 집중력과 단호함을 보이지 못하는 우유부단한 태도와 표정은 과연 LPGA투어라는 정글에서 생존경쟁을 벌이는 선수가 맞나 싶은 생각이 들 정도였다.
다행히 이번 대회 마지막 라운드 후반에 유해란이 사냥감을 포착한 맹수로 변해 버디 4개와 이글 하나를 몰아쳐 경쟁자들의 추격을 따돌리는 데 성공했다. 한때 선두에 오른 김세영과 신지은의 파이팅이 유해란의 투혼을 살리는 데 한몫을 한 것 같다. 선두 경쟁에 복수의 한국선수들이 어깨를 부딪는 모습은 한국 골프 성장에 바람직하다.
이번 우승으로 유해란은 신인상 수상에 가까이 다가갔다. 중반기까지 신인왕 포인트에서 선두를 달리다 루키들이 우승하면서 뒤로 밀렸으나 이번 우승으로 다시 선두로 나섰다. 유해란이 신인왕에 오르면 2019년 이정은6 이후 4년 만의 경사다.
이번 우승을 계기로 유해란이 LPGA투어라는 정글의 맹수로 성장하길 기대해본다.
*칼럼니스트 방민준: 서울대에서 국문학을 전공했고, 한국일보에 입사해 30여 년간 언론인으로 활동했다. 30대 후반 골프와 조우, 밀림 같은 골프의 무궁무진한 세계를 탐험하며 다양한 골프 책을 집필했다. 그에게 골프와 얽힌 세월은 구도의 길이자 인생을 관통하는 철학을 찾는 항해로 인식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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