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동정담] 카자흐스탄의 배신
독립운동가 홍범도 장군의 흉상 이전을 놓고 온 나라가 시끄럽던 지난달. 홍 장군의 유해가 모셔져 있던 카자흐스탄에선 놀랄 만한 뉴스가 하나 있었다. 러시아의 전통 우방국 카자흐스탄이 대러시아 제재를 선언한 것이다. 지난달 28일 독일 베를린을 방문한 카심조마르트 토카예프 카자흐스탄 대통령이 정상회담 직후 회견에서 "대러시아 제재를 준수할 것"이라고 밝혔다.
카자흐스탄은 러시아 주도의 안보동맹 '집단안보조약기구(CSTO)'에 속한 나라다. 지난해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직후부터는 대러 제재의 우회 통로 역할을 맡았다. 한국에서도 카자흐스탄에 스마트폰 등 공산품부터 라면을 비롯한 생필품까지 수출이 급증했다. 그런 카자흐스탄이 돌연 러시아에 등을 돌리겠다고 선언한 데는 이유가 있다. 미국과 유럽연합(EU)이 카자흐스탄에 채찍과 당근을 동시에 쓰며 압박하고 있기 때문이다.
올 초 토니 블링컨 미국 국무장관 등이 아스타나를 방문해 2차 제재 가능성을 언급하더니 지난달에는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중앙아시아 5개국과 사상 처음으로 정상회담을 했다. 지난주 독일은 카자흐스탄과 원유 50만t 수입 계약을 맺기도 했다. 카자흐스탄뿐만이 아니다. 한때 '푸틴의 친구들'이라 불리던 러시아 우방국의 손절이 잇따르고 있다. 지난 7월 튀르키예가 스웨덴의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가입 반대 의사를 철회하더니 최근엔 또 다른 CSTO 회원국 아르메니아가 이웃 아제르바이잔과 충돌하는 과정에서 러시아에 등을 돌렸다. 러시아가 지난달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을 초청해 러·북 관계를 공고히 한 것도 이런 정세와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러시아 접경국 14개국 중 가장 긴 국경을 마주한 나라는 카자흐스탄(7512㎞), 가장 짧은 접경 국가는 북한(17㎞)이다. 카자흐스탄의 손을 놓치고 북한에 다급하게 손을 내민 러시아에 이제 남은 건 중국뿐이다. 2주 후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중국을 방문한다. 중국에 제대로 된 역할을 압박할 수 있는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한예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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