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파일] 이재명 민주당 대표 구속영장 기각 사유 해설서
'18.6% vs 3.1%'
지난달 27일 이재명 민주당 대표에 대한 구속영장이 기각된 이후 여야의 공수가 바뀌었다. 야당인 민주당은 이 대표의 영장 기각으로 사법 리스크가 해소됐다는 취지로 여권에 공세를 가하고 있고, 여당인 국민의힘은 영장 기각이 무죄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라며 반격하고 있지만 수세적인 모습이다.
구속영장이 발부됐다면 정반대의 모습이 연출됐을 것이다. 여당은 영장 발부로 이 대표의 사법 리스크가 고조됐다고 쏘아 붙였을 것이고, 야당은 구속영장 발부가 유죄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라고 반박했겠지만 여당이 정국의 주도권을 쥐었을 것이라는 건 어렵지 않게 예상할 수 있다.
이런 상황이 현재 벌어지고 있거나 벌어질 것으로 쉽게 예상할 수 있는 건 영장심사가 본 재판에 앞선 예비 재판처럼 되어가고 있기 때문이다. 불구속 수사가 원칙인 상황에서 '구속'은 예외적인 수사의 수단일 뿐이고, 영장심사는 그 수단을 심사하는 과정일 뿐이라지만 현실과는 차이가 있는 원론적인 이야기가 되어가고 있다.
이런 상황이 벌어지고 있는 건 정치권과 언론이 영장 발부 여부를 수사 성패의 기준으로 으레 삼고 있고, 검찰이 구속을 피의자를 압박하는 수단이자 수사의 중간 성적표 내지 정당성 입증의 도구로 삼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또 의도와 무관하게 구속영장 발부 여부가 암묵적 기준점 역할을 해 본 재판에 실제로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점도 영장심사 결과에 관심이 고조되는 이유 중 하나다.
예비 재판화 되어가고 있는 구속영장심사
이유는 여러 가지일 수 있다. 대개 구속 사건이 불구속 사건보다 사안이 중대하고 수사가 좀 더 촘촘히 진행됐을 가능성이 높아 유죄율을 높였을 수 있다. 그런데 판사도 사람이다. 자신보다 앞서 사건을 판단한 사람이 있다면 그 판단이 자신 판단의 기준점이 될 수 있다. 다른 사람의 판단에 동조하는 건 쉽지만, 상반된 판단을 하려면 그만큼의 노력과 이유가 더 필요하기 때문이다. 구속영장 발부 여부가 본 재판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이유다.
이런 상황을 고려할 때, 이재명 민주당 대표에게 구속영장 기각은 사실상 불구속 기소를 의미하는 것이기에 본 재판에서 자신의 무죄 판결 가능성을 좀 더 높게 점칠 수 있는 호재일 수 있다. 국회 본회의가 올해 12월 9일까지 계속된다는 점에서 검찰이 그 사이 기간 국회 체포동의안 표결을 다시 받아야 하는 구속영장을 다시 청구하는 건 현실적으로 어렵고, 본회의 이후 구속영장을 재청구하는 건 수사 장기화 의미와 함께 이 대표의 신병 확보가 수사의 목표라는 걸 자인하는 셈이라 역시 현실성은 떨어진다. 결국 검찰은 이 대표를 불구속 기소할 가능성이 높다.
최근 정치권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련의 상황을 봤을 때, 법원 재판부의 영장 기각은 내년 총선을 앞두고 정치적 분기점이 되고 있다. 그런 만큼 이런 중요한 결정을 판사 1명에게 맡겨두는 것이 온당하느냐는 오래된 논쟁을 뒤로 하고서라도 결정의 이유를 좀 더 면밀하게 분석해볼 필요가 있다. 이재명 대표에 대한 구속영장 기각 사유가 이례적으로 길다는 점도 이런 필요성을 더한다.
현행법이 규정한 구속영장 발부의 조건
전제와 관련해서 실무적으로는 '혐의가 소명된다', '상당한 의심이 든다', '다툼의 여지가 있다', '소명이 부족하다'식으로 영장판사들은 주로 표현한다. 전제에 대한 입증 정도로 보면 90% 이상, 70% 이상, 50% 이상, 50% 미만 정도로 이해할 수 있는데, 혐의 입증 정도는 구속영장 발부를 위한 1차 관문으로 볼 수 있다.
여기서 눈여겨볼 점은 현행법은 '의심할 만한 상당한 이유'를 조건으로 걸고 있다는 점이다. 영장심사는 본 재판이 아니라 수사의 예외적 수단인 구속의 필요성을 심사하는 과정적 행위이기에 피의자에 대한 유·무죄를 판단하는 건 어렵다는 걸 전제로 하고 있다. 그런데 실무적으로는 '혐의가 소명된다'며 사실상 유·무죄를 판단하는 듯한 표현까지 나오고 있는데, 영장심사가 본 재판에 앞선 예비 재판이 되어가고 있음을 보여주는 단면이다.
구속 이유 심사의 고려 사항과 관련해서 검찰은 통상 '범죄의 중대성'이 입증되면 '증거 인멸의 우려가 있다'고 해석한다. 범죄가 중대하다면 높은 형이 선고될 가능성이 높으니 유죄 선고를 피하기 위해 관련 증거를 인멸할 가능성이 높다고 보는 것이다. 재범의 위험성은 통상 도망의 염려와 연관되고, 중요 참고인에 대한 위해 가능성은 증거 인멸의 우려와 결부된다. 중요 참고인의 진술은 중요한 '인적 증거'이기 때문이다.
'죄를 범하였다고 의심할 만한 상당한 이유'라는 전제는 성립하는가
이에 대해 유창훈 부장판사는 '혐의는 소명되는 것으로 보인다', '상당한 의심이 든다', '다툼의 여지가 있다고 보인다'며 위증교사 사건, 백현동 사건, 대북송금 사건에 대해 혐의 판단을 내렸다. 위증 교사는 사실상 유죄라고 판단한 셈이고, 백현동 사건과 대북송금 사건 순으로 혐의 입증이 덜 됐다고 판단한 것이다.
백현동 사건과 관련해 눈여겨볼 점은 영장 재판은 본 재판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직접 증거'를 언급한 점이다. (유창훈 부장판사 : '피의자의 관여가 있었다고 볼 만한 상당한 의심이 들기는 하나, 한편 이에 관한 직접 증거 자체는 부족') 영장 재판이 사실상 본 재판의 예비 재판처럼 되어 가고 있는 현실을 감안하더라도 영장 재판이 본 재판은 아니다. 본 재판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가능성을 차단하기 위해서 피의자의 구속 필요성을 판단하는 과정적 행위일 뿐이다. 바꿔 말해 (직접) 증거를 찾는 작업이 방해 받지 않게 하기 위해 구속영장 심사를 하는 것임에도 유 부장판사가 '직접 증거'를 언급한 것은 과정에 대한 심사가 아니라 결과에 대한 심사를 하려 한 게 아닌지, 다소 의아한 대목이다.
대북송금 사건에 대한 유 부장판사의 판단은 검찰 입장에서 뼈아픈 부분이다. 구속영장 발부의 첫 번째 관문인 혐의 소명에 사실상 실패했다고 볼 수 있기 때문이다. 현재 사건에서 뇌물의 수수자인 북한 측 인사를 조사할 수 없는 근본적 한계를 감안하더라도 이화영 전 경기도 평화부지사와 김성태 전 쌍방울그룹 회장의 진술 등으로는 이재명 대표가 사건의 주범이라는 점이 인정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직접 증거가 부족하면 간접 증거의 숫자를 늘려야 하는데, 김성태 전 회장과 함께 경기도의 대북 사업을 함께 추진했다는 의심을 받는 배상윤 KH그룹 회장(현재 해외 도피 중)의 진술을 검찰이 받아냈다면 영장판사의 판단은 사뭇 달랐을 지도 모른다.
'혐의 소명', '직접 증거'와 관련해 법조계 일각에서는 검찰의 전략 실패라는 해석도 나온다. '제1야당 대표'라는 점 때문에 여러 혐의를 한 번에 묶어서 검찰이 구속영장을 청구할 수밖에 없었다고 하더라도, 그것이 신병 확보라는 측면에서는 오히려 패착이 된 것이 아니냐는 것이다. 검찰은 '위증교사 사건'과 관련해 이 대표가 재판 증인에게 직접 증언을 회유하는 듯한 통화 녹음 파일을 증거로 제출했다. 법리적 측면을 떠나 사실 판단과 관련해선 다른 증거가 사실상 필요 없는 결정적 증거였다.
반면, 다른 혐의는 '통화 녹음 파일'에 준하는 결정적 증거가 제출되지 않았다. 이 대표가 백현동 사건과 관련해서 민간 업자의 청탁을 들어주는 대화 녹음 파일, 이 대표가 김성태 전 쌍방울그룹 회장과 대북 사업과 관련해 논의하는 통화 녹음 파일 같은 것이 위증교사 사건의 통화 녹음 파일에 준하는 증거가 될 수 있을 텐 데 그런 증거는 확보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증거 인멸 염려' · '주요 참고인에 대한 위해 우려 고려' 등은 인정되는가
유 부장판사는 올해 세간의 주목을 받았던 주요 사건 구속영장을 기각하며 '현재까지 확보된 자료 등을 고려할 때 증거 인멸 염려가 있다고 보기 어렵다'는 취지의 사유를 반복적으로 들었다. 현재 수사기관이 혐의를 입증할 증거를 충분히 확보된 상황인 만큼 인멸할 증거가 사실상 없다고 판단한 것이다. 피의자 입장에서는 당장은 구속을 피할 수 있는 이유지만, 본 재판에서 유죄 가능성을 높이는 판단일 수도 있다.
그런데 다른 심사와 달리 유 부장판사의 이번 기각 사유는 앞서 언급한 혐의 소명 부분에서 든 이유와 충돌할 여지가 있다. 백현동 사건과 관련해 '직접 증거가 부족하다'하도 판단하면서도 증거 '인멸의 염려가 있다고 보기 어렵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검찰에 직접 증거를 더 찾으라는 주문을 하면서 한편으로는 증거는 충분히 확보돼 있다고 판단한 셈인데 두 개의 판단은 서로 충돌할 수 있다.
이화영 전 경기도 평화부지사가 방북 대가와 관련해 이재명 당시 경기도지사에게 보고를 했다고 검찰에 진술했다가 이후 진술을 번복한 것과 관련한 유 부장판사의 판단도 증거 인멸 염려가 없다는 판단과 충돌할 여지가 있다.
유 부장판사는 이화영 전 부지사의 진술과 관련해 '피의자(이재명 대표)의 주변 인물에 의한 부적절한 개입을 의심할 만한 정황들이 있기는 하나 피의자가 직접적으로 개입하였다고 단정할 만한 자료는 부족하다'고 밝혔다. 이화영 전 부지사가 방북 추진 대가와 관련해 이재명 당시 경기지사에게 보고했다고 검찰에 진술한 것이 알려진 이후, 민주당 현역 의원 등이 이화영 전 부지사의 배우자와 집중적으로 접촉하고 그리고 이후 이 전 부지사 배우자와 민주당 측 인사가 이 전 부지사를 구치소에서 접견해 기존 진술을 뒤집는 취지의 옥중편지 작성을 요구한 부분에 대한 판단이다.
유 부장판사는 이화영 전 부지사의 이른바 자백이 알려진 후 민주당 측 인사들이 이화영 전 부지사 배우자 등과 집중적으로 접촉한 것, 그리고 이후 이 전 부지사 부인 등이 이 전 부지사에게 진술 번복을 요구하고 실제로 이 부지사의 진술 번복이 이뤄진 일련의 과정에 이 대표가 직접 개입했다는 증거는 없다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이 전 부지사 부인은 물론이고 민주당 측 인사들 역시 검찰의 출석 요구에 불응하는 것으로 알려진 상황이라 이 대표의 직접 개입 증거가 없는 것도 사실이다.
그런데 이 부분은 '증거 인멸 염려' 판단과 충돌할 수 있다. 이 대표가 계속해서 외부에서 활동한다면 이 전 부지사 배우자와 접촉했다는 민주당 현역 의원 등 야권 인사들에게 계속해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기 때문에 그들이 향후 검찰 조사에서 이 대표에게 유리한 진술을 할 수도 있다. 참고인 진술이라는 '인적 증거'가 인멸되는 상황이 발생할 수도 있는 것인데, 이런 가능성 때문에 검찰은 이번 영장 기각 판단을 납득할 수 없다고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물론, 이런 검찰의 반발은 민주당 측 인사들의 행위는 이재명 대표를 위해서로 볼 수밖에 없고, 특히 민주당 측 인사들이 구치소 접견 과정에서 언급한 '위'라는 표현의 '위'는 이재명 대표일 것이라는 추론에 자리 잡고 있다.개인의 유무죄 판단은 논리적 추론이 아니라 증거로 입증되어야 한다는 점, 그런 증거는 수사기관에서 확보해야 하는 건 분명하다. 때문에 추론과 정황 증거에 터 잡은 검찰의 반발은 과한 측면이 있지만, 구속영장심사는 기소된 사건에 대한 판단이 아니라 수사 과정에 대한 판단이라는 점에서 검찰의 반발도 일견 수긍되는 측면은 있다.
유 부장판사는 '피의자(이재명 대표)가 정당의 현직 대표로서 공적 감시와 비판의 대상인 점'도 고려해 '증거 인멸 염려가 있다고 단정하기 어렵다'고 판단했는데, 검찰은 이 부분도 강하게 비판하고 있다. '위증교사 사건'은 이 대표가 역시 공적 감시와 비판의 대상인 현역 경기지사 시절 발생했는데 제1야당 대표라고 해서 그런 일이 발생하지 않으리라는 보장이 있냐는 것이다. 이화영 전 부지사를 둘러싼 민주당 측 인사들의 움직임을 볼 때 이미 증거 인멸의 움직임을 진행되고 있다는 게 검찰의 주장이다. 물론 이에 대해 이 대표 측은 이 대표가 직접 관여됐다는 증거가 있냐고 반박한 것으로 전해진다.
18.6%의 확률을 뚫은 이재명 대표, 법조계 불문율도 극복할 수 있을까
정치인 이재명은 구속영장 기각으로 기사회생했다. 친명과 비명으로 나뉘어 당장이라도 찢겨져 나갈 것 같던 민주당은 불안하게나마 일단 급속도로 봉합되고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한동안 이재명 대표의 한마디 한마디에 관심의 고조되는 상황이 벌어질 수밖에 없다.
그런데 이번 구속영장 기각이 개인 이재명에게는 어떤 의미일까. 법조계에서 정설처럼 회자되는 이야기가 있다. 구속영장이 기각되면 검찰이나 수사기관의 수사는 한층 더 촘촘하게 진행된다는 것이다. 빨간펜 선생님의 지적을 극복하기 위해 추가 수사가 이뤄지고 논리가 보강되면서 본 재판에서 혐의 입증의 정도가 한층 두터워진다는 것이다. 앞서 살펴본 불구속 기소 사건의 무죄율 통계는 구속영장이 청구됐다고 기각돼 불구속 기소된 사건까지 포함하고 있는데, 해당 사건만 따로 떼어내서 살펴보면 어떤 결과가 나올까. 18.6%(지난해 구속영장 기각률)의 확률을 돌파한 이재명 대표가 법조계의 정설까지 극복할 수 있을까. 향후 재판 결과는 쉽게 예측할 수 없지만, 이 대표가 18.6%보다 낮은 가능성까지 돌파해 낸다면 검찰은 현재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의 역풍을 맞을 것이라는 건 분명하다.
박원경 기자 seagull@s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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