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소배출권, 이제 나도 주식처럼 사고팔 수 있다? [뉴스 쉽게보기]

임형준 기자(brojun@mk.co.kr), 신화 기자(legend@mk.co.kr) 2023. 10. 2. 14:45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대기 오염물질을 배출하는 공장의 모습. /사진=EPA 연합뉴스
혹시 ‘탄소배출권’에 대해 들어보신 적이 있나요? 사실 환경 문제에 큰 관심을 두고 있지 않다면, 학창 시절 교과서에서나 한 번쯤 접해 봤을 법한 용어죠. 대기오염을 일으키는 온실가스를 배출할 권리를 말하는데, 온실가스를 많이 배출하는 기업들은 이 권리를 확보해야 사업을 원활히 할 수 있어요.

오늘은 이 탄소배출권에 관한 이야기를 해보려고 해요. 우리나라에서도 곧 누구나 탄소배출권을 사고팔 수 있게 되거든요. 개인이 주식을 사고팔 듯 쉽게 거래할 수 있게 만들 거래요.

탄소배출권이 뭐야?
탄소배출권 거래제는 탄소를 포함한 온실가스 배출량을 줄이기 위해 1997년에 주요국들이 모여 만든 제도예요. 마냥 자발적인 참여를 기다리고 있을 수만은 없잖아요. (탄소 외에도 6종류의 온실가스 배출을 줄이면 받을 수 있는데, 우리나라에선 ‘탄소배출권’이라는 말로 굳어져 사용되고 있어요)

탄소배출권에는 ‘할당량(allowance)’과 ‘크레딧(credit)’이라는 두 가지 종류가 있어요. 둘 다 사고팔 수 있는 배출권이지만 다른 점도 존재해요. ‘할당량’은 기후 변화를 담당하는 국제연합(UN) 소속 기구가 각 나라에 온실가스를 배출할 수 있는 ‘한도’를 정해주는 방식이에요. 할당을 받으면 그만큼 탄소를 합법적으로 배출할 수 있는 거죠.

탄소배출권을 할당받은 국가는 다시 기업들에게 할당해요. 발전 설비나 공장처럼 온실가스를 많이 배출하는 기업들을 대상으로 적당히 분배하는 거예요. 각 회사는 할당된 탄소 배출 한도보다 적게 배출하면 남는 배출권을 다른 회사에 팔고, 만약 더 많이 온실가스를 배출하고 싶으면 배출권을 사 와야 해요.

배출 한도를 정해주는 방식인 ‘할당량’과 달리 ‘규제 크레딧’으로 부르기도 하는 크레딧은 각종 친환경 사업을 통해 온실가스 배출량을 줄였을 때 추가로 지급하는 탄소 배출권이에요. 예를 들면 재생 에너지를 생산해서 온실가스 저감을 실천한 기업에게 지급할 수 있는 거죠.

또한 친환경 전기차를 만드는 업체라면, 기름으로 달리는 일반 자동차를 팔 때보다 얼마나 온실가스를 줄이게 되는지를 인정받아 ‘크레딧’을 얻을 수도 있어요.

탄소배출권을 누구나 사고판다고?
우리나라에는 지난 2015년 탄소배출권 제도가 도입됐지만, 지금까지 별 주목은 받지 못했어요. 법적으로 참여하도록 정해진 기업들만이 거래에 참여했기 때문이에요. 사고파는 기업이 그리 많지 않아서 충분히 많은 거래가 이뤄지지도 않고, 거래할 때마다 적절한 가격을 정하기도 어려운 탓에 가격이 들쭉날쭉했다고 해요.

국내에서 배출권 거래에 참여하고 있는 기업 697개 중 82곳(12%)은 작년을 통틀어 단 한 차례도 거래한 적이 없었고, 384곳(55%)은 딱 1개월 동안만 거래에 참여했을 정도예요.

지난 20일 정부는 이런 배출권 거래 시장을 활성화하기 위해 몇몇 대책을 발표했어요. 핵심은 ‘주식처럼 쉽게 사고팔 수 있게 만든다’는 거예요. 우선 올해 안에 법을 개정해서 탄소배출권을 금융회사가 위탁 거래할 수 있도록 할 방침이에요. 일반 투자자가 증권사를 통해 주식을 사고팔 수 있는 것처럼 탄소배출권도 중개 거래를 허용하겠다는 뜻이에요.

정부는 2025년부터는 누구나 탄소배출권을 직접 사고팔 수 있게 할 예정이에요. 일단 내년에는 탄소배출권 가격과 연동되는 ETF(상장지수펀드) 같은 금융상품을 출시해서 간접적으로 탄소배출권에 투자할 수 있도록 할 거래요. ETF는 특정 주가지수나 자산의 가격과 연동되는 투자 상품인데, 주식처럼 쉽게 사고팔 수 있어요.

지금도 유럽연합(EU)의 탄소배출권 가격과 연계한 ETF 상품은 국내에 존재하지만, 국내 탄소배출권 가격과 연동된 금융 상품을 만드는 건 이번이 처음이에요. 정부는 금융계와 협약을 맺고 이런 상품들을 만들어서 많은 투자자들이 쉽게 배출권에 투자할 수 있도록 하는 게 목표예요.

왜 탄소배출권 거래를 활성화할까?
탄소배출권 거래에 많은 이들이 참여하고 제도 활성화에 성공하면, 여러 경제적 이점을 누릴 수 있어요. 일단 기후 변화를 일으키는 온실가스의 배출량이 줄어드는 건 당연한 효과겠죠. 탄소배출권의 가치가 더욱 보편적으로 인정받을수록 오염물질을 줄여서 배출권을 확보하려는 기업도 많아질 테니까요.

그리고 이런 흐름은 친환경 분야에서 혁신적인 기업이나 기술을 탄생시키는 데 큰 도움이 돼요. 당장 수익성은 부족하지만, 기후 변화 대응에 기여할 수 있는 회사들이 탄소 배출권을 팔아 사업을 영위할 수 있게 되거든요. 온실가스 배출을 더 많이 줄이는 것만으로도 돈을 벌 수 있기 때문이죠.

테슬라를 키워낸 탄소배출권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전기자동차 회사인 ‘테슬라’는 탄소배출권 거래 제도를 통해 빠르게 성장한 대표적 사례예요. 테슬라는 3년 전만 해도 자동차만 팔아선 적자를 보는 회사였어요. 탄소배출권 판매로 큰돈을 벌 수 없었다면, 회사를 키워나가기 힘들었을 거예요.

테슬라는 전기차만 만들기 때문에 일반 자동차를 파는 기업보다 많은 온실가스를 줄이는 점을 인정받을 수 있고, 이걸 근거로 크레딧을 확보해요. 태양광 등 재생에너지 관련 사업도 하는데, 여기에서도 온실가스를 저감하고요. 반면 기름으로 달리는 차를 만드는 회사들은 온실가스를 많이 배출하게 되니 어쩔 수 없이 테슬라에게 돈을 주고 배출권을 구매해요.

전기 충전소에서 충전 중인 테슬라 차량. /사진=AFP 연합뉴스
테슬라 주가가 계속 급등하며 ‘초대박’을 냈던 시기는 지난 2020년인데요, 그해 테슬라는 사상 첫 연간 흑자를 기록해서 드디어 ‘돈 버는 기업’이 됐어요. 그런데 사실 이때까지도 테슬라는 차를 팔아 돈을 벌지 못했어요. 팔수록 적자를 봤다고 해야 더 맞았죠.

첫 흑자를 기록했던 2020년에 테슬라가 벌어들인 순이익은 7억 2100만 달러(약 8800억원)였어요. 이 중에 탄소배출권을 팔아서 번 돈은 15억 8000만달러(약 1조 9300억원)였어요. 전체 순이익보다 탄소 배출권을 팔아서 번 돈이 훨씬 더 많았던 거예요. 한마디로 ‘배출권 못 팔았으면 1조원 적자’였다는 거죠.

국내 시장 활성화, 성공할 수 있을까?
테슬라의 경우 전기차 사업이 점점 성장하면서 탄소배출권 판매로 벌어들이는 돈의 비중은 줄어들고 있어요. 그래도 탄소배출권 거래 제도가 친환경 전기차 기업인 테슬라가 이만큼 성장하는 데 결정적 역할을 했다는 사실은 분명해 보여요.

이번에 탄소배출권 거래 활성화 방안을 내놓은 정부는 우리나라에서도 이 제도가 조금 더 활발히 작동하게 만들고 싶은 거예요. 기후 변화에 대응하는 기술 개발과 투자를 촉진할 수 있도록 말이죠. 정부는 그 출발점을 누구나 탄소배출권에 투자할 수 있게 하는 정책으로 정했어요.

정부가 의도한 대로 배출권 시장 활성화에 성공하면, 우리나라에서도 온실가스 배출량 감축이 쉽게 경제적 이윤으로 이어지는 시대가 열릴 수 있어요. 친환경 분야에 뛰어드는 차세대 기업과 신기술도 많아질 테고요. 과연 정부의 계획은 성공을 거둘 수 있을까요?

<뉴미디어팀 디그(dig)>

매일경제 ‘디그(dig)’팀이 연재하는 ‘뉴스 쉽게보기’는 술술 읽히는 뉴스를 지향합니다. 복잡한 이슈는 정리하고, 어려운 정보는 풀어서 쉽게 전달하겠습니다. 무료 뉴스레터를 구독하시면 더 많은 이야기들을 이메일로 받아보실 수 있습니다. ‘디그 구독하기’를 검색하고, 정성껏 쓴 디그의 편지들을 만나보세요. 아래 주소로 접속하셔도 구독 페이지로 연결됩니다. https://www.mk.co.kr/newsletter/

Copyright © 매일경제 & mk.co.kr. 무단 전재,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