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짜요’ 뚫고 한 뼘 더 성장한 삐약이[니하오 항저우]
항저우 아시안게임에선 탁구 하나는 최강을 자랑하는 ‘만리장성’을 위협할 때 “짜요”(加油·힘내라)라는 응원 구호가 크게 울린다.
중국 팬들이 탁구에 갖고 있는 자부심이 강하다 보니 웬만하면 말없이 경기를 지켜보고 있어서다. 관중석에서 이 소리가 자주 나올수록 중국이 흔들린다는 얘기다. 중국이 아시안게임 5회 연속 정상을 지킨 남·녀 단체전에선 아쉽게도 결승전조차 고요할 정도로 일방적인 흐름이었다.
그런데 지난 1일 중국 저장성 항저우 궁슈 캐널 스포츠파크 체육관에서 열린 여자 단식 준결승은 조금 달랐다. 한국 탁구의 미래로 불리는 신유빈(19·대한항공)이 특유의 ‘삐약’거리는 기합소리가 나올 때마다 짜요가 나오기 시작했다.
신유빈의 상대는 국제탁구연맹(ITTF) 여자 단식 랭킹 1위이자 세계 최강으로 불리는 중국의 쑨잉사. 5번째 맞대결도 결과만 따진다면 일방적인 0-4(7-11 8-11 12-14 10-12) 패배. 랭킹이나 성적 모두 범접할 수 없는 수준이라 패배가 당연시되는 이 승부에서 짜요가 나온 것은 역시 끈질긴 승부 근성 때문이었다.
맥없이 무너질 줄 알았던 2세트 2-7에서 8-10으로 따라갔다. 비록, 매치 포인트에서 패배했지만 상대과 관중도 놀라는 기색이 역력했다. 3세트에선 짜요의 홍수 속에 귓가를 울리는 소음이 절정에 달했다. 신유빈이 엇박자로 쑨잉사의 리듬을 흔들며 3-1로 앞서갔다. 상대의 말도 안 되는 괴력에는 좌우를 흔드는 영리함으로 응수해 10-5 리드. 자신의 서브권으로 끝낼 수 있는 찬스는 놓쳤다. 약점인 백핸드 공략에 실책이 겹치면서 10-10 동점. 신유빈은 끈질기게 12-12로 따라갔지만 한 걸음이 부족했다. 그래도 “짜요 쑨잉사”를 쉴 새 없이 외치는 일방적인 응원이 신유빈의 성장을 깨닫게 만들었다.
신유빈의 성장은 눈물이 아닌 미소로 받아들이는 패배 속 여유에서도 잘 확인됐다. 믹스트존(공동취재구역)에서 기자와 만난 그는 녹음하려고 내민 휴대전화를 대신 들어주려다가 기자들이 만류하자 돌려줬다. 그는 “경기는 잘 풀어나간 것 같다. 그래도 이길 수 있었던 세트들은 있었던 것 같아서 더 아쉬움이 남는다”고 말했다.
마지막으로 남은 2일 여자 복식으로 항저우 아시안게임을 마치는 신유빈은 하루하루가 새롭고 고맙기만 하다. 손목 부상으로 이 대회에 참가할 수 없었지만, 코로나19로 대회가 1년 연기돼 기회를 얻어서다. 신유빈은 “난 원래 이 대회에 오지 못할 운명이었는데, 이렇게 동메달을 따내니까 신기하고 좋다”고 웃었다. 그는 내년 부산 세계선수권대회와 파리 올림픽에서 또 한 번의 시험대에 선다. 한국 탁구의 미래로 불리는 신유빈이 한 뼘 더 자랄수록 중국의 불안감과 함께 짜요 소리가 커질 것이라 믿는다.
항저우 | 황민국 기자 stylelomo@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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