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란이 하면 사우디도”…빈 살만 ‘핵무장’ 발언에 중동 패권 경쟁 재주목[이세형의 더 가까이 중동]

이세형 기자‧전 카이로 특파원 2023. 10. 2. 1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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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우디 왕세자, “이란이 핵무기 가지면 우리도 가져야”
7년 만 화해에도 정치, 종파, 지역 패권 둘러싼 갈등 깊어
미사일, 핵 등 주요 무기 개발 경험 차이도 커
멀게 느껴지지만 우리와 뗄 수 없는 중동. 그 생생한 현장 속으로 여러분을 초대합니다. 정치, 경제, 자원, 종교, 역사, 문화가 얽혀 있는 갈등과 변화의 ‘핫스팟’ 중동의 모습을 쉽고, 재미있게 또 인사이트를 담아 알려 드리겠습니다.

카이로특파원, 국제부 차장, 카타르의 싱크탱크 아랍조사정책연구원(ACRPS) 방문연구원으로 활동하며 중동을 취재했습니다. 단행본 <중동 라이벌리즘>과 <있는 그대로 카타르>를 펴냈습니다.
사우디아라비아의 실권자이며 차기 국왕인 무함마드 빈 살만 알 사우드 왕세자가 핵무기를 보유할 수 있다고 밝혔다.

그는 지난달 20일(현지 시간) 미국 폭스뉴스와의 인터뷰에서 “(이란이 핵무기를 가진다면) 우리도 핵무기를 가져야 한다. 안보상 이유이며 힘의 균형을 위해서다”고 말했다.

당장 벌어질 일은 아니다. 언젠가는 발생할 일이라고 확언할 수 있는 사안도 아니다.

무함마드 빈 살만 알 사우드 사우디 왕세자는 폭스뉴스와의 인터뷰에서 “(이란이 핵무기를 가진다면) 우리도 핵무기를 가져야 한다”고 말했다. 사우디와 이란 간의 갈등이 얼마나 깊은 지를 보여주는 발언이란 평가가 많다. 동아일보 DB

하지만 ‘세계의 화약고’ 중동에서 치열하게 패권 경쟁을 펼치는 사우디와 이란이 핵무기를 보유하게 되는 건 지역 안보와 국제 정세를 요동치게 할 대형 사건이다.

당연히 무함마드 왕세자의 이번 핵무기 발언은 큰 주목을 받았다. 그리고 사우디와 이란의 갈등 관계, 특히 사우디의 뿌리 깊은 이란에 대한 경계심을 다시 한번 보여주는 계기로도 여겨졌다.

● 7년 만에 ‘화해’ 했어도 여전히 불편한 관계

‘앙숙 관계’인 사우디와 이란은 3월 10일 7년 만에 외교 관계를 정상화하기로 했다.

두 나라는 2016년 1월 ‘심각한 종파 갈등(사우디는 수니파, 이란은 시아파)’을 경험하며 단교했다. 사우디가 자국 내 시아파 고위 지도자들을 체포하고 일부는 사형시키자, 이란에선 강경 시아파 세력이 사우디 대사관과 총영사관을 공격한 게 단교의 원인이었다.

중국의 중재 아래 사우디와 이란은 베이징에서 일단 화해의 제스처를 취했다.

하지만 두 나라가 진정으로 화해했다고 평가하는 중동 전문가들은 거의 없다. ‘더 이상의 심각한 갈등’을 지양하기 위해 일단 ‘차가운 평화’를 도모한 것이라는 분석이 많다.

사우디와 이란은 3월10일 중국의 중재 아래 베이징에서 7년 만에 외교 관계를 정상화하기로 합의했다. 무사드 빈 모하메드 알 아이반 사우디 국가안보보좌관(왼쪽)과 알리 샴카니 이란 최고 국가안보위원회 위원장(오른쪽)이 악수하고 있다. 가운데는 왕이 중국 외교부 부장. 뉴시스

무엇보다, 사우디와 이란 사이의 근본적인 문제, 나아가 갈등의 뿌리가 너무 깊다. 하나 같이 쉽게 해결되기 어려운 문제다. 그리고 냉랭한 두 나라 관계는 40년 이상 지속돼 왔다.

● 왕정 붕괴시킨 이란의 혁명 경험이 기분 나쁜 사우디

사우디 입장에서 이란에 대해 가장 기분 나쁘고, 긴장이 되는 부분은 정치 체제의 차이다.

사우디는 국왕이 중심이 되는 왕정 체제다. 반면 이란은 시아파 최고지도자(알라의 증거라는 의미를 지닌 아야톨라로 호칭)와 대통령이 중심이 되는 독특한 형식의 신정공화정 체제다.

중요한 건, 이란도 원래 왕정 국가였다는 점이다. 1979년 시아파 지도자인 루홀라 호메이니가 중심이 돼 친미, 세속주의를 지향했던 팔레비 왕정을 무너뜨렸다. 이른바 ‘이란 이슬람 혁명’ 이다. 그리고 지금까지 신정공화정 체제를 유지해 오고 있다.

이란 최고지도자인 알리 하메네이. 이란은 1979년 ‘이란 이슬람 혁명’을 통해 왕정을 무너뜨린 뒤 이슬람 시아파 종교 지도자가 국가 최고지도자를 맡고, 그 밑에 대통령이 포진하는 독특한 신정공화정 체제를 수립했다. 사우디 등 주변의 아랍 왕정 산유국들이 이란에 대해 가장 불편해 하는 부분이 ‘왕정을 붕괴시킨 혁명 경험’이다.

사우디는 걸프만이란 좁은 바다 건너 편에 있는 다른 종파의 종주국에서 혁명을 통해 왕정이 무너졌다는 게 불편하다. 쉽게 말해, 부패한 왕정을 종교 지도자들과 국민들이 나서서 무너뜨린 ‘혁명 경험’이 자국에도 전파될까 불안하다.

1981년 5월 사우디가 앞장서서 같은 문화(아랍), 정치(왕정), 경제(석유와 천연가스 중심), 종파(수니파) 체제를 지닌 아랍에미리트(UAE), 카타르, 쿠웨이트, 바레인, 오만(종파상으로는 수니파, 시아파와 또다른 이바디파다. 하지만 정치, 경제, 문화상으로는 사우디, UAE 등과 유사하며 수니파와도 특별한 갈등이 없었다)과 정치‧경제 연합체인 걸프협력회의(GCC)를 구성한 것도 ‘이란 견제’가 가장 큰 목적이다.

1981년 설립된 정치‧경제 연합체인 걸프협력회의(GCC)는 이란에 대한 견제를 가장 큰 과제로 삼았다. CGTN 홈페이지 캡처

다른 GCC 국가들도 정도 차이만 있을 뿐 이란에 대한 경계심은 컸다. 이들도 사우디와 마찬가지로 이란으로 인해 자신들의 왕정 체제가 흔들릴 수 있다는 점을 가장 경계한다.

바레인과 UAE는 이란과 직접적인 영토 갈등도 경험했다. UAE는 1971년 연방이 구성될 때 어수선한 과정에서 3개 섬(소툰브, 대툰브, 아부무사)을 이란에게 점령당했다. 바레인은 왕실은 수니파이지만 국민 다수는 시아파다. 그리고 이란이 “바레인은 원래 우리 영토다”라고 주장해 온 것에 대한 불안감이 크다.

● 이란의 영향력 확장 전략으로 인한 두려움

다른 종파도 정치 체제 만큼 사우디와 이란 사이를 불편하게 만드는 요소다.

특히, 이란이 시아파 종주국이란 특성을 중동 지역에서 영향력을 넓히는 데 적극적으로 활용해 왔다는 것을 사우디는 우려한다.

이란은 시아파 인구가 많고, 정세가 불안한 이라크, 레바논, 시리아, 예멘 같은 사우디 인근 나라의 정치와 안보에 적극 개입해 왔다. 현지 시아파 무장 정치단체, 언론사, 종교 지도자 등을 지원하며 해당 나라의 정치와 안보 여건을 이란에게 유리하게 바꾸는 전략을 펼쳐왔다. 필요에 따라선 무장 정치단체들을 이용해 무력 충돌도 시도해 왔다.


이란의 영향력 확장 전략에서 사우디도 예외는 아니었다.

사우디 국영 에너지 기업인 아람코의 본사와 각종 생산시설, 연구개발 단지가 자리 잡고 있는 다란과 담맘은 사우디의 대표적인 시아파 거주 지역이다. 사우디 국부의 원천인 원유와 천연가스가 주로 생산되는 사우디 동부 지역이 시아파가 많이 사는 지역인 것이다. 또 사우디 동부는 이란과 지리적으로도 가깝다.

이란으로서는 사우디에서 ‘2등 국민’ 혹은 ‘비주류’ 취급을 받으면서 각종 사회적 차별을 받아온 동부의 시아파들을 자극할 수 있다. 이를 통해 사우디 내부의 갈등도 일으킬 수 있는 것이다.


이란의 지원을 받고 있는 후티 반군(사우디는 예멘 정부군 지원)은 무인기(드론)를 이용해 2019년 9월 아람코의 아브까이끄의 원유 탈황·정제 시설과 쿠라이스 유전을 공격하기도 했다.

이로 인해, 사우디의 원유 생산량이 한동안 평소 수준의 절반으로 줄었다. 사우디 내부적으로는 “이란과 군사적 충돌이 벌어지면 아람코의 주요 시설이 대거 파괴될 것”이란 공포감도 커졌다.

이희수 한양대 문화인류학과 명예교수는 “최근 사우디가 네옴 프로젝트를 중심으로 서부 지역을 적극 개발하는 배경에는 새로운 경제 거점을 이란과 최대한 멀리 떨어진 곳에 두려는 의도도 담겨 있다”고 말했다.

● 주요 무기 개발 경험, 이란은 있고 사우디는 없어

이란과 사우디의 차이는 무기 개발 경험에서도 나타난다.

이란의 경우 무기 개발 역량이 이미 확인됐다. 사실상 1979년부터 진행돼 온 각종 크고, 작은 미국의 경제 제재 속에서도 사정거리 2000km 수준의 미사일을 대거 개발했다. 중동에서 가장 미사일 기술이 발달한 나라로 꼽힌다. 드론은 러시아가 수입해 우크라이나와의 전쟁에서 사용할 정도로 성능이 우수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란에서 ‘정부 위의 정부’로도 통하는 정예군 혁명수비대는 실전 경험도 풍부하다.

이란은 이라크 레바논 시리아 예멘 등 이른바 ‘시아파 벨트’ 내 국가에서 자신들에게 유리한 정치, 안보 여건이 조성되도록 현지 무장 정치단체를 적극 지원한다. 이런 해외 작전은 정예부대인 혁명수비대가 담당한다. 국경일 행사에서 행진 중인 혁명수비대 병사들. IRNA 홈페이지 캡처

물론 이란은 핵무기는 완성하지 못했다. 하지만 우라늄 농축 등 주요 기술에 대한 노하우는 축적돼 있다. 이스라엘 ‘모사드(정보부)’는 이란의 핵무기 개발에 참여한 것으로 알려진 과학자들을 여러 명 암살했다. 또 이란 내 핵 개발 관련 시설에 대한 공격도 진행했다. 모사드의 집요한 공작은 이란이 자체적으로 핵무기 개발에 필요한 인력과 시설을 상당 부분 갖췄다는 뜻으로도 해석된다.

반면 사우디는 지금까지 거의 전적으로 ‘미국산 무기 수입’에 의존해 왔다. 사실상 안보 자체를 미국에 의존해 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당연히 자체적으로 중요한 무기를 개발한 경험도 없다.

과학기술 전반에 걸쳐서도 일부 에너지 분야를 제외하고는 역량이 축적돼 있다고 말하기 어렵다.

그러다보니 사우디가 핵무기 개발에 나설 경우 핵 기술이 발전한 나라의 인력을 수입해야 할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핵무기는커녕 일반적인 원자력 발전소(원전)도 사우디가 자체적으로 개발 및 운용할 수 있는 역량은 크게 부족하다는 평가가 많다.

무함마드 왕세자의 발언처럼 ‘위기 상황’이 와도 정작 사우디가 핵무기를 쉽게 개발하기에는 구조적인 한계가 많다는 뜻이다.

사우디에서 장기간 근무했던 한 플랜트 전문가는 이렇게 말했다.

“사우디는 일반 석유화학 플랜트의 개발과 운용도 외국 인력과 기술에 많이 의존하고 있다. 석유화학 플랜트보다 기술 수준도 높고 복잡한 원전의 경우에도 당연히 개발과 운용 과정에서 모두 외국 인력에 의존해야 하는 상황이다. 그런데 원전 같이 민감한 기술을 외부에 의존하는 건 당연히 안정적이지도, 적절하지도 않다. 장기적으로는 오히려 더 혼란을 만들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든다.”

이세형 기자‧전 카이로 특파원 turtl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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