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Z 가고 ‘잘파’ 온다…우리는 무얼 해야할까
MZ를 넘어 잘파의 시대가 왔다. 잘파란 Z세대와 알파세대의 합성어로, 1990년대 중반 이후 태어난 세대를 통칭한다. 한국에서 가장 젊고 영(young)한 그들이 어떤 방식으로 사회의 풍경을 바꾸고 있는지 조명해본다.
이런 흐름에 묘한 변화가 감지된 건 최근의 일이다. 밀레니얼을 덜어낸 Z세대가 알파세대와 결합해 '잘파(Z+alpha) 세대’를 형성한 것. 알파세대가 2010년대 초반 이후 태어난 인구를 지칭하는 만큼 잘파세대는 곧 30세 이하 인구를 통칭하는 개념으로 볼 수 있다. 밀레니얼의 입장에서는 어쩐지 '젊은 층’에서 영영 배제된 듯해 섭섭하기만 한데 그 배경을 알고 보면 일견 납득이 가는 게 사실이다.
디지털 환경에 익숙한 Z세대의 특성을 기준으로 봤을 때, 어느 정도 아날로그를 접해본 밀레니얼세대보다는 태어나면서부터 스마트폰을 접한 알파세대와 더 결이 맞는다는 것이다. 물론 대다수 밀레니얼세대가 능수능란하게 디지털 기기를 활용하고 있긴 하지만 어느 정도 나이를 먹고 필요에 따라 학습의 형태로 입문했던 게 사실이다. 그러나 잘파세대는 아주 어릴 적부터 모국어 배우듯 자연스럽게 디지털을 접하고 익힌 디지털원주민(digital native)이다. 이들을 '디지털네이티브’라고 규정하는 것 역시 이 때문. 잘파세대의 본질은 다름 아닌 '본 투 비 디지털’이다. 그리고 이런 본질로부터 그들의 많은 특성을 설명할 수 있다.
#‘밥 먹기, 숨쉬기’처럼 당연한 온라인 활용
이은희 인하대학교 소비자학과 교수는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잘파세대의 특성을 "온라인 활용도 및 적응도"라고 설명한 바 있다. Z세대와 알파세대 모두 온라인 환경에 무척 익숙한 데다 이를 잘 활용한다는 공통점을 가졌다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디지털네이티브의 면모가 아닐까 싶은데, 아닌 게 아니라 잘파세대의 하루는 온라인에서 시작해 온라인으로 끝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쿠팡 잇츠로 음식을 주문하고 타다로 택시를 부르며 카톡으로 대화하고, 틴더로 새로운 친구를 사귄다. 야놀자에서 숙소를 검색하고 유튜브에 올라온 브이로그로 여행 정보를 수집하며 인스타그램에 여행 사진을 올려 추억을 공유한다. 이 얼마나 다채롭고도 능수능란한 플랫폼 사용이란 말인가. 급변하는 디지털 환경을 일상적으로 접하며 자란 잘파세대는 어떤 세대보다 거부감 없이 새로운 문물을 받아들이며 적극 활용한다는 특성을 지니고 있다. 하루가 멀다 하고 쏟아져 나오는 다양한 플랫폼과 서비스 앞에서 그들은 주저함이 없다.이 과정에서 흥하는 기업과 분발해야 할 기업이 생겨나기도 한다. 일례로 궁금증이 생겼을 때 밀레니얼세대는 '초록 창’을 찾았던 반면 잘파세대는 '유튜브’를 탐험한다. 네이버의 입장에서는 상당한 위협이 되는 상황. 누구보다 셈법에 능한 금융권에서는 현재 발 빠르게 잘파세대를 분석하고 있다. 요즘 초중고생들이 앱으로 재테크를 하고 주식도 하며 경제적인 감각을 일찍부터 기르고 있기 때문이다. 하나금융경영연구소에서 최근 잘파세대 및 그 학부모 1200명(초등학교 고학년 및 중고등학생, 대학생과 초등학교 고학년 학부모 등)을 대상으로 조사해 발표한 '잘파세대 금융인식 및 거래 현황 보고서’에 따르면 이들은 77.7%가 앱테크를 하고 있었다. 매일 앱테크를 활용하는 경우는 51.5%로, 대학생 71.7%, 중고등학생 40.5%, 초등학생(4~6학년) 34.3% 순이었다. 능수능란한 온라인 활용이 어느덧 경제활동까지 앞당기고 있는 셈이다. 이러한 이유로 많은 기업이 오늘도 잘파세대의 무브먼트를 예의 주시하며 그들을 사로잡을 무기를 고심하고 있다.
#놀이, 경험, 미닝아웃… 모든 것을 '소비’로
잘파세대는 소비의 과정 그 자체를 놀이화하는 경향이 있다. 화장품, 식품, 의류 등 산업 전반에 걸쳐 '품절템’ '대란템’이 끊이지 않는 것과 같은 맥락이다. 품절템, 대란템이 등장하는 대표적인 곳 중 하나가 바로 편의점이다. 먹태깡, 아사히 생맥주 캔, CU 연세우유 생크림빵 등 없어서 못 판다는 품귀템이 한둘이 아닌데, 이를 운 좋게 손에 넣은 잘파세대는 주관적 느낌이나 감상을 SNS에 공유해 일종의 트렌드와 밈을 형성한다. 이것이 바로 요즘의 놀이다. 한정판을 사기 위해 새벽부터 줄을 서고, 좋아하는 굿즈를 갖기 위해 먼 걸음을 마다하지 않고 달려가는 열정이 누군가에게는 '기현상’일지 몰라도 잘파세대에게는 '어렵게 손에 넣었을 때의 뿌듯함’ '기민하게 트렌드를 따라가고 있다는 만족감’ 등이 수반되는 재미난 놀이인 셈이다.
그런가 하면 소비를 통해 새로운 경험을 도모한다는 점 역시 괄목할 만한 부분이다. 여타 세대에 비해 새로운 기술이나 문화를 유연하게 받아들이는 잘파세대는 다소 의외다 싶은 것들을 수용하며 새로운 경험으로 승화한다. 대표적인 게 바로 '할매니얼’이다. 10대 소녀들이 꽃무늬, 인절미, 약과, 쑥, 흑임자처럼 '할매 취향’에 열광할 줄 누가 알았겠는가.
소비를 통해 자신의 개성이나 가치관을 공고히 하는 미닝아웃(meaning out) 역시 잘파세대의 특징으로 꼽힌다. 수많은 상품과 서비스가 존재하는 시대, 어떤 기준으로 소비하느냐는 곧 자신의 신념과 가치관을 드러내는 의미 있는 행위가 된다. 비건, 친환경, 공정, 기부 등 가치관에 부합되는 상품을 소비하고 이를 주위에 알림으로써 그들은 적극적으로 자신의 생각과 신념을 표출한다.
이 밖에 잘파세대 소비의 특징은 넘쳐나지만 확실한 것은 과거처럼 획일화된 소비를 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개성과 취향이 점점 더 세분화하고 이를 충족할 만한 재화와 서비스가 늘어나면서 잘파세대는 점점 더 '취향의 N극화 시대’ ' 평균 실종 시대’를 주도하고 있다.
그리고 이는 비단 소비의 영역뿐 아니라 일자리를 구하거나 주거지를 선택하는 등 생활의 전반에 걸쳐 영향을 미친다.
#‘우리’보다 '나’에 방점이 찍힌 삶
요즘 일각에서는 젊은 직원들의 '3요 현상’을 꼬집으며 비판하고 있다. 여기서의 3요란 '왜요’ '제가요’ '이걸요’로 다소 이기적이고 비협조적인 태도를 함축한 표현이다. 3요가 하나의 밈이 될 정도로 공감을 얻는 건 그만큼 톡톡 튀는 젊은 직원이 많기 때문일 터. 기성세대가 우리, 집단을 중요시했다면 잘파세대는 확실히 나와 개인에 더 방점을 두는 경향을 보인다. 꼰대 부장님과 Z세대 후배 사이에 낀 밀레니얼세대의 경우 수직적 조직문화나 사회 분위기 등을 직간접적으로나마 체감했지만 수평적이고 평등한 분위기 속에 성장한 Z세대는 사정이 많이 다르다. 알파세대도 비슷할 것으로 여겨지는데, 이런 잘파세대의 생각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통계가 속속 등장하고 있다. 최근 동아일보와 SM C&C 설문 플랫폼 틸리언프로가 실시한 조사(전국 10〜60대 남녀 1850명 대상)에 따르면 응답자 5명 중 1명(22.6%)이 '한국인인 것이 싫다’고 답했다. 특기할 만한 점은 이런 경향이 10~20대 잘파세대에서 가장 뚜렷했다는 점이다. 그 이유를 묻자(복수 응답 허용) 입시 및 취업 경쟁 등 혹독한 경쟁(39%), 야근 등 삶 자체가 힘들고 피곤(34.3%), 과시 등 보여주기식 문화(20.3%) 등을 꼽았다. 이 같은 결과에 대해 곽금주 서울대학교 심리학과 교수는 다음과 같은 분석을 내놨다. "한국의 극적인 위상 변화를 체감하면서 자긍심을 느끼는 장년층과 달리 선진국 진입 후 성장한 젊은 세대는 오히려 공정성 등에서의 불만, 반항심 때문에 비판적 성향이 더 큰 측면이 있다" 기성세대는 나라, 우리, 집단, 전체의 성장에 자긍심과 연대 의식을 느끼지만 이미 고도의 성장을 이룩한 상태에서 태어난 잘파세대는 그렇지 않다는 것. 오히려 단기간 내에 압축적인 성장을 거듭한 한국 사회가 공정성, 양극화 문제 등을 제대로 해결하지 못하며 잘파세대에게 영향을 줬다는 게 전문가의 분석이다.해당 설문에는 "K-팝 등의 위상이 나날이 높아지는 한편 이를 가장 즐기고 소비하는 계층이 잘파세대지만, 그들이 K-팝의 성공을 국뽕으로 연결 짓지 않는다"는 점을 언급하기도 했다. 요약하자면 잘파세대는 획일적인 가치관보다는 다양성을 중요시하고 불평등에 유독 민감하다는 것.
알 듯 모를 듯한 잘파세대지만, 우리가 관심을 갖고 이해하고자 노력해야 할 이유는 분명하다. 서로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며 평화롭게 조우할 수 있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서다. 서울대학교 소비트렌드분석센터 이수진 연구위원은 한 매체와의 인터뷰를 통해 "세대적 담론이 다른 세대를 구별하며 거리두기를 하는 것이 아닌, 세대를 포용하기 위한 발판이 돼야 한다"는 메시지를 전한 바 있다. 너와 나는 이렇게 다르다며 선을 긋기보단, 이렇게 다르니 서로의 특질을 이해하고 포용하자고 넌지시 손을 내밀 때 조금 더 살 만한 세상이 오지 않을까?
#잘파 #잘파세대 #여성동아
사진출처 BGF리테일 농심 언스플래쉬
정세영 기자 sy28230@donga.com
Copyright © 여성동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