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 끝...'개고기 팔면 징역' 시대 닥친다 [종소리]
[편집자주] 필요할 때 울리는 종처럼 사회에 의미 있는, 선한 영향력으로 보탬이 되는 목소리를 전하겠습니다.
오랜 세월을 이어온 음식문화 중 개고기보다 빠르게 소멸의 운명을 맞은 게 있을까 싶다. 20년 전쯤만 해도 서울 광화문 사거리에서 걸어서 갈 수 있는 거리에 소위 보신탕집이 10곳은 족히 있었다. 하나씩 하나씩 문을 닫더니 2023년 10월 현재 단 한 군데도 남아 있지 않다. 경복궁역 인근에 한 식당이 2020년 봄에 메뉴판에서 '영양탕'과 '수육' 따위를 삭제했고 그게 끝이었다.
국회 앞도 마찬가지다. 서여의도 KBS 앞 상가 지하 등 여야를 막론하고 정객들이 즐겨 찾던 보신탕집들이 있었지만 자취를 감춘 지 오래다. 다른 동네도 비슷하다. 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의 마포 단골집은 9년 전쯤 문을 닫았고, 이명박 전 대통령이 당선 후에도 포장해갔을 정도로 좋아했던 세검정 개고기 집은 '흑염소'로 간판을 바꿔 달았다. 용산 대통령실 부근에는 좁은 골목 안에 딱 한 곳이 명맥을 이어가고 있을 뿐이다.
#우리의 시야에서 사철탕, 영양탕 간판들이 사라지고 있다. '개고기 먹지 않을 자유'는 보장이 되는 듯하다. 10여 년 전까지는 공공기관의 기자단 상견례 등 어느 정도 공적인 행사도 보신탕 가게에서 여는 일이 있었다.
이제는 개를 식용의 대상으로 언급하는 것 자체가 누군가에게는 강한 불쾌감을 줄 수 있다는 인식이 상식의 영역으로 들어왔다. 싫든 좋든 먹든 안 먹든 개고기 요리를 즐기는 자리에 동석해서 선택지 없이 '삼계탕'을 주문해야 하는 고충도 사실상 사라졌다.
개고기에 '자유'까지 거론하더라도 거창한 건 아니다. 이미 민족주의 감성 등과 같은 휘발성 강한 담론에 끊임없이 올라타 부침을 겪은 이슈다. 2002년 솔트레이크시티 동계올림픽 오노 사건 당시 김동성을 미국 방송에서 개 식용을 소재로 조롱하고 프랑스 여배우 브리지트 바르도 등이 '개고기 먹는 한국'을 공격할 때마다 개고기는 자존심 문제로 치환되기도 했다.
정치적으로도 활용돼왔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성남시장 시절 주요 치적으로 2016년 모란 개시장 철폐(도살 이외에 개고기 판매는 계속됨)가 꼽히는 게 그렇다.
#개고기 먹지 않을 자유를 넘어 먹을 자유가 곧 박탈될 전망이다. 사생결단의 극한 대립을 계속하는 여야가 '개 식용 금지(종식) 등을 위한 특별법' 제정에만큼은 뜻을 모으고 있다. 지역 민심 눈치를 보는 추석도 끝났고 올 정기국회에서는 통과가 확실시된다. 내년 총선을 앞두고 여야의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진 결과다. 개를 가족으로 여기는 반려견 문화에 익숙한 다수의 표를 노렸다.
반발이 예상(?)되는 고령층에서 상대적으로 높은 지지를 받는 국민의힘조차 적극적이다. 고령 지지자가 '개고기 먹을 자유'를 뺏기더라도 설사 민주당을 찍지는 않을 것이란 계산이 깔린듯하다.
현재 국회에 제출된 법안은 4건, 내용은 대동소이하다. 개를 사용해 만든 음식물 또는 가공품을 그 사실을 알면서 취득, 운반, 보관 또는 판매하거나 그러한 행위를 알선하면 징역형(법안에 따라 1년 이하 혹은 2년 이하 등)까지 처할 수 있다. 유예기간은 법안마다 3~5년 정도다. 여당 소속 이헌승 의원안은 3년으로 상대적으로 짧다. 현 정권 임기 내에 개 식용을 끝장내겠다는 의지가 엿보인다. 개고기 팔다가 징역살이할 수 있는 세상이 곧 닥친다.
#문화의 범주를 법으로 금지한다는 비판이 가능할까. 무엇을 먹을지는 개인의 기본권 영역인데 이를 강제로 막는 게 타당하냐의 문제이기도 하다. 개 식용을 보는 불편한 시선이 압도적임에도 불구하고 이런 질문과 종종 만난다.
오히려 젊은 층에서 개개인의 선호와 별개로 '먹을 자유'를 원천적으로 금지하는 것에 더 민감할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한국갤럽의 개 식용 인식 조사(전국 만 18세 이상 1001명 전화 면접, 표본오차 ±3.1%포인트·95% 신뢰수준)는 흥미롭다. 2015년과 2022년 조사를 비교해보면 극적인 변화다. '개 식용 좋게 본다'는 응답은 37%에서 17%로 급감했고 '최근 1년간 개 식용 경험이 있다'는 답도 27%에서 8%로 곤두박질쳤다.
그러나 고정관념과 달리 나이가 많을수록 개 식용을 좋게 보는 경향은 나타나지 않았다. 20대(18~29세)와 30대에서 개 식용을 좋게 보는 비율(13~25%)과 60, 70대 이상에서 좋게 보는 비율(19~26%)에 큰 차이가 없었다. 물론 20, 30대의 최근 1년 사이 개 식용 경험은 2~6% 수준으로 매우 낮았다. 즉 젊은 층에서는 자신은 먹지 않지만 그렇다고 남들이 먹는 것을 문제삼지도 않겠다는 이들이 꽤 있는 셈이다.
#개고기 먹는 게 개인의 행복추구권에 해당한다고 해도 법으로 막지 말라는 법도 없다. 법이란 것 자체가 사회적 합의에 따라 개인의 기본권을 일정 정도 제한하는 체계다. 대만은 개 식용 금지를 위해 동물보호법을 2017년 개정했고 홍콩도 개 식용을 금지하고 있으며 중국 역시 지방정부를 중심으로 개 식용 금지가 수년 전부터 입법되기 시작했다.
다만 사회적 합의를 일구는 과정이 관건이다. 총선을 앞둔 얄팍한 계산이 아니라 개고기 앞에서 놀랍게 같은 입장을 내는 여야의 담합이 아니라 다양한 목소리가 녹아 들어가는 민주적 절차에 관한 문제다.
이원재 카이스트 문화기술대학원 교수는 최근 일련의 개 식용 금지 입법 추진에 "자유의 본질과 자유를 보장하는 법의 정신에 관한 깊은 성찰이 수반된 상황에서 내려지는 입법이냐, 아니면 개인의 선호와 정치적 효과가 맞아떨어지는 지점에서 여야협치가 생기는 유일한 현상이냐"고 일갈했다.
여야가 공언한 대로 올해 정기국회에서 입법화된다고 해도 이후 나아갈 지점이 훨씬 더 많다. 개는 안 되고 소, 돼지는 되느냐 식의 단순한 차원이 아니다. 동물복지에서부터 기후 위기 시대에 비효율적 육식의 문제까지 곳곳에서 근본적 질문과 더욱 마주칠 수밖에 없다.
우리 사회의 체제와도 맞닥뜨린다. 자유민주주의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존재와도 공존을 모색해가는 데 그 묘미가 있다. 억압이 아닌 자유, 배제가 아닌 연대가 기본 원리이기 때문이다. 먹을 자유조차 제한할 정도로 동물권이 전면에 부각되면 소수자나 이주민 등 지금껏 미처 조명받지 못했던 존재들의 권리 이슈도 떠오를 수 있다. 개고기 금지 논쟁은 환영하지만, 이것이 쏘아 올릴 공의 파장은 이래저래 간단치 않다.
박종진 기자 free21@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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