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공 모닝] 스타벅스가 점령하지 못한 나라는 어디?
5년 전 처음 베트남에 발을 디뎠습니다. 그야말로 우당탕탕거리며 베트남 구석구석을 휘젓고 다니는 게 취미입니다. 우리에게 ‘사이공’으로 익숙한 베트남 호찌민에서 오토바이 소음을 들으며 맞는 아침을 좋아했습니다. ‘사이공 모닝’을 통해 제가 좋아하던 베트남의 이모저모를 들려 드리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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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에 커피를 몇 잔이나 드시나요? 한국의 커피 시장 규모는 2021년 기준 43억 달러로 미국(261억 달러)과 중국(51억 달러)에 이은 세계 3위라고 합니다. 우리나라에서 1위는 단연 스타벅스일 겁니다. 1999년 처음 문을 연 스타벅스가 올해는 점포 수 1800개를 넘어섰다고 합니다. 미국, 중국 다음으로 스타벅스 매장이 많은 나라라고 합니다. 한국의 웬만한 건물은 물론, 한강에도, 병원이나 학교 안에도 스타벅스가 자리 잡고 있는 걸 보면 놀라운 일도 아닙니다.
스타벅스에 점령당한 것은 우리나라뿐만이 아닙니다. 전 세계 86개국에 3만6000여개 매장을 운영하는 스타벅스는 커피 종주국으로 꼽히는 이탈리아에서도 ‘오픈런’(일찍부터 매장에 줄을 서서 구매하는 것)을 일으킬 정도로 인기를 얻고 있습니다. 일본에서도 자국 브랜드인 도토루보다 많은 매장을 갖고 있고, 중국에서도 커피 시장 점유율 1위 자리를 유지 중이지요.
그런데 이런 스타벅스의 위상이 베트남에서는 말이 아닙니다. 유로모니터에 따르면 스타벅스는 베트남 커피 시장(12억 달러)에서 단 2%의 점유율 밖에 차지하고 있지 못합니다. 하이랜드(Highlands), 더커피하우스(The Coffee House), 쭝옌(Trung Nguyen), 푹롱(Phuc Long) 같은 베트남 커피 체인점들이 대부분의 시장을 차지하고 있지요.
점포 확장 속도도 더딥니다. 스타벅스는 올해 9월 공식 오픈한 하노이 롯데몰 웨스트레이크에 베트남 100호점을 냈습니다. 스타벅스가 10년 전인 2013년 2월, 베트남 호찌민 1군에 1호점을 내며 베트남 시장에 진출했다는 것을 생각해보면 100호점을 내는 데 10년이 걸린 셈입니다. 한국에서 스타벅스가 5년 만에 100호점을 오픈했던 것에 비해 2배나 긴 시간이고, 베트남 1위 커피 체인점인 하이랜드 커피 매장 수(약 300개)의 3분의 1밖에 되지 않습니다.
베트남 사람들이 커피를 즐기지 않나 싶겠지만 사실 베트남은 브라질에 이은 세계 2대 커피 생산국이자 수출국입니다. 에스프레소를 내리는 아라비카 원두가 아니라 맛이 좀 더 진하고 쓴 로부스타 원두가 베트남이 주로 생산하는 커피 품종이지요. 우리가 즐겨 먹는 믹스 커피에 사용하는 것이 바로 로부스타 원두입니다. 커피 원두 생산국인 만큼 커피 문화가 발달한 나라이기도 합니다. 2022년 기준 전국에 33만8600개의 카페가 있는 것으로 조사됐습니다. 베트남 사람들은 연유나 코코넛을 넣은 커피나 우유 대신 계란 거품을 내어 넣은 에그 커피까지 다양한 방식으로 변주한 커피를 즐겨 마십니다. 베트남 어느 길거리를 가도 목욕탕 의자에 앉아 커피를 즐기는 베트남 사람들을 마주할 수 있습니다. 하이랜드·더커피하우스·푹롱 같은 베트남 현지 커피 체인점에는 커피 배달을 하려는 배달 기사들이 줄 서 있는 모습을 쉽게 볼 수 있죠.
그럼 스타벅스가 유독 베트남에서만 힘을 못 쓰는 이유가 뭘까요? 첫 번째 이유로 꼽히는 것은 바로 ‘가격’ 입니다. 베트남 스타벅스에서 중간 사이즈 음료는 9만동(약 5000원) 수준입니다. 하이랜드커피 중간 사이즈 가격(3만5000~3만9000동)의 2배 이상이지요. 같은 사이즈의 아메리카노(4만9000동) 가격과 비교해도 비싼 편입니다. 더커피하우스도 연유 커피는 큰 사이즈를 3만9000동, 아메리카노도 같은 사이즈를 4만9000동에 냅니다. 길거리 커피는 2만동이면 마실 수 있지요. 베트남 사람들이 생각하는 적정 가격과 스타벅스의 가격에 괴리가 있을 수밖에 없습니다. iPOS가 발표한 2022년 식음료 시장 보고서에 따르면 베트남 소비자는 커피 한잔에 1.7달러에서 2.97달러를 지불할 의향이 있는 것으로 조사됐습니다. 베트남 동으로 환산해보면 4만동에서 7만5000동 수준입니다.
하지만 스타벅스의 부진을 가격으로만 설명하기엔 좀 이상합니다. 베트남에서는 스타벅스보다 비싼 커피와 음료를 파는 가게들에도 손님이 바글바글하거든요. 베트남 고급 커피 브랜드로 꼽히는 쭝우옌레전드커피도 시그니처 메뉴는 17만동에, 박씨우라고 불리는 커피는 6만동에 팝니다. 지점마다 가격이 조금 차이가 나긴 하지만 젤리가 든 라떼나 카라멜마끼아또가 7만5000동, 8만동 수준인 것을 보면 스타벅스와 가격 차이가 크다고 볼 수도 없습니다. 베트남 사람들이 좋아하는 인스타그램용 사진을 찍을 수 있는 화려한 인테리어의 카페들은 더 비싼 가격의 음료를 팝니다. 숲 속에 들어온 것처럼 나무와 꽃으로 장식하고, 새장 모양의 테이블을 넣는 등 편집숍처럼 매장을 꾸미는 루진 카페는 커피 메뉴를 6만~10만동, 과일 주스나 무알콜 칵테일 등은 10만동이 넘는 가격에도 팝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베트남 젊은 층이 매장을 가득 메우죠.
스타벅스 부진의 이유는 다양한 측면에서 베트남 소비자의 눈높이를 충족하지 못했기 때문으로 해석됩니다. 베트남 사람들이 즐겨 먹는 커피가 여전히 로부스타 원두로 낸 진한 커피인데 아라비카 원두로 만든 커피만 파는 스타벅스가 입에 안 맞을 수 있지만, 아메리카노나 라떼 같은 비슷한 수준의 커피도 다른 커피 브랜드 매장에서 더 저렴한 가격에 마실 수 있습니다. 현지화된 메뉴가 별로 없는데다가 전 세계 어디와도 비슷한 스타벅스의 인테리어 때문에 ‘꼭 가봐야 하는 특별한 공간’으로 인식되지 못한 측면도 있습니다. 카페에서 식사까지 해결할 수 있도록 하는 베트남 현지 브랜드 카페와 달리 디저트 중심의 사이드 메뉴 구성도 아쉬운 부분입니다. 저 같은 경우에는 와이파이를 무한 제공하고, 노트북 콘센트가 즐비한 베트남 브랜드 카페들과 달리 2시간마다 메일 주소를 입력해 로그인을 갱신하게 하고 콘센트 자리를 많이 만들지 않는 베트남 스타벅스가 정(情) 없게 느껴지기도 했습니다.
베트남 커피 시장이 쉽지 않은 영역인 것은 사실입니다. 호주 커피 브랜드 ‘글로리아진스’도 베트남 시장 진출 10년 만에 완전 철수를 했고, 중국 유명 커피 브랜드인 멜로어 커피도 4년 만에 베트남 시장에서 발을 뺐습니다. 2015년 베트남 시장에 진출했던 한국 커피 브랜드 ‘할리스’는 1년도 채우지 못하고 사업을 포기했고, 커피빈으로 불리는 커피빈앤티리프도 베트남에서 사업을 축소하고 있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베트남 커피 시장은 도전해볼 만한 시장입니다. 베트남 사람들의 커피 소비량이 올해에만 5~10% 증가하고, 23~30세 사이 소비자들의 음료 소비가 더 늘어날 것으로 전망되기 때문입니다. 인테리어가 독특하거나 착즙 주스나 차를 기본으로 하는 등 건강을 내세운 카페, 인스타용 사진을 찍기 좋게 만든 커피나 음료를 파는 곳이면 글로벌 브랜드가 아니어도 베트남 젊은 층이 몰립니다. 자기 색깔이 확실한 매장은 알아서 찾아온다는 것이죠. 호찌민 1군의 러닝빈(Running bean) 카페 같은 곳은 주말마다 외제차를 끌고 온 베트남 젊은이들이들로 가득 찹니다. 호찌민 2군의 커피커피에도 사진을 찍으려는 커플들과 수다떠는 젊은 고객이 잔뜩 몰립니다.
그래도 베트남이라면 길거리에 깔린 목욕탕 의자에 앉아 마시는 달달한 커피가 최고라고 생각됩니다. 진득한 에그 커피도 별미이죠. 레몬그라스를 넣은 달달한 복숭아 아이스티도 좋아하는 메뉴입니다. 명절 음식이 느끼해질 때쯤 커피 한잔 어떠신가요? 그 커피 원두가 베트남에서 온 건 아닐까 생각해보면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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