냉전의 내전화, 尹대통령 '이중 전쟁' 종착지는?

2023. 10. 2. 05: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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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배 탄 尹·바이든 앞에 드리운 '트럼프 변수'

[임경구 기자(hilltop@pressian.com)]
2022년 2월 24일 러시아의 침공으로 우크라이나 전쟁이 시작됐다. 보름 뒤 치러진 한국 대선에서 윤석열 대통령이 당선됐다. 5월 21일, 윤 대통령은 취임 열흘 만에 방한한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과 첫 정상회담을 가졌다. 중국은 "폐쇄적이고 배타적인 소그룹을 만들지 말라"고 미국을 견제했다.

대통령 취임사에서 윤 대통령은 "보편적 가치 공유", "자유의 가치 재발견"을 강조했다. 한미동맹을 외교의 근간으로 삼는 한국 정부가 미국이 주도하는 '가치동맹'을 거부하기 어려운 현실을 반영했다. 미중 경쟁과 우크라이나 전쟁이 표상하는 신냉전의 먹구름 속에 출범한 보수 정부의 불가피한 선택으로 인정받았다.

곧바로 한미동맹, 한미일 공조 강화로 직진했다. 올해 4월 핵 기반 동맹 관계로 다가선 한미 '워싱턴 선언', 한미일 안보 협력 제도화의 발판을 마련한 9월 '캠프 데이비드' 합의는 윤 대통령이 올라탄 가치동맹의 소산이다. 이전 정부에서 최악으로 치달았던 한일관계는 "미래지향적 관계"로 전환했다.

대신 한중 관계에 기회비용을 초래했다. 북한과 러시아의 '위험한 거래'도 대가로 돌아오고 있다. 한일관계 개선의 비용도 만만찮았다. 강제징용 문제에서 일본은 배상을 거부하고 사죄도 유보했다.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로 한국 정부에 난처한 상황을 안기기도 했다.

윤 대통령은 처음부터 내치와 외치의 경계를 허물고 국정에 임했다. 취임사에서 "우리나라는 국내 문제와 국제 문제를 분리할 수 없다"면서 "국제사회가 우리에게 기대하는 역할을 주도적으로 수행할 때 국내 문제도 올바른 해결 방향을 찾을 수 있는 것"이라고 했다.

그 예고에 따라 신냉전적 국제 질서에는 모호성을 폐기하고 대응 기조를 잡았다. 동시에 내전에 가까운 국내 갈등도 전면화했다. 화물연대, 건설노조, 민주노총, 시민단체를 몰아붙인 '이권 카르텔' 척결, 문재인 정부와 더불어민주당을 향한 흑백 논리가 이념 전쟁으로 거칠어졌다.

지난 6월 자유총연맹을 찾은 윤 대통령은 "왜곡된 역사의식, 무책임한 국가관을 가진 반국가 세력들은 핵무장을 고도화하는 북한 공산집단에 대해 유엔 안보리 제재를 풀어달라고 읍소하고, 유엔사를 해체하는 종전선언을 노래 부르고 다녔다"고 했다.

8.15 광복절 경축사에선 '공산전체주의'라는 생경한 용어를 반국가 세력의 정체를 지칭하는 의미로 썼다. "공산전체주의를 맹종하며 조작 선동으로 여론을 왜곡하고 사회를 교란하는 반국가 세력들이 여전히 활개 치고 있다."

9월 국립외교원을 방문해선 "공산전체주의 세력과 그 기회주의적 추종 세력, 그리고 반국가 세력은 반일 감정을 선동하고, 캠프 데이비드에서 도출된 한미일 협력 체계가 대한민국과 국민을 위험에 빠뜨릴 것처럼 호도하고 있다"고 했다.

이념 갈라치기는 육군사관학교 홍범도 장군 흉상 이전 논란을 정치 한복판에 끌어올렸다. 급기야 국민의힘 연찬회에서 윤 대통령은 "이념보다는 실용이라고 하는데 기본적으로 분명한 철학과 방향성 없이는 실용이 없다"며 "제일 중요한 게 이념"이라고까지 했다.

"이념적으로 극과 극이라 싸우지 않을 수 없다. 장관들이 적극적으로 싸우라"고 다그친 내각도 흡사 '전시 내각'을 방불케하는 진용으로 구성했다. 극렬한 반대론을 무릅쓰고 이동관 방송통신위원장, 김영호 통일부 장관을 임명한 데 이어 신원식 국방부, 유인촌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후보자를 발탁한 인사 기조는 '이념 투사' 전진배치다.

▲윤석열 대통령이 9월 9일(현지시간) 인도 뉴델리 바라트 만다팜 국제컨벤션센터에서 열린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 갈라 만찬에서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과 나란히 옆자리에 앉아 현안에 대해 논의하고 있다. ⓒ연합뉴스

총선과 美 대선, 尹 앞에 놓인 두 번의 고비

가장 공격적인 방식으로 냉전과 내전을 병행하고 있는 윤석열 정부에 대한 중간 결산은 내년에 이뤄진다.

첫 번째 고비는 4월 총선이다. 적어도 그때까지 윤 대통령은 '이념 전쟁'을 누그러뜨릴 기색이 없다. 지지층을 강화하고, 중간층을 끌어당기고, 반대층을 약화시키는 선거공학에 어긋나더라도 윤 대통령 스타일상 후퇴하지 않을 거란 관측이다.

최창렬 용인대 특임교수는 "윤 대통령의 인식은 내면화돼 있다"며 "보수층을 결집하려는 의도도 있겠지만, 역사인식, 국제질서 인식에서 의외로 강경보수적인 윤 대통령의 면모가 드러났다"고 했다.

최 교수는 "특히 미국, 일본과 가까워지면서 본능적인 미일 친화적 의식이 국내 정치에도 그대로 반영되고 있다. 시대와 맞지 않는 '공산전체주의', '반국가세력' 같은 표현들은 그래서 나온 것"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윤 대통령의 이념 전쟁으로) 보수층은 결집하겠지만, 수도권을 중심으로 하는 중도층에게는 선거공학적으로 득이 되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국제질서의 분기점이 될 내년 11월 미국 대선은 국내외를 관통해 윤 대통령이 뛰어든 '체제 전쟁'의 지속 가능성을 결정할 최대 변수다.

바이든 대통령이 재선에 성공하면 '가치동맹'의 핵심 파트너인 윤 대통령의 국제적 위상도 높아진다. 한미일 군사협력 제도화, 인도태평양 전략 추진의 동력이 채워지는 동시에 국정방향 설정의 정당성을 인정받게 될 전망이다.

반면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재집권하면 바이든 정부와 전혀 다른 미중 관계, 미러 관계 설정이 예상된다. 공화당 대선 주자들을 압도하는 트럼프 전 대통령이 최근 바이든 대통령마저 오차범위 밖인 9%포인트 차이로 제쳤다는 여론조사 결과가 나와 술렁이고 있다.

윤석열 정부 국가안보실장을 지낸 김성한 교수는 최근 학술대회에서 "미 대선 예비주자 중에는 미국 우선주의와 동맹 경시적 사고를 가진 인사들이 있다"며 "앞으로 1년 반 정도가 우리에게 주어진 골든타임"이라고 했다.

트럼프 재집권이 현실이 될 경우 '워싱턴 선언'과 '캠프 데이비드 합의' 등 윤 대통령이 공들인 외교적 성과가 한꺼번에 초기화될 수 있어 서둘러 '핵우산' 정책의 불변성을 완성해야 한다는 뜻으로 해석됐다.

동맹 정부의 성격과 이념을 구분하지 않고 청구서를 내밀던 트럼프 전 대통령의 고립주의는 한국 정부도 방위비 분담금 대폭 인상과 '주한미군 철수' 압박으로 경험한 바 있다.

최창렬 교수는 "만약 트럼프가 당선되면 윤 대통령의 인식의 기초가 무너지는 것"이라며 "최근 중국 시진핑 주석과의 정상회담 가능성이 거론되고 있지만, 한중, 한러 관계가 관리돼 있지 않은 윤석열 정부가 국제정세를 너무 낙관적으로 해석하는 게 아닌지 우려된다"고 했다.

[임경구 기자(hilltop@pressi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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