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은 남한, 러시아는 북한…대륙의 '남방정책' 속 우리는?
이번엔 중러 두 나라가 '남방정책'? 각각 남북한에 손 뻗어
외교2차관 "시진핑 주석 방문 공동 인식 굉장히 무르익어"
러시아는 고립 타개 위해 北에, 중국은 '디리스킹' 위해 南에
중국은 북러 밀착할수록 불편, 한국과도 관계 개선 필요
尹 '가치외교' 시험대로…'할 말 하겠다'에서 강경 스탠스 조정
북러 밀착 견제하기 위해서도 한중관계 회복은 중요
1980년대 후반 노태우 대통령의 '북방정책'은 한국 외교사에서 매우 획기적인 패러다임 변화로 평가된다. 냉전의 반공질서 속 언급조차 금기시되던 '소련' 그리고 '중공'과 1990년, 1992년에 잇따라 수교하면서 1991년 남북한의 유엔 동시가입, 남북기본합의서, 한반도 비핵화 공동선언으로 이어졌다.
30여년이 흘러 '신냉전'이라는 말이 공공연히 회자되는 가운데 이제는 중국과 러시아가 각각 남북한을 끌어들이고 있다.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고립된 러시아는 북한을, 중국은 미국과 일본의 압박 속에서 남한에 손을 뻗고 있다. 두 대륙국가의 '남방정책' 속에서 우리 외교에도 유연한 결단이 필요한 이유다.
北 끌어들인 러시아, 나로호에 쓰인 엔진 보여주며 韓에도 포석
양측 매체 모두 정상회담의 구체적 내용을 밝히지는 않았지만 이날 정상회담이 아무르주 보스토치니 우주기지에서 열리고, 이후 김 위원장이 하바롭스크주 콤소몰스크나아무레에 있는 유리 가가린 전투기 공장, 블라디보스톡의 군 비행장과 태평양함대 기지 등을 둘러본 데서 이번 방러의 성격을 짐작할 수 있다.
이 과정에서 김 위원장이 살펴본 안가라 로켓은 우리 나로호에 쓰인 RD-151 엔진의 원형인 RD-191을 장착한 로켓으로, 나로호의 발사 데이터를 이용해 완성됐다는 점을 감안하면 우리에게도 일정한 메시지를 던지고 있다고 해석된다.
과학기술정책연구원 이춘근 명예연구위원은 "어떤 면에서 보면 남한이 쓰고 있는 기술의 원조격인 로켓을 북한에 제시하고 북한과 협력할 수 있다고 손을 내민다는 것은 남북한의 경쟁, 또는 견제를 통해 정치적인 포석으로 자리잡을 수 있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푸틴 대통령은 이 과정에서 김 위원장의 방북 요청을 수락했지만 그 일정은 아직 확정되지 않았다. 반면 중국 베이징에서 열리는 일대일로 프로젝트 정상회의 참석은 확정됐다.
홍현익 전 국립외교원장은 세종연구소의 '정세와 정책' 2023년 9월호에서 "우크라이나 전쟁 이전까지 한국의 친구이자 전략적 동반자였던 러시아가 한국과의 경협을 통한 이익을 희생시키더라도 북한에게 전투기 같은 무기나 인공위성 등 첨단 군사기술을 이전해 한국의 안보이익을 결정적으로 훼손할 수 있는 준(準)적대국으로 바뀐 것"이라며 "한국은 미래 국가전략과제인 북핵문제 해결,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 북한 급변사태의 원활한 해결, 평화 통일 등의 수행 과정에서 협력이 절실히 요망되는 러시아의 협력을 기대하기 어려워졌다"고 평가했다.
북러 복잡하게 지켜보는 中, 한미에 손 뻗어…무르익는 시진핑 방한
지난 9월 23일 항저우 아시안게임 개막을 위해 중국을 찾은 한덕수 국무총리와 시진핑 주석이 만났는데, 정부 고위 당국자는 이날 "시 주석이 먼저 '방한 문제를 진지하게 검토하겠다'는 언급을 했다"고 설명했다.
3일 뒤인 9월 26일 서울에서는 한중일 정상회의 개최를 위한 3국 차관보들의 고위급 회의(SOM)가 열렸는데, '상호 편리한 가장 빠른 시기'에 정상회의를 열기로 했으며 일단 준비를 위해 11월에 부산에서 3국 외교장관회의를 열기로 했다. 정상회의 시점은 올 연말로 예상된다.
이날 오전에도 외교부 오영주 2차관이 CBS 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 출연해 "항저우에서 (한덕수) 총리님과 시진핑 주석 간의 아주 진지한 만남이 있었고, 그전에도 최근 한국과 중국 사이에 고위직에서는 교류, 이런 여러 가지 좋은 소통의 분위기가 있다"며 "시진핑 주석의 방문과 관련돼 있는 여러 가지 공동의 인식, 그건 굉장히 무르익었다고 말씀드릴 수 있지만 구체적으로 언제 오실 것이냐 말 거냐, 이러한 협의가 있는 것은 아니다"고 말했다.
여기에 더해 중국의 외교 사령탑인 왕이 공산당 중앙외사판공실 주임 겸 외교부장은 지난 9월 26일 기자회견에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오는 11월 미국에서 열리는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 참석을 긍정적으로 검토하고 있다는 입장을 밝혔다.
미묘히 다른 두 대륙국가의 속내…우리는 한중관계 회복이 급선무
그 때문에 한편으로는 북러관계가 깊어지는 것을 다소 불편한 시각으로 보는 것도 사실이다. 러시아로 인해 자신들의 대북 영향력이 줄어드는 것을 반기지 않고, 북한의 도발 등 위험한 행보가 계속될수록 한미일 안보협력이 강화되기 때문에 결과적으로 중국에 대한 압박이 심화되는 결과를 초래할 가능성이 높아서다.
사실 중국은 과거에도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THAAD) 배치 파동 등에서 엿볼 수 있듯, 한국을 통한 미국의 대중 견제를 매우 경계해 왔다. 하지만 당시 경제보복 등의 '강경책'이 한국 내의 반중감정 등 상당한 반발에 부딪히면서 최근 이같은 노선을 수정하려는 태도가 엿보인다.
한편으로 이는 우리에게는 다행인 부분이기도 하다. 중국이 미국과 일정 부분 대화와 대립을 하고 있지만 미국 주도 국제질서를 따르는 길을 택했고 한중관계 회복을 노리고 있으며, 우리 입장에서도 양국 교역은 물론 현 남북관계 상황에서 우리가 직접적으로 북한과 대화할 수 없기에 한중관계 회복이 필요하다.
한평정책연구소 왕선택 글로벌외교센터장은 "중국의 입장에서는 미국·일본과 한국을 카테고리를 달리해 '협조가 가능한 국가'로 관리하는 것이 이익에 부합하고, 실제로 최근 흐름을 보면 이를 택한 것으로 보인다"며 "한국 정부는 윤 대통령 취임 이후 중국의 외교적 노력에 의해 한중관계가 최악으로 가지 않을 수도 있다는 부분에 희망을 걸고 최근 중국에 대한 강경 스탠스를 조정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이 때문에 "한중정상회담과 한중일 정상회담 2가지 이벤트가 윤석열 정부의 외교 성과를 좌우하는 변수가 됐다"며 "이를 성사시키지 못하면 윤석열 정부 외교 정책은 부작용이 크다는 비판이 정당화된다"고 덧붙였다. 처음에는 '중국에 할 말은 하겠다'던 정부 기조가 오히려 중국을 자극하지 않는 방향으로 바뀌는 상황이 벌어지는 셈이다.
'영원한 적도, 친구도 없다'는 외교가의 금언처럼 이러한 일은 드물지 않게 벌어지는데, 동시에 윤석열 정부의 '가치외교'를 시험대에 올려놓는 상황이기도 하다. 한반도 주변의 6개 국가가 얽혀 돌아가는 외교전 상황 구도는 애초에 단순화하기에는 지나치게 복잡하기도 하다.
홍현익 전 원장은 "중국이 북러 안보협력 강화에 제3자적 입장을 유지하도록 하려면 한국 정부는 중국 지도부와의 소통을 증진하고 상호존중의 필요성을 강조하면서도 대만 문제 등 중국의 사활적인 이익에 대해서는 신중하게 접근하고 현명하게 언급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다만 북러의 밀착이 심화되는 과정에서 이를 직접적으로 견제할 장치가 마땅찮다는 문제가 있다. 일단 양국간 군사협력이 구체적으로 어떻게 진행될지 정확한 내용을 알기 어려운 상태에서 대응책 등을 수립하기가 현실적으로 쉽지 않을 뿐더러 알더라도 대응책이 딱히 없다. 외교부는 안드레이 루덴코 아시아·태평양 담당 외교차관 등 고위급 인사의 방한을 추진하고 있지만 확정은 되지 않았다.
왕 센터장은 "북러정상회담은 우리 입장에선 군사적 위협이 될 수 있기에 민감히 봐야 하는데 남북 채널은 단절돼 있고, 한러 소통 채널도 약해 직접적으로 대응하기 어렵다"며 "러시아와 북한이 중시하는 중국의 (반미 연대) 참여 여부가 앞으로 큰 변수가 될 수 있기 때문에, 한중간의 협력을 통해서 해결하고 장기적으론 북한·러시아와의 대화도 꾸준히 진행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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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BS노컷뉴스 김형준 기자 redpoint@c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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