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공군 물리치고 전초기지 지켜낸 한주섭 중령, '10월 호국인물' 선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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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5전쟁이 후반부로 접어들던 시기 한 뼘의 땅이라도 더 빼앗기 위해 덤벼드는 중공군을 무찌르고 아군의 전초진지를 지켜낸 한주섭 해병 중령이 전쟁기념사업회(회장 백승주)가 선정한 이달(10월)의 호국인물로 뽑혔다.
수적으로 우세한 중공군에 맞서 용감히 싸웠지만 37진지를 내주고 말았다.
이후 해병대는 37진지를 되찾기 위해 여러 차례 역습을 퍼부었으나 중공군의 막강한 화력에 밀려 번번이 좌절을 겪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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을지무공훈장 수훈… 대전현충원에서 영면
6·25전쟁이 후반부로 접어들던 시기 한 뼘의 땅이라도 더 빼앗기 위해 덤벼드는 중공군을 무찌르고 아군의 전초진지를 지켜낸 한주섭 해병 중령이 전쟁기념사업회(회장 백승주)가 선정한 이달(10월)의 호국인물로 뽑혔다.
1952년 3월 해병대는 경기 파주의 장단·사천강 지구에서 중공군 제65군 예하 194사단 및 195사단과 대치하고 있었다. 당시는 정전협정 체결을 위한 협상이 어느 정도 무르익은 때였다. ‘쌍방 간의 접촉선을 휴전선으로 한다’는 원칙이 이미 정해져 있었던 만큼 남북은 휴전 이전에 한 뼘의 땅이라도 더 확보하기 위해 치열한 공방전을 벌였다.
중공군은 접촉선을 남쪽으로 이동시킬 목적으로 1952년 10월 2일을 기해 모든 전선에서 추계 1차 공세를 시작했다. 해병대가 방어하던 장단 지구도 중공군의 공격을 받았다. 장단 지구는 개활지와 구릉지대가 대부분이어서 방어가 몹시 어려웠다. 수적으로 우세한 중공군에 맞서 용감히 싸웠지만 37진지를 내주고 말았다. 이후 해병대는 37진지를 되찾기 위해 여러 차례 역습을 퍼부었으나 중공군의 막강한 화력에 밀려 번번이 좌절을 겪었다.
이 공훈으로 한 소위는 을지무공훈장을 받았다. 전공을 세운 군인에게 수여하는 무공훈장은 5등급으로 나뉘는데 을지무공훈장은 태극무공훈장에 이어 두 번째 등급에 해당한다.
한 소위는 그 뒤로도 1953년 7월 27일 정전협정 체결 때까지 여러 전투에 참전했다. 전쟁이 끝난 후에도 제대하지 않고 군에 남아 해병대 발전에 이바지했다. 1973년 중령 계급을 끝으로 전역했으며 1987년 5월 1일 55세를 일기로 타계했다. 고인은 국립대전현충원 장병 1묘역에 안장됐다.
김태훈 기자 af103@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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