軍 5년간 마약사범 118명···마약 청정지역 아닌 ‘사각지대’[이현호 기자의 밀리터리!톡]
“軍 온정주의, 엄정대응 의구심”
공무원은 징계, 군인은 유야무야
빵에 대마 발라먹고 관물대 보관
추석 연휴 9월 30일 아침 에 휴가 나온 군 장병이 자택 등에서 필로폰을 투약한 혐의로 수사를 받고 있다는 기사가 올라와 아침 식탁에 모인 가족들의 대화 소재가 됐다. 군 장병이 어떻게 마약 사범이 될 수 있는지 이해할 수 없다며 가족들은 이구동성으로 “너무 어이가 없다”는 반응이다.
군 생활이 힘들어도 그렇지 군 기강이 엄격한 군대에서 장병에 대한 정신 교육이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닌지, 휴가 나갔다가 후 복귀 이후 과정에서 이 같은 범죄 행위에 대해 사전에 걸러낼 수 있는 장치가 없다는 건 군 장병 관리 시스템에 구멍이 생긴 것이 아니냐는 지적이다.
군에 따르면 필로폰을 투약한 육군 A일병을 마약류 관리에 관한 법률 위반 등 혐의로 구속 수사하고 있다. 강원도 모 부대 소속인 A일병은 휴가를 나가 자택 등에서 필로폰을 투약한 혐의를 받고 있다. 육군 군사경찰은 지난달 31일 관련 신고를 접수하고 A일병 자택 등을 압수수색해 증거물을 확보한 것으로 전해졌다. 군경찰은 지난 15일 A일병을 군검찰에 구속 송치했다.
앞서 지난 4월에는 경기도 연천의 한 육군 부대에서 병사들 다수가 대마초를 택배로 받아 나눠 피우다 적발되며 화제가 됐다. 적발되는 군 장병은 대부분 입영 전 민간인일 때부터 마약에 노출돼 군인 신분이 된 이후에도 마약을 지속해 투약하다 적발되고 있다. 이처럼 군 내에 마약 사건이 끊이지 않고 있어 군의 고심이 깊다. 지난 6월에 범정부 차원에서 경찰·관세청·국가정보원·해양경찰청이 함께하는 ‘마약범죄 특별수사본부’에 국방부가 참여한 것도 이 같은 이유다.
문제는 올해 8월까지 국군 장병 가운데 마약 범죄로 입건된 인원이 26명에 달해 연말이면 사상 최고치를 갈아치울 것이라는 전망까지 나온다. 마약범죄 예방을 위해 국방부는 지난 6월 ‘마약범죄 특별수사본부’에 합류했지만 마약 범죄는 좀처럼 줄지 않고 있는 것이다. 사실상 군이 마약의 사각지대로 부각된 것인데, 병영의 마약범죄에 비상이 걸렸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국방위원회 소속 송옥주 의원(더불어민주당)이 육·해·공군과 해병대에서 받은 ‘최근 5년간 마약범죄 현황’ 자료를 보면 2018년부터 올해 8월까지 각 군 군사경찰이 입건한 마약 사범은 118명이었다. 병력 규모가 큰 육군이 101명으로 가장 많았다. 뒤를 이어 해군과 해병대가 각각 6명, 공군이 5명 순이었다. 연도별로 보면 각 군을 통틀어 2018년 9명, 2019년 21명, 2020년 9명, 2021년 20명, 2022년 33명이 입건됐다.
군 내 장병의 마약 적발 건수는 증가 추세다. 다만 2020년에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상황으로 장병 휴가와 외출이 제한되며 적발 인원이 일시적으로 급감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올해 들어서는 8월까지 26명이 입건됐다. 이 추세라면 연말까지 작년(33명) 수치를 훌쩍 넘길 것으로 전망돼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송 의원은 “엄정한 군기가 유지되어야 할 군에서 마약범죄가 끊이지 않는 것은 큰 문제”라며 “군내에서 마약을 사용·유통한 자를 엄벌하되 치료와 재활을 비롯해 예방교육도 강화해 장병들의 마약범죄를 뿌리 뽑아야 한다”고 지적했다.
군 당국이 마약을 불법으로 구매하고 소지한 장병에 대해 사법적 처벌은커녕 징계조차 내리지 않은 사실이 드러났다. 이 때문에 마약을 불법 구매해도 국방부가 제 식구 감싸기에 그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국회 국방위원회 소속 더불어민주당 기동민 의원이 국방부로부터 제출받은 ‘최근 5년간 육군 마약사건 처리현황’을 보면, 장교 및 준·부사관의 마약사건 처리건수는 13건으로 징계가 내려진 건은 5건에 불과했다.
징계가 이뤄지지 않은 8건 중 2건의 경우, 검사가 기소유예를 통해 피의사실을 적시했지만 징계위원회조차 개최되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재판을 통한 처벌과 징계위원회를 통한 징계는 성격이 다르기 때문에 처벌이 이뤄지지 않더라도 피의사실에 대한 징계가 별도로 진행돼야 하는데 이를 무시한 것이다.
징계가 이뤄지지 않은 2건의 불기소 이유서를 살펴보면 부사관 A의 경우, 업무를 정상적으로 수행하고자 하는 의도에서 비롯된 점과 평소 업무를 성실히 수행하고 있었던 점 등을 참작해 기소유예 처분이 내려졌다. 또 다른 부사관 B의 경우, 범죄에 사용하기 위한 목적이 아니라 가정생활을 원만하게 할 목적으로 구매했다는 점이 참작돼 기소유예처분이 이뤄졌다.
당시 사건을 맡은 군 검사들은 기소유예 처분을 내리면서도 ‘소속대 징계의뢰’를 불기소 이유서에 적시해 놓았다. 사법적 처벌은 하지 않지만 소속대의 징계위원회를 통한 징계처분을 권고한 것이다. 하지만 두 사건 모두 징계권자인 부대 지휘관은 징계위원회 개최하지 않아 행정적 처벌인 징계가 이뤄지지 않았다.
마약 단순 소지 및 구매에 대한 처벌은 ‘마약류 관리에 관한 법률’에 따라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5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할 수 있다. 실제 2015년 경기도 한 공무원은 원만한 가정생활을 위해 온라인에서 최음제를 구매해 벌금형과 경징계를 받은 바 있다. 일반 공무원의 경우 마약범죄에 대해 엄격한 잣대를 적용하고 있다. 반면에 군 당국은 유야무야 넘어간 것이다. 이 때문에 군이 마약 청지지역 아닌 사각지대로 전락한 건 이 같은 온정주의로 엄정대응에 나서지 않기 때문이라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기동민 의원은 “국방부가 TF까지 만들며 마약범죄에 대한 엄정대응을 강조하고 나섰지만 군 내 온정주의와 제 식구 감싸기가 만연해있는 상황”이라며 “군은 총기 및 화약, 기밀문서를 다루기 때문에 마약범죄는 전투력 결손과 자칫 인명사고를 야기할 수 있는 만큼 엄정한 처벌로 경각심을 고취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각 군의 마약 사범 행태는 점점 대범해지고 있다. 마약을 구입하거나 군 내로 반입하는 수법도 다양하다.
육군 하사 A씨는 2019년 인터넷으로 대마 종자 34알을 주문해 경기도 파주의 소속 부대에서 택배로 받았다. 그는 대범하게도 부대 내 숙소에 조명기구 등을 설치해 대마를 직접 키웠다. 부대 인근 공터에서 재배까지 했다. 직접 키운 대마는 부대에서 섭취했다. 그는 대마초와 대마 줄기를 간 후 일반 버터와 섞어 ‘대마 버터’도 만들었다. 이 마약 버터를 베이글 빵에 발라 먹은 것이다. 대마를 담배 형태로 말아 피우기도 했다. 제1군단 보통군사법원은 2020년 2월 A씨에게 징역 2년에 집행유예 4년을 선고했다.
육군 상병 B씨는 휴가 때 구입한 필로폰을 부대에서 투약하기 위해 몰래 가져와 36일간 관물대에 보관하다 적발됐다. B씨는 입대 보름을 앞둔 2018년 7월 현금인출기에서 무통장 송금해주는 방식으로 필로폰을 구매했다. 입대 후에도 휴가를 나가 4차례나 일명 ‘던지기’ 수법으로 필로폰을 구매했다. 휴가 중이던 2019년 3월 서울 서초구 한 모텔에서 일회용 주사기로 끓인 물에 희석한 필로폰을 자신의 팔에 투약했다. 남은 양의 필로폰은 부대 내에서 투약하기 위해 가방에 넣어 복귀했지만 전혀 단속이 없었다. B씨는 헌병대 군사법경찰관에게 발각될 때까지 숙소 관물대에 필로폰을 보관했다. 그는 마약류관리법 위반(향정) 혐의로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 받았다.
대마 종자를 밀수한 뒤 부대 앞에서 넘겨받으려다 적발된 사례도 있다. 2016년부터 대마를 피우던 육군 중사 C씨는 2018년 직접 대마를 재배해 피우겠다고 마음먹은 후 인터넷 사이트에서 대마종자 10개를 주문했다. 구매 대금(엔화 5000엔)은 국제우편 봉투에 담아 네덜란드에 있는 판매책에게 보냈다.
판매책이 국제등기우편으로 보낸 대마종자는 2018년 6월 C씨가 근무하는 부대 위병소에 도착했다. 군 검찰은 물건이 전달되는 순간 C씨를 검거했다. 대마 유통 과정을 감시하고 있다가 최종 유통 단계에서 검거한 것이다. 재판부는 마약류관리법 위반(대마) 혐의로 기소된 C씨에게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
부대 내 숙소에서 담배로 위장해 마약을 흡입하다 발각된 경우도 있었다. 육군 일병 D씨는 지난해 2월 대구 남구에 있는 주한미군 육군 기지 캠프워커 숙소에서 합성 대마를 자신의 전자담배에 넣어 흡입하다 군 수사기관에 적발됐다. D씨는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았다.
이처럼 군은 더 이상 마약 청정지역이 아니다. 심각한 상황으로 대책 마련이 시급한 상황으로 이를 인식하고 있는 국방부가 최근 ‘군 마약류 관리 개선방안’을 내놓고 임관 및 장기복무 지원 대상 군 간부 인원 전체를 대상으로 마약류 검사를 실시하기로 했다. 또 입영 병사에 대한 마약류 검사 확대 방안 및 복무 중인 장병에 대한 검사 방안을 추진할 계획이다.
국회도 병영 마약 근절을 위한 각종 법안을 추진하고 나섰다. 대표적으로 군내 마약류 범죄가 증가하는 가운데 군인들이 1년에 한 번 마약 검사를 받도록 하고, 마약 중독자는 부사관·장교 등으로 임용할 수 없도록 하는 내용의 ‘군 마약 근절 3법’이 국회에 제출됐다. 국민의힘 이헌승 의원은 이런 내용의 군 보건의료법·군 인사법·병역법 개정안을 대표발의했다
내용을 살펴보면 군 보건의료법 개정안은 복무 중인 군인에 대해 마약류 투약 등 여부에 관한 검사를 연 1회 의무화하도록 하는 내용을 담았다. 또 군 인사법 개정안은 마약·대마 또는 향정신성의약품 중독자를 장교, 준사관 및 부사관으로 임용할 수 없도록 했다. 사회복지사업법, 초·중등교육법, 의료법 등은 마약류 중독자를 공적인 업무에 종사하거나 공공의 서비스를 제공하는 사람으로 임용할 수 없도록 하고 있으나 군인에 관해서는 관련 규정이 없는 점을 고려한 것이다.
병역법 개정안에는 입영일 전 입영 판정검사와 입영 신체검사 때 마약류 투약 등 여부에 관한 검사를 의무화하도록 규정했다.
이 의원은 “국방·안보를 책임지고 있는 군인에 대한 국민의 신뢰를 제고하고 마약류 오·남용에 대한 경각심을 높여야 한다”고 발의 취지를 설명했다.
일각에서는 사전 예방 차원에서 강력한 처벌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집단생활하는 군의 특성상 영내 마약류 범죄에 대해서는 원칙적으로 구속수사하고, 마약을 권유하는 행위는 더 엄정하게 처벌한다는 주장이다. 심각한 사회문제인 마약범죄에 대해 군이 일반 공무원에 비해 느슨한 잣대를 적용하는 것은 오히려 이를 조장하는 꼴로 처벌 수위와 단속 강화, 입내 전 마약 중독자를 걸러 낸 체계적 시스템을 갖춰야 한다는 지적이다.
이와 관련해 국방부는 지난 5울에 마약류 범죄수사와 단속, 마약류 유입차단과 관리, 장병예방교육 등 3개 분과로 구성된 ‘군 마약류 관리대책 추진TF’를 구성해 엄정대응에 나서겠다고 밝힌 바 있다.
기동민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국방부가 TF까지 만들며 마약범죄에 대한 엄정대응을 강조하고 나섰지만 군 내 온정주의와 제 식구 감싸기가 만연해있는 상황에서 과연 가능할까라는 의구심이 든다”고 꼬집었다. 이어 “군은 총기 및 화약, 기밀문서를 다루기 때문에 마약범죄는 전투력 결손과 더불어 자칫 인명사고 문제도 야기할 수 있는 만큼 엄정한 처벌로 경각심을 고취해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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