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방소멸 막으려면]②초등학교 입학하면 집이 공짜? 아이들 웃음소리 들리는 괴산

괴산=홍다영 기자 2023. 10. 1.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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月 5만원 내면 초등학교 졸업까지 주택 거주
영광은 아빠가 육아휴직하면 300만원 지급
화천은 산후조리원·대학 등록금·유학비 지원

지난 7월 출생아 수가 같은 달 대비 역대 최저 수준을 기록하면서 올해 합계 출산율이 0.6명대로 떨어질 수 있으리라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인구 감소로 직격탄을 맞게 된 것은 수도권이 아닌 지방이다. 진학과 취업 등으로 꾸준히 인구 유입이 이뤄지는 수도권과 달리 지방은 지속적으로 인구가 줄어드는 추세다. 2021년 감사원 보고서는 2067년 무렵엔 전국 243개 지자체 중 229개 지역이 소멸 고위험 지역이 될 거라고 예상했다. 조선비즈는 인구가 줄고 있는 지자체가 어떤 노력으로 소멸 위기에 대응하고 있는지 짚어본다. [편집자 주]

“초등학교에 입학하면 집을 공짜로 준다는 이야기를 듣고 괴산으로 내려왔어요. 보증금 없이 관리비 개념으로 월 5만원만 내면 되는데 만족합니다. 아이들도 자연에서 뛰어 놀며 배우기 때문에 정서 함양에 좋은 것 같아요.”

충북 괴산군에서 지난달 22일 오후 2시쯤 만난 주민 고모(41)씨 이야기다. 고씨는 대학에서 연극을 전공한 뒤 연출 활동을 하며 가족들과 서울에서 살고 있었다. 그러던 중 괴산군 제비마을 백봉초등학교에 자녀가 입학하면 집을 준다는 소식을 접했다. 이른바 ‘행복나눔 제비둥지’ 사업이었다. 고씨는 반신반의한 마음으로 사업에 신청했고, 당첨됐다.

지난달 22일 오후 충북 괴산 백봉초등학교. /홍다영 기자

고씨 가족은 2020년 초 괴산으로 내려왔다. 원래 자녀는 3명이었지만 괴산에서 1명을 더 낳았다. 고씨는 “괴산이 어디에 있는지도 몰랐지만 살아보니 좋은 동네”라며 “자녀 교육 등을 고민했지만 아이들 성적도 잘 나온다. 어디서든 (공부) 할 놈은 한다”고 했다. 아내 이모(39)씨는 “아이들과 천변(川邊)에서 자전거를 타거나 식물, 곤충 채집을 한다”고 했다.

이들 부부는 최근 주민을 대상으로 연극 공연도 했다. 이씨는 “동네 책방에서 대문을 무대 삼아 남편이 연출하고 (제가) 직접 연기했다”며 “한평생 연극을 처음 본다는 어르신도 있고 반응이 좋았다”고 했다.

◇학생 16명→58명, 폐교 위기 초등학교 구했다

괴산은 왜 백봉초에 입학하는 가족들에게 집을 주는 것일까. 괴산 인구는 2018년 3만9133명에서 올해 8월 3만6625명으로 감소했다. 일자리를 찾아 사람들이 도시로 떠나며 학령 인구가 최근 10년간 26%나 줄었다. 80여 년간 마을을 지킨 백봉초도 폐교 위기를 피할 수 없었다. 백봉초 전교생은 한때 700명이 넘었지만 2018년에는 16명까지 줄었다. 초등학교는 3년간 전교생이 20명을 밑돌면 통폐합 대상이 된다.

백봉초를 졸업한 주민들은 학교가 없어지는 것을 막기 위해 지자체와 머리를 맞댔다. 괴산군 밖에서 거주하다가 백봉초에 자녀가 입학하는 가정에 보증금 없이 월 5만~9만원만 받고 59.4㎡(18평), 69.3㎡(21평) 규모의 연립 주택을 제공하기로 한 것이다. 2년마다 입주 기간을 갱신하며 자녀가 초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거주할 수 있다. 현재 제비둥지 주택 3개 동에 14가구가 입주했다.

덕분에 백봉초 학생 수는 올해 58명까지 늘었다. 이날 오후 찾은 백봉초 운동장에서는 몇몇 아이들이 주저 앉아 모래 놀이를 하고 있었다. 한 아이는 지나가며 “안녕하세요?”라고 밝게 인사했다. 2층 규모의 알록달록한 학교 교실에서는 아이들의 깔깔거리는 웃음 소리가 새어 나왔다. 노인만 남은 쓸쓸한 마을에서 아이들이 뛰어 노는 마을로 조금씩 바뀌는 모습이었다.

지난달 22일 오후 충북 괴산 행복나눔 제비둥지 주택 3개 동에 14가구가 입주했다./홍다영 기자

한석호(64) 제비마을 부흥권역 추진위원장은 “14대째 이곳에 거주하며 가족, 친구 모두 백봉초를 졸업했는데 폐교될 수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마음이 좋지 않았다”며 “학교가 없어지면 마을이 없어지는 것이기 때문에 백봉초를 지켜야 했다”고 했다. 그는 “도시의 높은 집값, 치열한 경쟁에 지친 학부모들이 공기 좋고 물 좋은 시골에서 아이를 키우고 싶어하는 경우가 있을 것이라는 생각에 제비둥지 사업을 추진하게 됐다”고 했다. 초기 사업 예산은 마을 기금 4억5000만원과 군에서 지원받은 5억원으로 마련했다.

괴산군은 외지인도 편하게 정착할 수 있는 마을 분위기를 만들고 있다. 백봉초 학부모들은 최근 함께 텃밭을 가꾸며 옥수수, 감자, 배추 등을 수확해 판매했다. 수익금 300만~400만원으로 아이들이 학교 운동장에서 놀 수 있는 시설을 구입했다. 한 위원장은 이렇게 말했다. “우리 마을은 행복한 곳입니다. 제발 우리 마을로 오세요.”

◇셋째 이상부터는 출산 장려금 5000만원…중·고등학생에게 장학금

괴산군은 제비둥지 사업 성공을 발판 삼아 지자체 차원에서 임대 주택 단지를 조성하고 있다. 현재까지 7개 단지에 98세대가 입주했다. 학생 172명과 청년 177명 등 총 349명이 전입했다. 임대 주택을 제공하며 인구를 유입하고 농촌에 활력을 불어넣고 있다는 설명이다. 괴산군은 최근 행정안전부 지방소멸대응기금 33억여 원을 들여 정원 122명의 국공립 어린이집을 신축했다. 놀이터와 도서관, 체육 시설 등 생활 편의 시설도 확충하고 있다.

괴산군은 출산 장려금도 지급한다. 첫째는 1200만원, 셋째 이상부터 5000만원이다. 올해 1월에는 괴산군의 한 부부가 셋째, 넷째 쌍둥이를 낳아 1억원을 받았다. 산모에게 산후 조리비 100만원을, 만 2세 미만에게 월 8만원의 기저귀비를 지원한다. 관내 중고등학생에게는 50만~100만원의 장학금을 지급한다.

송인헌 충북 괴산군수(왼쪽)가 지난 7월 넷째 아이를 출산한 청천면 정상미씨 집을 찾아 축하를 전하고 출산장려금 5000만원 지원을 설명했다. /괴산군 제공

다른 지자체들도 경쟁적으로 인구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전남 영광군은 작년 합계출산율 1위(1.80명) 지역이다. 인구가 지난 2018년 5만4127명에서 올해 8월 5만2058명으로 줄자, 결혼부터 임신·출산·육아까지 생애 전반에 걸쳐 공백없이 지원하고 있다.

영광에 거주하는 만 49세 이하가 결혼하면 500만원을 준다. 연소득 1억원 이하의 무주택 신혼부부, 다자녀 가족이 전세 자금 대출을 받으면 월 15만원까지 3년간 대출 이자를 지원한다. 신생아 양육비도 지원한다. 첫째 500만원, 둘째 1200만원, 셋째부터 다섯째 3000만원, 여섯째 이상 3500만원이다. 영광은 군내 어린이집만 16곳으로 만 5세 미만 아이에게 부모 소득과 무관하게 영유아 보육료(42만~77만원)를 지원한다. 아빠가 유아휴직을 하는 경우 월 50만원씩 6개월간 300만원을 지급한다.

강원 화천군은 공공 산후조리원을 운영한다. 화천에서 1년 이상 거주하면 2주간 180만원의 비용을 내지 않아도 된다. 1년 미만 거주하면 이용료 50%를 감면한다. 산모가 퇴원한 뒤 가사 지원을 신청하면 저렴한 값으로 세탁, 취사 등의 도움을 받을 수 있다. 일정 기간 거주하면 대학교 등록금과 해외 우수 대학 유학비 등을 지원한다. 화천 인구는 지난 2018년 2만3388명에서 올해 8월 2만3116명으로 줄었지만, 합계 출산율은 지난 2021년 1.20명에서 작년 1.40명으로 반등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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