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만 보수공사 작업자 사망… 발주사 사장 '중대재해 무죄' 이유는?

김노향 기자 2023. 10. 1. 05: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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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항만공사가 발주한 항만 갑문 보수공사에서 작업자 사망 사건이 발생함에 따라 대표자(사장)에게 징역 1년6개월의 실형이 선고됐지만 항소심은 무죄를 선고했다./사진=이미지투데이

항만의 갑문(선박을 통과시키기 위해 수위를 조절하는 수문) 보수공사를 수행한 하도급업체 소속 노동자가 작업 도중 사망한 사건에 대해 법원이 발주사 대표자(사장)의 실형을 인정한 1심 판결을 파기하고 무죄를 선고했다.

1일 법무법인 율촌에 따르면 올 6월7일 법원은 인천항만공사의 '산업안전보건법' 위반 사건에서 당시 사장에게 징역 1년6개월의 실형을 선고함에 따라 법정구속, 항소심 법원은 9월22일 제1심 판결을 파기하고 항만공사와 사장의 무죄를 선고했다.

1심 판결의 요지는 도급 사업주로서의 안전보건조치 미이행 여부였다. 항만공사는 2020년 A사에 항만 갑문 정기 보수공사를 도급했다. A사 소속 재해자는 갑문 상부에서 윈치(밧줄이나 쇠사슬로 물건을 들어올리거나 내리는 기계)를 이용해 H형강, 유압잭, 공구 등을 내리는 작업을 하다가 설비가 전도돼 갑문 아래로 추락했다. 설비에 연결된 줄을 잡고 있던 재해자는 사망했다.

1심 법원은 항만공사와 당시 사장에게 안전보건총괄책임자로서 안전대 부착설비 설치와 작업계획서 작성 의무 등을 위반한 산업안전보건법 위반죄를 인정했다. 항만공사에는 벌금 1억원을 선고했다. 해당 사건에서 쟁점은 항만공사가 법적 건설공사 발주자인지 도급인에 해당하는지 여부였다.

도급인에 해당할 경우 도급인의 안전보건조치의무, 즉 관계수급인의 근로자가 작업하는 경우에도 산업재해를 예방하기 위한 안전·보건 시설 설치 등 조치를 해야 할 의무를 부담한다. 반면에 건설공사 발주자인 경우 건설공사 계획·설계·시공 단계에서 안전보건대장 작성 등 의무를 부담하지만, 도급인과 같은 관계수급인 근로자에 대한 안전보건 조치의무를 부담하지 않는다.

1심 판결은 ▲갑문이 항만공사의 필수시설로 유지·보수 업무는 핵심적·본질적 사업인 점 ▲항만공사가 직접 관리한 사업장에서 재해가 발생한 점 ▲항만공사는 해당 갑문을 포함 8개 갑문의 정기 보수공사를 실시한 점(상시적·정기적 사업) ▲항만공사에 갑문 보수공사 재해 예방·대응을 위한 재난안전실, 갑문관리실, 갑문설비팀, 운영팀이 조직된 점 ▲갑문관리실 32명, 관제팀 19명의 직원이 근무하고 2019년 안전예산 230억원, 2020년 갑문 보수공사 예산 60억원이 책정 상근 직원 10명 안팎인 A사와 인력·자산·예산 규모에서 우위에 있는 점 등을 근거로 항만공사가 시공을 주도해 총괄·관리하는 지위의 도급인이라고 봤다. 산업안전보건법상 고의성을 인정한 것이다.

반면 항소심의 판단은 항만공사가 산업안전보건법상 건설공사 발주자로 봤다. 건설공사 시공을 주도해 총괄·관리하는 지위에 있음에도 재해예방조치를 하지 않은 자가 의무를 피하는 불합리한 결과를 야기할 수 있다는 이유다. 다만 1심에서 갑문의 유지·보수공사가 항만공사의 핵심적·본질적 사업에 해당하고 해당 공사가 정기 실시되며 관련 부서 인력·예산 등을 갖춘 점을 근거로 항만공사를 도급인으로 본 것과 달리 항소심은 '건설공사의 시공을 수행할 자격과 전문성'에 초점을 두고 판단했다.

'건설산업기본법'에 따라 건설공사 도급자는 해당 건설공사의 등록기준을 갖춰야 한다. 시공을 직접 수행할 법률상 자격을 보유하고 인력과 전문성을 갖춰야 한다. 건설공사를 시공할 자격이 없거나 인력과 전문성을 갖추지 않아서 직접 시공 능력이 없어 도급하는 경우 위험의 외주화마저 인정하기는 어렵다는 것이다.

공사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산업재해의 위험이나 예방 조치에 대해 알 수 있는 지위에 있지 않고, 공사를 도급한 자에게 관계수급인 근로자의 안전보건조치를 요구하는 것은 과도하다는 게 법원의 판단이다. 2019년 1월15일 산업안전보건법 개정에서 건설공사 발주자를 별도로 규정해 도급인의 책임과 구분되는 책임을 부여한 것은 이와 같은 취지로 이해할 수 있다.

항만공사가 갑문 유지·보수 공사를 수행하기 위해 필요한 강구조물 공사업 자격을 보유하지 않았고 국가가 출자한 법인으로 건설업 등록을 할 수 없다. 1심이 근거로 든 항만공사의 갑문 관리 부서나 인력 등이 있다고 해도 공사를 직접 시공할 수 있는 인력과 전문성에 미치지 못해 항만공사로서는 공사 과정에 발생할 수 있는 산업재해의 위험성을 파악하기 어려웠다는 점이 인정됐다. 반면 A사 등은 규모는 작아도 강구조물 공사업 등록을 한 인력과 전문성을 갖췄다고 봤다.

항만공사가 갑문 보수공사를 기획·설계·감리하고 소속 직원이 현장에서 공정을 점검·감독했더라도 이는 건설공사 발주자의 영역에 속하는 것이어서 시공을 주도한 것으로 볼 수는 없다는 판단이다. 산업안전보건법 위반의 고의성에 대해 항소심은 항만공사가 도급인에 해당한다고 가정해도 ▲재해 발생 지점 인근에 안전난간을 설치했고 이는 '산업안전보건기준에 관한 규칙'에서 정한 안전대 부착설비에 포함되는 점 ▲재해자가 수행한 작업은 크레인을 이용하는 중량물 하역작업으로 A사 근로자들이 작업계획서를 미작성해 항만공사에 보고하지 않고 크레인이 아닌 윈치를 이용해 작업한 점 등도 고의성이 없는 것으로 인정됐다.

법무법인 율촌은 산업안전보건법상 '건설공사 발주자'와 '도급인'의 구분 기준인 '건설공사 시공을 주도해 총괄·관리하는지'에 대해 법령이 구체적인 규정을 두고 있지 않아 실무상 혼란이 있다고 지적했다. 울산지방법원은 지난해 9월1일 소규모 제조업체가 도급한 공장동 지붕·벽체 보수공사 도중 추락사한 사건에서 이를 일반적인 기준으로 삼기에 무리가 있다고 판시했다.

법무법인 율촌은 뉴스레터에서 "발주자와 도급인 여부가 불분명한 상황에 발주자가 도급인으로 오해받지 않도록 안전보건 조치에 대해 최대한 관여하지 않으려는 경향을 보인다"면서 "이번 판결은 도급인이 안전보건 조치에 관여해도 발주자 지위 여하에 직접 영향이 없는 점을 보여줬다. 반면 발주자 해당 여부에 따라 처벌이 발생할 수 있어 안전보건 조치를 강화하면서 법적 리스크를 최소화하는 방안에 대한 고민이 필요해보인다"고 조언했다.

김노향 기자 merry@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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