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슬기의 언더뷰] 그는 왜 "전국이 모두 을지로 인쇄거리 같으면 좋겠다"고 했을까

장슬기 기자 2023. 9. 30. 22: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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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하 '정신장애와 인권 파도손' 대표

[미디어오늘 장슬기 기자]

누구나 마음에 파도가 칠 때가 있다. 때로 내면의 파도는 외면의 혼돈으로 나타나거나 공포로 확산되기도 한다. 사람들에게 인정받지 못한 파도는 더 거칠어진다. 곁에서 누군가 공감해주면 좋으련만, 해보지 못하고선 그 경험은 제대로 알 수 없다. 그래서 마음에 거친 파도가 일렁이는 사람들이 서로의 손을 잡아주기로 했다.

그렇게 지난 2013년 '마음이 파도칠 때 서로 잡는 손'이란 뜻의 파도손 모임이 만들어졌고, 2017년에는 국내 최초의 정신장애인 당사자 단체인 사단법인 '정신장애와 인권 파도손(이하 파도손)'이 설립됐다. 파도손은 인권단체로서 꾸준히 사회적 목소리를 내고 있지만, 그 못지않게 중요한 일은 정신장애인이 마음에 파도가 칠 때 외롭지 않게 곁에 머물면서(동료지원) 치료 절차에서 자기결정권을 갖도록 지원하는 일(절차보조사업)이다.

파도손의 이정하 대표는 20여 년간 조현병과 함께 살고 있다. 그에게 정신병원은 치료를 위한 곳이 아니었다. 신체가 물리적으로 구속되는 경험은 오히려 병을 악화시켰고, 그렇게 8번의 강제입원(비자의입원)을 겪었다. 그는 살기 위해 파도손을 만들었다.

지난 2021년 이 대표에게 또 급성기가 찾아왔다. 강제로 입원당할 것 같은 불안에 다시 휩싸였다. 하지만 정신장애인 당사자들이 서로를 돌보는 파도손 네트워크 덕분에 이번엔 병원에 갇히지 않았다. 이정하의 파도손이 이정하를 살린 셈이다. 이제 그는 인권운동가로서 정체성을 조금 비워내고 어릴 때부터 꿈꾸었던 화가의 길을 다시 가고 있다.

서울 을지로 인쇄거리에 위치한 파도손 사무실에서 이 대표를 만났다. 그는 건물과 상점들이 다닥다닥 붙어있는 인쇄거리를 자주 그린다고 했다. 이 대표는 “편견은 모르니까 생긴다. 이 동네에선 파도손을 다 알기 때문에 그런 게(편견이나 차별) 없다”며 “전국이 모두 이 을지로 인쇄거리 같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그와 인터뷰를 일문일답으로 재구성했다.

▲ 이정하 '정신장애와 인권 파도손' 대표. 박영록

- 올 여름 이상동기 범죄 사건이 이어지자 정신장애에 대한 혐오가 심해졌다. 비장애인들은 '정신장애인은 범죄를 저질러도 감형해 준다'고 말하면서 혐오를 키우기도 한다.

“조금씩 제도가 개선돼 정신장애인의 상황은 좋아지고 있다. 그런데 대중의 정서는 더 나빠진 것 같다. 저는 정신장애가 범죄의 면책 사유가 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범죄는 범죄다. 그리고 증상이 있어도 정신장애인 대다수는 그런 사건을 일으키지 않는다. 오히려 그 문제 때문에 혐오가 커지고 많은 정신장애인이 피해를 보는 상황이라서, 심도 있는 고민과 정책이 필요할 것 같다.”

정부는 사법입원제를 검토하고 있다. 원래 사법입원제는 의사나 보호자가 정신장애인 당사자의 의지에 반해 강제입원을 시키지 않도록 법원에 판단을 맡기고 인권을 보호하는 취지인데, 최근에는 마치 또 하나의 강제입원 수단처럼 논의되고 있다.

“한국 상황에는 사법입원제가 맞지 않는다. 인구 2300만여 명의 대만에서는 강제입원이 한 해 600명 정도인데 한국은 3만 명이 넘는다. 강제입원이 너무 많은 것이다. 강제입원하지 않아도 될 사회적 인프라를 만들자는 논의가 나오다가 정신장애 관련 범죄 사건이 생길 때마다 쏙 들어가고 입원제도에 대한 논란으로 이어진다.”

강제입원되면 증상이 악화되는가?

“비장애인들은 정신장애인이 정신병원에서 치료를 잘 받다가 나오는 줄 안다. 전혀 그렇지 않다. 한국의 정신병원에서는 정신장애인을 묶어놓는다. 이 같은 학대의 경험은 증상을 더 악화시킨다. 또한 증상이 심해지는 급성기에는 더 많은 의료진이 필요한데 정신병원에는 급성기 환자를 위한 병상도 없이 만성환자용 병상만 있다. 인프라가 갖춰지지 않은 병원에 강제입원만 시키면 무슨 소용이 있나.”

정신장애인을 위해서는 어떠한 서비스가 필요한가?

“환청이 심하게 들릴 때는 이동하기도 어렵다. 이렇게 일상생활·의식주에 어려움을 겪다 보면 폐인이 되는 거다. 그래서 활동보조인이 필요하다. 활동보조인 제도가 안 되면 동료 정신장애인이 역할을 하도록 동료지원가 제도라도 만들어줬으면 좋겠다.”

정신장애인은 어떤 차별을 받나?

“정신장애인은 자격증을 딸 수 없는 직업이 많고, 그 제한이 점점 늘고 있다.(2023년 현재 정신질환·정신장애를 '자격 결격 사유'로 규정한 법률은 36개다.) 내 경우에는 운전면허를 못 따서 그림 작업할 때 시골로 쉽게 가지 못한다. 의사의 허락을 받아야 운전면허를 딸 수 있는데 의사들이 허락을 잘 안 해준다. 직장에서도 인식이 좋지 않아 사회생활을 하기 어렵다. 또한 정부 등 공공영역에서도 정신장애인에 대한 일자리를 만들어주지 않아 사각지대에 있다. (장애인 의무고용 등) 장애인 관련 정책이 있지만 정신장애인들은 장애인 등록 안 된 사람도 너무 많다. 정신장애인의 특수성을 고려한 정책이 필요하다.”

▲ 이정하 '정신장애와 인권 파도손' 대표. 박영록

파도손이 언제, 어떻게 만든 단체인지 설명해 달라.

“정신장애인 당사자들이 만든 단체다. 2013년 사회적 협동조합으로 시작하려 했다. 그런데 지자체가 통상 해주는 협동조합 컨설팅을 신청해도 거부당하고, 정신장애인들이 경제적으로 취약하기도 해서 결국 좌초됐다. 게다가 설립 멤버 5명 중 한 명이 자살하고 나머지도 차례로 강제입원되면서 쑥대밭이 됐다. 그러다 2016년 정신건강복지법이 개정(강제입원 요건 강화)된 것을 계기로 2017년 사단법인으로 파도손을 설립했다. 당사자들이 돈이 어디 있나. 박환갑 파도손 사무국장이 사재를 털어 사무실을 얻었다.”

벌써 설립 6년째인데 파도손을 만들고 보람을 느끼거나 뿌듯했던 경험은 무엇이 있었나?

“내가 8번을 강제입원 당했는데 2021년도에 다시 급성기가 찾아왔다. 예전 같았으면 응급입원됐을만 한 상황이었다. 그런데 이번에는 동료지원가들이 있지 않나. 입원하지 않고 몇날 며칠 동료들과 같이 있으면서 위기지원 서비스를 받은 이후에 한 달 정도 휴양하고 두 달여 만에 복귀했다.

그때는 정말 너무 억울하더라. 강제입원을 꼭 안 해도 되는데 그동안 어떻게 사람을 짐승처럼 막무가내로 다뤘을까. 진작 이런 서비스를 받았다면 내가 직업을 잃었을까? 가족을 잃었을까? 내 청춘은 어디로 갔을까? 이런 문제로 사망한 당사자들도 너무나 많다. 살릴 수 있었는데 우리 사회는 왜 그동안 아무것도 하지 않았나.”

구체적으로 어떻게 지원하기에 달라지는 건가?

“예전에 (조현병)증상이 심해졌을 때는 곁에 아무도 없었다. 보호자와 있다가도 싸우거나 집을 뛰쳐나가고, 또 혼자 있으면 길거리로 나가서 맨발로 돌아다니기도 하니까 지역 주민들도 정신장애인에 대해 나쁘게 인식한다. 온 동네에서 나를 모르는 사람이 없었다. 파출소에서도 요주의 인물이고. 그렇게 신고당해서 경찰에 의해 응급입원이나 행정입원도 돼 봤다.

파도손에서는 당사자의 증상이 심해지면 2명씩 조를 짜서 밤새우면서 곁에 있어준다. 위기 사건은 주로 밤에 터지니까. 길거리를 돌아다니면 못 나가게 막는 게 아니라 동료들도 같이 걷는다. 사람들이 보통 정신장애인에게 이래라저래라하는데 그것만 안 하면 된다. 귀신이 보인다고 말하면 옆에서 '얼마나 무서울까' 하고 공감해 주면 된다. 2~3일 지나면 대부분 안정된다. 우리 파도손 네트워크에 당사자들 400명 이상 있는데 우리는 강제입원을 거의 하지 않는다. 파도손의 가장 큰 성과다.”

파도손에서 진행하는 절차보조사업도 설명해달라.

“폐쇄병동에 강제입원된 정신장애인 당사자들의 의사결정을 지원하는 제도다. 강제입원되면 자기결정권이 위축되기 때문에 치료 과정에서 혼란을 느낀다. 그래서 동료지원가들이 1주일에 한 번씩 면회 가서 상담하고 지지해 준다. 영국에선 강제입원 절차에서 인권을 보호하기 위해 절차보조인 제도를 두고 있다.”

외국에서는 1970년대부터 정신장애라는 정체성을 긍정하자는 매드 프라이드(Mad pride) 운동이 나타나고 있다. 어떻게 보나? 본인도 정신장애를 정체성으로 받아들이는지 궁금하다.

“장애로 인한 정신적인 경험을 하나의 정체성으로 본다. 나는 정신장애를 겪고 많은 경험을 했지만, 부끄러울 건 없다. 정신장애로 인해서 다른 사람이 가보지 못한 세계에도 가봤다. 나에게는 다른 것이 들리고 저 너머가 보이는 거다. 인권 활동을 하기 전부터 그에 대한 프라이드가 있었다.”

어릴 때부터 화가를 꿈꿨고 지금 다시 그림을 그리고 있다.

“배우지도 않았는데도 어릴 때부터 그림을 잘 그렸고, 사물의 감정에 잘 이입해서 그림으로 표현했다. 건강이 완전히 망가져서 창작을 못 하다가 2018년에 정신장애인 동료들과 함께 그림책을 출간하면서 다시 그림을 그리게 되었다. 10월 중에 전시 예정이라 지금도 작업 중이다.”

▲ 이정하 파도손 대표의 작품 '어떤 결말을 원해?' ⓒ 이정하

환청이나 환각을 다정하고 따뜻하게 그린 작품이 인상적이다. 창 바깥을 쓸쓸하게 바라보는 그림도 많다.

“환청과 환각은 비장애인이 생각하는 것과 달리 그렇게 단편적이지 않다. 무서운 것도 있지만, 판타지처럼 환상적인 환청이나 환각도 있다. 또 하나의 모티브는 공간이다. 바깥이 보이는 공간에 내가 있다. 바깥 세계에서 거부당하고 밀려났는데 그리워하는 거다. 나는 그림을 그릴 때 살아있는 의미를 느끼는데 그동안 못 그렸다. 지구에 태어났으니 이제라도 그림을 그리고 싶다. 이제 시작이라고 생각한다.”

이 대표는 최근 번역된 책 《미쳤다는 것은 정체성이 될 수 있을까?》 추천사에서 이렇게 썼다.

“의료적 모델은 광기를 경험하는 당사자들을 은폐된 곳으로 유배시키고, 당사자들을 무가치한 존재로 만들어버린 뒤 목소리를 거세했다. 이런 폭력은 때로 당사자의 생명을 앗아가기도 했다. 이 책을 읽는 내내 나는 사라져간 당사자들에게 손짓하고 싶었다. 매드운동에 대해 토론하고, 우리가 겪어온 영적인 경험과 독창성으로 대서사시를 쓸 수 있다는 설렘을 나누고 싶었다.”

이 대표는 “어렸을 때부터 지금까지 꿈이 변 적이 없다”고 했다. 그림을 그리는 것이 그의 평생 꿈이었다. 20대에는 애니메이션 회사에서 일했다. 전봇대가 말을 건다고 사람들에게 이야기해도 좋은 소재라고 잘 들어주던 공간이었다. 그는 “전봇대가 무슨 말을 했는지 사람들이 궁금해하면 그게 재능이 된다”고 말했다. 사람들이 배척하고 부정하기 때문에 질병이 된다는 것이다.

30대에 조현병 진단을 받은 뒤 그의 재능은 그저 '질병'으로만 불리게 되었고 지옥이 시작됐다. 창작활동에 제약이 생겼다. 범죄를 저지르지도 않았지만 강제로 끌려가 손발이 묶여야 했다. 살기 위해 인권운동을 시작했다. 그리고 50대에 접어든 그는 이제 그림에 더 많은 에너지를 더 쓰고 싶다. 환청과 환각이라는 또 다른 세계, 또 다른 차원의 경험을 사람들에게 보여주려 한다. 이 대표는 “다양한 우주를 담아내 우리의 경험을 예술로 승화시키고 싶다”고 말했다.

사람들은 자기 귀를 자르고 결국 스스로 생을 마감한 반 고흐에 대해서는 정신장애를 이유로 폄하하지 않지만, 한국의 많은 정신장애인은 무시당하고 차별당하며 살아왔다. 고흐가 그러했듯, 이정하 대표의 정신장애가 그저 정체성 중 하나로 혹은 그의 예술세계를 풍성하게 해준 재능으로도 평가받길 바란다.

※ 이 인터뷰는 장슬기 미디어오늘 기자가 참여연대 월간 매거진 '참여사회' 인터뷰어로 참여해 작성한 기사입니다. 참여사회 2023년 10월호(통권 309호)에 실렸습니다. 인터뷰 전문은 미디어오늘과 참여연대 홈페이지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인터뷰 인용 시 '참여사회' 표기를 부탁드립니다. ▷참여연대 홈페이지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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