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네 중국집처럼…"가능한 주문 다 받겠다" 이재용의 결단 [황정수의 반도체 이슈 짚어보기]
이재용의 '파운드리 상생' 경영
국내 중소기업 소량 주문도 받아
수익성엔 큰 도움 안 되지만
TSMC처럼 파운드리 생태계 강화
시제품 생산해주는 MPW 서비스
올해 29회, 내년엔 연 32회로 늘려
삼성 반도체사업 통해 '동행 경영'
"국내 중소 팹리스(반도체 설계 전문 기업)의 반도체는 가능하면 만들어준다."
고객사 관련 삼성전자 파운드리사업부의 최근 분위기다. 퀄컴, 엔비디아 같은 대형 고객사뿐만이 아니라 위탁생산 물량이 적은 국내 중소 팹리스 주문까지 '가능하면' 받겠다는 것이다. 국내 시스템반도체(메모리반도체를 제외한 제품·서비스) 생태계 강화를 위한 의미 있는 정책으로 평가된다.
그동안 퀄컴 등 대형고객사 물량 수주에 주력
파운드리는 칩 설계를 전문으로 하는 '팹리스'들의 주문을 받아 반도체를 생산해주는 사업이다. 의류 등의 OEM(주문자상표부착생산)과 비슷한 면이 있다. 대형 고객사의 대규모 물량을 받아 생산해주는 게 수익성을 높이는 데 유리하다. 시간과 자원을 집중할 수 있어서다.
삼성전자 파운드리사업부도 그동안 대형 고객사의 첨단 반도체 물량 수주에 주력했다. 삼성전자 시스템LSI사업부의 엑시노스 애프리케이션프로세서(AP) 시리즈, 퀄컴의 스냅드래곤 8-2세대 애플리케이션프로세서(AP), 엔비디아의 암페어 아키텍처 그래픽처리장치(GPU), 테슬라의 자율주행칩, 구글의 텐서 AP 등을 수주한 게 대표적이다.
글로벌 고객사의 물량을 14nm(나노미터, 1nm는 10억분의 1m), 7nm, 5nm, 3nm 등 당시의 최첨단 공정에서 양산하는 게 기술력을 과시하는 데 도움이 됐다. 세계 1위 파운드리업체 TSMC를 추격하는 후발주자 입장에서도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삼성전자가 국내 중소형 팹리스들의 물량을 받아주는 게 힘들어졌다. 생산 캐파에 한계가 있었기 때문이다. 국내 대다수 팹리스는 '자의 반 타의 반' TSMC, UMC 같은 대만 파운드리에 손을 내밀었다. 반도체업계에선 "삼성 파운드리에 물량을 맡기는 게 쉽지 않다"는 얘기가 나왔다.
국내 중소 팹리스에 육성해 '파운드리 생태계' 강화
이런 상황이 지속되다 보니 문제점이 불거졌다. 국내 시스템반도체 생태계가 발전하지 못하는 것이다. 시스템반도체는 '설계자산(IP)업체→팹리스→디자인하우스(특정 파운드리에 적합한 기본 설계를 팹리스에 제공하는 기업)→파운드리→패키징·테스트'로 각 사업이 유기적으로 연결된다. 각 분야 업체 간 협업이 중요하다. IP 업체, 팹리스가 성장해야 파운드리에 맡기는 반도체도 많아지고, 파운드리가 잘 돼야 패키징으로 흘러가는 물량도 늘기 때문이다. 대만이 미디어텍, 노바텍 같은 세계적인 팹리스, 세계 1위 순수 패키징 업체 ASE 등을 보유한 것도 대만 TSMC를 중심으로 생태계가 형성돼있는 영향이 크다.
실제 TSMC는 대형 고객사 중심으로 사업을 운영하는 동시에, 중소형 팹리스들의 물량도 소홀하게 대하지 않는다는 평가를 듣는다. 반도체 전문 시장조사업체 익스플로어세미스에 따르면 지난해 말 기준 TSMC의 고객사는 총 532곳이다. 이중 애플로부터 받는 주문의 매출 비중이 23%, 애플을 포함해 퀄컴, AMD, 브로드컴, 엔비디아 등 상위 10개 사의 비중은 68% 수준이다. 나머지 32%는 432곳의 고객사 몫이다.
TSMC처럼 삼성전자도 생태계 조성에 나선 것이다. 실제 국내에서 '대형 팹리스'로 불리는 LX세미콘, 텔레칩스, 넥스트칩 등도 삼성 파운드리를 통해 칩을 양산한다. 리벨리온, 퓨리오사AI 등 팹리스 스타트업도 삼성전자의 고객사에 포함됐다.
중소기업의 적은 물량도 생샌해준다...'MPW' 서비스 연 32회로 강화
삼성전자는 MPW(멀티프로젝트웨이퍼)로 불리는 중소형 팹리스 대상 서비스도 강화하고 있다. 보통 대형 고객사 물량의 경우 반도체 원판인 웨이퍼에서 한 종류의 반도체만 생산한다. MPW는 한 장의 웨이퍼에 다른 반도체를 함께 생산하는 것이다. 다품종소량생산을 지원하기 위한 것이다. 시제품 또는 소량 물량 생산이 필요한 중소형 팹리스들이 MPW 서비스를 주로 이용한다. MPW 횟수가 많아질수록 팹리스 업체들 입장에선 시제품을 생산할 기회가 많아지는 것이다. 비용도 상대적으로 저렴하다.
파운드리업체 수익성엔 '마이너스' 요인이다. 대형 고객사용 공정, 시간, 서비스 등의 자원을 분산해야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삼성전자는 MPW 서비스를 지난해 23회에서 올해 29회, 내년엔 32회 정도 제공할 계획이다. 고객을 위해 짜장면 한 그릇도 배달해주는 중국집처럼, 삼성전자 파운드리도 아무리 적은 고객 물량도 받아주기 위해 노력하겠다는 의미다.
올해엔 최첨단 공정인 '4nm'(SF4)에서도 MPW 서비스를 시작했다. 산업계에선 국내 산업 생태계 강화와 중소기업과의 상생을 강조하는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의 '동행' 경영 철학이 파운드리 사업에도 반영된 것이란 분석이 나온다.
한 스타트업 팹리스 관계자는 "최근 국내 팹리스들도 최첨단 반도체를 설계하기 때문에 7nm, 5nm 등 첨단 파운드리 공정에서 시제품을 생산해야 하는 필요성이 커지고 있다"며 "삼성전자가 레거시 공정 뿐만 아니라 8·5·4nm 최첨단 공정의 MPW 횟수를 늘리는 건 국내 생태계 강화에 긍정적"이라고 평가했다.
황정수 기자 hjs@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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