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처에 드론…우크라 벌판에선 전차든 병력이든, 10분 못 버텨”
전차의 95%는 전차 아닌 드론과 미사일에 당했다
WSJ “2003년 이라크전式 대규모 기갑 부대 공격, 안 통해…미 군사교리에 의문 제기”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두드러진 전투 양상의 하나는 막대한 양의 드론을 투입한 공격이다. 우크라이나군, 러시아군이 다 드론에 의존한다. 우크라이나 군이 얼마나 많은 드론을 투입하는지는 알 수 없지만, 영국 왕립합동군사연구소(RUSI)는 지난 5월 보고서에서 “매달 1만 대가량의 드론을 소진하는 것”으로 추정했다.
두 나라의 드론은 우크라이나의 동부와 남부의 광활한 벌판에서 상대방 전차와 포, 병력 수송 트럭의 이동을 포착하는 순간, 바로 공격한다.
우크라이나 국방부 산하 군 정보기관 HUR의 바딤 스키비츠키 소장은 28일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벌판에서 진격하는 탱크나 병력 대열은 3~5분 내에 발견되고, 이후 3분 내에 공격을 받는다”며 “따라서 이동하는 탱크, 트럭의 생존 시간은 10분을 넘지 못한다”고 말했다.
우크라이나군을 훈련시킨 미국과 나토(NATO) 동맹국들은 반격 초기에 “우크라이나군이 훈련 받은대로 대규모 기갑 공격을 하지 않는다”고 비판했었다. 그러나 러시아 군이 폭 20~30㎞에 걸쳐 지뢰밭과 대(對)전차 콘크리트 방어물인 용치(龍齒ㆍdragon’s teeth), 참호 등을 설치하고 드론으로 공중에서 감시하는 상황에서, ‘기습 작전’이라는 것은 처음부터 불가능했다.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파괴된 양측 전차의 95%는 미사일과 드론, 지뢰에 의한 것이었다. 결국 우크라이나군은 서방에서 받은 전차와 포를 후방에 두고, 보병으로 반격에 나섰다.
WSJ는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양측이 수천 대의 드론을 전장에 투입하는 상황은 대규모 기갑부대의 신속한 공격이라는 미군 군사교리의 기존 원칙에도 의문을 제기한다”고 분석했다.
◇”대규모 기갑부대가 수 ㎞씩 질주하던 시절 끝났다”
지난 25일, 우크라이나 정부가 고대하던 2개 전차 소대 분량의 미국의 M1A1 에이브럼스 전차가 우크라이나에 도착했다. 미군의 전차 소대는 4대로 구성된다.
에이브럼스 전차가 제작된 주요 목적은 소련ㆍ러시아 전차에 막대한 타격을 가하기 위한 것으로, 미국은 신속한 공급을 위해 신형 A2 모델이 아니라 A1 모델을 보냈다. 에이브럼스 전차는 2003년 이라크 전쟁에서 이라크군의 T-72 전차를 파죽지세로 파괴했고, 이라크 전차에 파괴된 것은 단 한 대도 없었다. 심지어 T-72가 쏜 포탄이 에이브럼스의 장갑에 맞고 그냥 튕겨 나간 경우도 있었다.
하지만, 우크라이나에서 파괴된 전차의 95%는 상대방의 미사일과 드론, 지뢰에 의한 것이었다.
드론이 상대방 무기 파괴에 워낙 효율적이다 보니, 우크라이나군도 서방에서 받은 중화기를 동원하지 못하고 보병 위주의 피비린내 나는 반격을 점진적으로 전개한다. 애초 우크라이나군의 반격 작전을 훈련ㆍ기획한 미국과 NATO 동맹국들은 지난 여름 대규모 전차와 기갑 차량을 동원해 신속하게 러시아군 방어선을 돌파하는 작전을 기대했었다.
WSJ는 “이 같은 전쟁 양상은 미군도 한국 전쟁 이후 겪어보지 못한 것으로, 2003년 이라크 전쟁과 같이 미군 기갑부대가 수㎞씩 질주하던 시절은 지나갔다”며 “앞으로 미국보다 약한 나라와의 전쟁에서, 미국의 전반적인 군사적 우위도 이전처럼 결정적이지 못할 수 있다”고 분석했다.
영국 세인트 앤드류스대학의 전략학 교수인 필립 오브라이언은 WSJ에 “값비싼 중화기를 훨씬 저렴한 무기로 파괴할 수 있다면, 두 나라 간 군사력 격차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고 말했다.
◇”양(量)도 그 자체로 질(質)이 되는 전쟁”
9ㆍ11 테러 이후 미군의 훈련과 군 장비 구입은 이라크ㆍ아프가니스탄의 반군과 같이, 화력이나 무기 수준에선 훨씬 떨어지지만 집요하게 저항하는 적을 상대로 한 작전에 맞춰져 있었다.
또 첨단 무기를 믿고 병력 수를 줄여왔다. 독일 국방부에서 우크라이나 작전을 담당한 크리스티안 프로이딩 소장은 “우크라이나 전쟁은 양도 그 자체로 질이 되는 전쟁이며, 질이 중요하듯이 병력이나 무기의 양도 중요하다는 교훈을 얻었다”고 말했다.
우크라이나군에 드론과 무기 공급을 위한 모금 활동을 하는 단체인 ‘컴백얼라이브(Come Back Alive)’의 대표인 타라스 츄마트는 “우크라이나 전쟁과 같은 전면전에서 필요한 무기는, 2차 세계 대전 때 미군의 셔먼, 소련의 T-34 전차와 같이 독일의 티거ㆍ팬저 전차보다 열등해도 대량 생산과 신속한 수리가 가능한 전차들”이라고 말했다. 그는 “우크라이나에 공급된 서방 무기는 장기간 전면전을 치를 수 있는 무기가 아니다”고 말했다.
◇전장에서 드론 조종하는 우크라 병사들 “6개월간 총 한 방 안 쏴”
전장에서 드론을 조종하는 우크라 병사들은 영국 메트로 인터뷰에서 “지난 6개월 간 총 한 방 안 쏴서, 총은 끌고 다닌다고 농담할 정도”라며 “5~10년 내 전투는 총은 덜 쓰고 드론을 날려 보내는 양상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들은 드론에 장착된 카메라가 전송하는 화면을 보며 드론을 조종해[FPVㆍfirst-person-view], 적의 전차와 포를 능숙하게 파괴한다. 러시아군이 장악한 동부 도시 바흐무트 탈환에 나선 우크라이나군은 “우리가 드론을 날려 보내면서 러시아군 차량으로 교통 정체를 빚던 바흐무트 주변 도로가 텅 비었다”고 WSJ에 말했다.
우크라이나군이 쓰는 드론의 개당 가격은 400~500 달러. 반면에 155㎜ 포탄은 개당 3000달러에 달하고, T-72 러시아군 전차는 120만 달러 정도 한다.
9월25일 미하일로 페도로프 우크라이나의 디지털 장관은 1주일(9월 18~25일) 동안에 드론으로 포 64문과 전차 27대, 트럭 55대를 포함해 모두 205대의 러시아 무기를 파괴했다고 발표했다.
우크라이나의 A라는 부대는 FPV 드론으로 6월부터 동부ㆍ남부 전선에서 113대의 러시아 전차를 파괴했다. 우크라이나 내에는 이런 무기급 드론을 제조하는 기업이 200곳가량 된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군 양측의 전파교란 기술과 드론 제작 기술도 계속 발전하고 있다. 우크라이나 해군의 올렉시 네이즈파파 제독은 “전쟁 중에 기술 혁신이 워낙 빠르다 보니, 하나도 같은 작전이 없다”며 “적(敵)은 이미 이전 전투에서 실책을 배웠기 때문에, 같은 방식의 공격을 되풀이하는 것은 의미가 없다”고 말했다.
미국 워싱턴 DC의 싱크탱크인 전쟁연구소(ISW)는 25일 “우크라이나군은 전쟁 상황에 맞게 계속 성공적으로 변화하고 있다”며 “서방은 우크라이나군의 전쟁 수행 방식에 의문을 제기하지 말고, 전장에서 주도권을 잃지 않도록 수용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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