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잘 안다” 착각하는 한국...‘장기불황’ 좇아가는데, 돌파구 있나? [한중일 톺아보기]

신윤재 기자(shishis111@mk.co.kr) 입력 2023. 9. 30. 13:15 수정 2023. 9. 30. 15: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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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15-3] 한국외대 융합일본지역학부 이창민 교수

“이미 장기 저성장 국면에 와 있다고 생각한다”

지난 5월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는 한국이 3분기 연속 OECD평균에도 못 미치는 경제성장률을 기록하자 이같이 말했습니다.

이달 19일 OECD가 내놓은 올해 경제 전망에서 한국의 성장률은 석달전과 동일한 1.5%로 유지됐습니다. 한편 옆나라 일본의 성장률은 0.5%P 오른 1.8%로 상향조정됐습니다. 남은 시간이 석달이 채 안 남았다는 점을 감안하면 올해 한국의 성장률은 1998년 IMF위기 이후 25년 만에 일본에 역전당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장기불황을 상징하는 ‘잃어버린 30년’이라는 말이 생겨난 일본 보다 더 낮은 성장률을 기록하게 되는 겁니다.

일본은 한국에 앞서 산업화와 고도성장기를 거쳐, 불황 및 저성장 문제도 먼저 겪어 왔습니다. 한국은 유례없는 성장 신화를 쓰는 과정에서 일본을 정면교사 또는 반면교사로 삼아왔습니다.

지리적 인접성 뿐 아니라 과거사 문제로 인해 한국에게 일본은 오랫동안 가장 많은 관심과 경쟁의식을 불러일으키는 나라 였습니다. 한국이 선진국 반열에 올라 일본과 어깨를 나란히 하게 된 요즘에는 오히려 일본에서 한국을 더 의식하는 모습이 나타나고 있어 격세지감을 느끼게 합니다.

그런데, 과연 한국은 정작 일본을 얼마나 잘 알고 있는 것일까요? 한국외대 이창민 교수는 “(일본을 빼고)전세계에서 일본어를 할 줄 아는 사람이 제일 많은 나라가 한국 이지만, 일본에 대한 연구가 정말 형편없는 나라도 한국”이라고 말합니다. 그에게 일본의 장기 저성장 경로를 따라가고 있는 한국의 상황에 대해, 또 국내에 일본을 안다고 하는 자칭 ‘일본 전문가’가 넘쳐나지만 ‘진짜 전문가’는 왜 부족한 것인지에 대해 물었습니다. 다음은 일문일답 발췌.

Q.한국이 일본의 장기불황터널을 따라가지 않으려면 지금 무엇을 해야하나?
A: 버블 붕괴이후 1997년까지 일본의 경제 성장률이 연간 1.5% 정도 됐거든요. 지금과 비교하면 호성적이죠. 사실 일본경제의 첫 번째 본격위기는 1997년 동아시아 금융위기 이후에 옵니다. 디플레이션이 1999년 부터 2005년까지 있는데 이때 금융기관들이 많이 파산하거든요.

두번째 위기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오는데 이때는 비금융기업들이 많이 파산합니다. 즉, 장기 불황이라고 하는 일본의 지난 30년을 보면 그 안에서도 저온 호황이 왔다 다시 침체되는식의 비지니스 사이클이 있습니다. 그리고 이제 한국도 그런 사이클의 초입에 진입해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왜냐면 지금 한국의 잠재성장률을 2%정도로 보고 있거든요. 2025년쯤이면 1.5% 정도로 관측되고 있는데 그러면 이제 잘하면 2%, 못하면 1%나 0%대로 가는, 지금의 일본처럼 되는 거죠. 새로운 외부 유입 없이 기업들이 밖에 나가 돈을 벌고 내수가 축소되는 상황에서는 결국 저온 호황과 불황을 반복하며 조금씩 성장하는 성숙 경제가 되는 겁니다.

그 속도를 조금이라도 늦추고 장기 저성장 국면에 접어들었을 때 회복을 위해서는 크게 두 가지 정책을 쓸 수 있습니다. 총수요와 총공급 정책인데, 총수요 정책중 대표적인게 양적완화죠. 한국은 아직 금리가 일본처럼 낮진 않아서 유동성 함정에 빠져 있진 않습니다. 금리로 통화정책을 펼 수 있는 여유가 좀 있으니 총수요정책으로 불황에서 탈출할 수 있는 여지가 좀 더 있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그리고 이보다 더 중요하고 장기적으로 준비해야 될 것이 총공급 측면이죠. 인적자본 늘리고 생산성을 높여서 잠재성장률을 올려야 됩니다. 노동시장에서 퇴출된 여성들이 다시 진입할 수 있게 하고 경력단절 안 생기게 유도 해야합니다. 젊은 세대의 반발이 있지만 은퇴세대가 70세까지 일할 수 있게 정년 연장도 서둘러야 합니다.

Q.인구문제가 심각한데, 고령화를 먼저 겪은 일본에서 참고할 점은 없나?
일본과 한국의 합계출산율 추이 2022년 1.26으로 1.3을 밑돈 일본의 올해 출산율은 1.23으로 전망되고 있다.
A: 지금 한국 출산율이 훨씬 심각하긴 하지만, 일본도 올해 상반기 출생아수가 34만명 정도였어요. 100만명대가 깨졌다고 난리가 났던 때가 불과 2016년 이었거든요. 이제 원론적으로 일본이 1억 인구 를 유지하는 건 어려워졌습니다.

하지만 저출산 문제를 앞서 겪어온 만큼 여러 시도들도 먼저했기 때문에 일본이 했던 것들 중 실패한 것은 걷어내고, 효과를 본건 신속히 벤치마킹할 필요가 있습니다. 실패한 정책 중 대표적인게 1990년대부터 출산율 올린다고 실시했던 엔젤 플랜, 신엔젤 플랜이 있습니다. 이때 천문학적 돈을 쏟아부었는데도 성공하지 못했어요. 일본의 사례를 보면 단순히 돈을 많이 쏟아 붓는다고 해서 출산율이 올라갈 것이라고 보긴 어렵습니다.

주요국중 연령별 여성의 경제활동참가율이 뚜렷한 M자를 그리는 한국.
지금 일본이 인구감소로 일손 부족이 심각한데, 이 문제는 출산율을 안 높이고도 어느정도 대응가능한 방법이 있습니다. 노동공급을 늘리는 것이죠. 그래서 기존의 비노동인구를 적극 끌어들이려 하고 있는 겁니다. 현재 여성의 노동 참가율 그래프를 보면 일본과 한국만 선진국들중 유일하게 M자를 그립니다. 25세에서 35세 사이 많은 여성들이 결혼, 출산, 육아를 계기로 노동시장에서 퇴장한다는 거죠. 우선 이 곡선을 역U자로 만들어야 됩니다.

그리고 결국 외부인력수용 없이는 지속가능한 발전은 어렵습니다. 일본도 한국도 이민에 대한 거부감이 크죠. 미국, 캐나다, 독일 같은 나라처럼 이민이 활발하다면 예외적 상황을 생각해볼 수 있지만, 그렇지 않다면 한국도 결국 일본의 장기 저성장 경로를 따라 갈 수 밖에 없을 것입니다.

때문에 여러 사회문제가 발생할 수 있겠지만 이민을 확대하고 잘 관리하는 방향으로 논의가 진행돼야 합니다. 지금 일본도 외국인들이 더 유입될 수 있게 재류자격 문턱을 낮추는 등 제도를 손보고 있는데요. 한국도 산업별로 부족한 분야부터 이민을 촉진하는 정책들을 도입해야 합니다. 기왕 하기로 했다면 빨리 해보고 문제점에 대해서는 추후 대처하는게 낫습니다.

Q.좋든 싫든 일본만큼 한국에 큰 영향을 끼치는 나라도 드물다. 그럼에도 국내에서 일본에 대한 연구가 빈약하고 제대로 된 전문가도 부족하다는데, 왜 그런가?
A: 세계에서 일본을 제외하고 일본어를 할 줄 아는 인구가 제일 많은 나라가 한국 입니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일본학, 즉 일본에 대한 연구가 정말 형편없는 나라도 한국입니다.

현재 국내에 일본관련학과가 80여개 되는데 세계적으로 아주 많은 겁니다. 그런데 대부분이 일본어, 일본문학 정도 가르치고 끝입니다. 한국은 일본과 지리적으로 가깝고 언어적으로도 서양인들에 비해 훨씬 유리한데도 일본학 저변은 놀랄만큼 빈약합니다.

개도국 이라면 지역학을 연구할 필요는 없습니다. 언어만 배우면 되거든요. 영어, 중국어, 한국어 배워서 그나라 회사에 취업하고 사업할때 써먹는 정도면 됩니다. 그런데 선진국들은 일본학, 중국학 처럼 지역을 전문적으로 연구합니다. 지역학이 있는 나라들을 보면 전부 선진국들이에요.

대표적으로 미국이 지역학이 굉장히 발달해 있습니다. 세계전략 구상을 위해 중동 전략, 남미 전략, 아시아 전략을 짜려면 그 지역을 연구해야되니까요. 유럽, 일본도 마찬가지 입니다. 정밀한 세계전략의 필요성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죠.

미국 워싱턴에 있는 국제전략문제연구소(CSIS). [연합뉴스]
그런데 한국은 안타깝게도 학문 시스템이 여전히 개도국에 가깝습니다. 언어만 배우는게 대부분이죠. 전략과 철학이 부족합니다. 지금 경제규모면 각 지역별로 전략이 제대로 갖춰져 있어야 하는데, 아프리카 전략이 뭐냐고 물어보면 “우리가 거기서 할게 뭐 있냐?” 이런 식이 거든요. 선진국이라면 이래선 안됩니다.

이것이 왜 중요하냐? 예컨데, 지금 미중 갈등속에 국내에서는 아직도 어느쪽 편에 서야 되느냐를 갖고 논란이 있죠. 그런데 고민의 방향 자체가 잘못돼 있다고 봅니다. 지금 중국에 나가있는 일본 사업체1만2000개 정도 됩니다. 일본 정부가 그렇게 연일 대만문제 언급하고 최근에는 중국에 반도체 장비 수출까지 금지하고 했지만, 정작 중국에 진출해 있는 사업체는 줄어들지 않았습니다.

이게 가능한 건 이미 일본은 미국, 중국은 물론 유럽, 한국에 대한 전략이 다 있기 때문입니다. 겉으로 보면 일본이 적극적으로 미국편만 드는 것처럼 보이지만, 수면 아래에서는 사실 자국의 세계전략 차원에서 움직이고 있는 것이거든요.

중국도 그렇습니다. 단적인 예로 중국은 절대로 한국, 일본, 대만을 동시에 때리지 않습니다. 한국을 공격할땐 일본하고 잘 지내려 하고, 일본에 보복할때는 한국하고 잘지내려고 하죠. 매우 전략적으로 움직입니다.

주변국들이 이렇게 정밀한 세계 전략속에서 움직이고 있는데 한국도 제대로 된 전략이 있어야 되지 않을까요. 미국, 중국, 일본을 상수로 놓고 선택을 고민할게 아니라 한국의 선택에 따라 상대방도 전략과 선택이 바뀐다는 점을 주지하고 움직여야 합니다. 상대방의 전략까지 고려해서 전략을 짜려면 어떻게 해야할까요. 상대방을 연구해야만 하죠. 한국이 진정한 선진국 이라면 그런 연구를 통해 이제 일본뿐 아니라 각 지역과 전세계를 아우르는 큰 전략을 고민할 때입니다.

다음회에선 이준규 전 주인도 대사로부터 ‘세계 1위 인구대국 인도의 중국 대체가능성과 지금 한국에게 인도가 어느때보다 중요한 이유’에 대해 에 대해 들어봅니다. 하단 기자페이지 ‘+구독’을 누르시면 쉽고 빠르게 받아보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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