능력만 있다면 세습도 공정하다는 착각 [기자의눈]
전문가, 세습 정치가 "정치는 바뀌지 않는다는 분위기 만들어"
(서울=뉴스1) 권진영 기자 = '자민당의 프린세스'
일본 집권 자민당 내에서도 가장 중요한 4대 보직 중 하나인 선거대책위원장으로 임명된 오부치 유코(小渕優子·49)를 부르는 말이다. 이름으로 짐작할 수 있듯, 오부치 게이조(小渕恵三) 전 일본 총리의 둘째 딸이다.
오부치 유코를 기용하기로 한 것은 기시다 후미오(岸田文雄) 총리다. 그 역시 할아버지, 아버지의 정치권력을 물려받은 세습 정치인이다. 세습 정치인들끼리 서로를 끌어준 셈이다.
일각에서는 '능력 있으면 세습이라도 괜찮은 것 아니냐'는 반론이 나온다. '국민이 선택했으니 어쩔 수 없다'고 푸념하는 사람도 있다. 하지만 세습 정치인이 쌓아 올린 능력은 과연 스스로 공정하게 얻어낸 것일까.
◇'끼리끼리' 노골적이고 공고화된 세습 끌어주기
최근에는 이 같은 세습 끌어주기가 더 노골적으로 나타나고 있다. 기시다 총리는 아들 쇼타로(岸田翔太郎)를 총리실 정무 비서관으로 기용했다. "적재적소의 관점에서 종합적으로 판단"했다는 아버지의 말이 무색하게 쇼타로는 관저에서 사적인 망년회를 여는 등 물의를 빚고 사실상 경질됐다.
총리의 비서관으로 정계에 입문했다는 점은 기시다 총리 자신과 아들 쇼타로, 오부치 유코 선대위장의 공통점이다. 총리 비서관은 관저의 핵심 인물이다. 종합적인 정무 조정 및 각 부처의 핵심 인물들과 마주해야하는 요직으로, 일반적인 비서와는 자리의 무게가 다르다.
대놓고 세습 정치인을 내세우는 이도 있다. 아베 신조(安倍晋三) 전 총리의 조카다 기시 노부치요(岸信千代)다. 아버지는 기시 노부오(岸信夫) 전 방위상의 지역구를 물려받은 그는 지난 4월 중·참의원 보궐선거에 나오면서 자신의 웹사이트에 가계도를 올렸다가 "세습 정치 자랑하는 거냐"는 질타를 받고 삭제했다.
마이니치신문에 따르면 현재 일본 중의원 의원 4명 중 1명은 세습 정치인이다. 자민당 출신 중의원으로 범위를 좁히면 3분의 1이 그렇다. 지난 9월13일 발표된 제2차 기시다 재개조내각 각료 총 19명 중에서는 절반에 가까운 8명이 세습 정치인이다.
◇세습 정치인, 능력 있어도 괜찮지 않은 이유 세습 정치가 비난받는 이유는 신인 정치가들에게 장벽이 되기 때문이다. 미조구치 데쓰로 다카사키경제대학 교수는 아사히에 이 같은 세습 장벽이 "무엇을 해도 정치는 바뀌지 않는다는 분위기를 만든다"며 "선거를 기권하는 유권자를 늘리고 있지 않느냐"고 지적했다.
일본에서 세습 정치인이 물려받는 대표적인 유산은 '3개의 반'으로 대표되는데 이른바 지반(地盤 치반)·간반(看板 간반)·가방(鞄 가반)이다. 각각 조직과 명성, 정치 자금 등 경제력을 뜻한다. 특히 가방에는 선대의 정치 활동을 뒷받침하던 정치 후원회도 포함된다.
선대의 명성을 등에 업고, 후원회라는 돈주머니를 찬 세습 정치인의 홍보 활동을 이기기는 쉽지 않다. 역대 일본 총리 중 바늘구멍을 뚫고 권력의 정점에 선 이는 2000년대 이후 노다 요시히코·간 나오토·스가 요시히데 총리뿐이다.
세습이라고 다 나쁜 것은 아니라는 목소리도 나온다. 능력이 있다면 괜찮다는 반론이다. 일견 능력주의에 따른 정당한 비판처럼 보인다.
옹호론자들은 세습 정치인은 지명도도 높고 정치자금에도 여유가 있기 때문에 선거 전략보다는 정책에 집중할 수 있어 좋다고 주장한다. 미조구치 교수는 이에 "세습 의원, 그중에서도 자민당을 지지하는 부동층 중에서는 이익을 얻는 사람이 있다. 이익단체에 세습은 유익하고 상호의존적인 관계가 되기 쉽다"고 반박한다.
상호의존적이기 때문에 관계를 유지하고자 열성적으로 후원회 활동을 통해 해당 세습 정치인을 재선시키려고 한다는 것이다. 권력층이 고착되는 이유이자 모두에게 동등한 정치참여 기회가 보장돼야 할 민주주의가 퇴보하는 원인이 된다.
세습 정치에 대한 일본 국민의 분노는 이미 표출됐다. 지난 4월 가두 연설 중이던 기시다 총리에게 사제 폭탄을 던진 범인은 평소 기시다 총리를 '세습 3세 정치인'이라고 비판해 온 것으로 드러났다.
그는 지난 2022년 나이 제한과 공탁금 300만 엔(약 2900만 원)을 의무적으로 요구하는 현행 선거제도에 불만을 표출하며 국가를 상대로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제기하기도 했다.
물론 뜻이 관철되지 않는다고 폭력을 행사하는 것 역시 민주주의에 반하는 행동이다. 하지만 일본 내에 이같은 분노가 해소되지 않는다면 언젠가 민의는 폭발하기 마련이다.
realkwon@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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