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 다쳤잖아" 소송걸고 "반찬 뭐야" 타박…교사는 수학여행이 무섭다
[편집자주] 이른바 '노란버스 사태'로 일선 학교의 수학여행이 대거 취소됐다. 교육계에선 이를 노란버스만의 문제로 보지 않는 분위기다. 일생에 한번 뿐인 추억, 수학여행이 사라진 배경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들여다보고 대안도 찾아본다.
'노란버스 사태'가 일단락되고 있다. 어린이 통학버스(노란버스) 규제로 수학여행 가는 길이 막혔지만 국회와 정부는 제도 개선으로 풀어내겠다는 복안이다. 여야가 큰 이견 없이 관련법 개정안을 마련해 국회 본회의에 올렸고 정부도 법 개정 이전에 자동차규칙을 고쳐 미비점을 보완했다.
나름 빠른 대처라고 할 수 있지만 교육 현장의 반응은 부정적이다. 취소된 수학여행은 재개될 조짐을 보이지 않는다. 이참에 수학여행을 폐지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적지 않다. 교원단체에선 "노란버스만의 문제가 아니다"라고 지적한다. 수학여행 등 체험학습 과정에서 불거졌던 오랜 갈등과 불신의 결과다.
■ '노란버스' 문제 해결했지만..수학여행 꺼리는 학교
29일 교육계에 따르면 교육부는 각 교육청을 대상으로 수학여행 취소현황을 집계하고 있다. 상당수 학교가 노란버스 문제로 수학여행을 취소했지만 전체 취소 현황은 아직 구체적으로 나오지 않았다. 교육부 관계자는 "교육청별로 집계가 된 곳도 있고 되지 않은 곳도 있다"며 "현재 취합 중"이라고 설명했다.
논란이 시작된 건 지난해 10월 제주교육청이 법제처에 법령해석을 요청하면서다. 현행 도로교통법은 어린이 통학버스를 '어린이의 통학 등에 이용되는 자동차'로 규정한다. 제주교육청은 수학여행 등 현장 체험학습이 '어린이의 통학 등'에 해당하는지 문의했다. 법제처는 '해당한다'는 답변을 내놨다.
이에 따라 현장 체험학습을 갈 때도 어린이 통학버스를 의무적으로 사용해야 한다는 결론이 내려졌다. 지금까지는 대부분 일반 전세버스로 현장 체험학습을 갔다. 특히 경찰청이 지난달 '현장 체험학습 등 비정기적인 운행 차량도 어린이 통학버스로 신고하라'는 지침을 내리면서 수학여행을 준비 중이던 일선 학교에 혼란이 발생했다.
물량이 한정된 어린이 통학버스를 구할 수 없었던 학교들은 속속 수학여행 취소 결정을 내렸다. 움직임이 심상치 않자 교육부는 지난달 25일 관계부처 회의를 열고 대책을 논의했다. 경찰청은 이 자리에서 현장의 혼란을 최소화할 수 있는 방안이 도출될 때까지 단속 대신 계도·홍보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하지만 학교의 판단은 달라지지 않았다. 불법인 것을 알게 된 이상 수학여행을 강행할 수 없다는 입장이 자리 잡았다. 교육부는 지난 13일 또다시 관계부처 회의를 열고 자동차규칙을 개정해 노란버스가 아니라도 현장 체험학습이 가능하도록 제도를 정비하겠다고 선을 그었다. 개정된 자동차규칙은 지난 22일부터 시행됐다.
■ 추락한 교권과 학부모 민원..수학여행도 다르지 않다
모든 문제가 해결된 것처럼 보이지만 취소된 수학여행은 본격적으로 재개되지 않고 있다. 학교와 교사들은 여전히 부담을 호소하고 있다. 최연선 초등교사노동조합 정책연구국장은 "현장 체험학습에서 교사들의 책임이 면책되지 않는 어려움이 있어 학교 차원에서 거부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많은 교사들은 현장 체험학습에서 발생하는 안전사고 등의 책임에서 벗어날 수 없다고 지적하고 있다. 안전사고 외에 학부모들의 다양한 민원도 큰 짐이다. 가령 수학여행 식단의 반찬까지 민원을 제기하는 학부모들이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교사들이 수학여행을 꺼리는 이유가 단순히 노란버스만의 문제가 아닌 셈이다.
실제로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가 지난 7일부터 이틀 동안 1만2154명의 유·초등 교사를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를 보면 '현장 체험학습 중 불의의 사고로 인한 학부모의 민원, 고소·고발 등이 걱정되느냐'는 질문에 '매우 그렇다'고 응답한 비율이 88.5%에 이른다. '그렇다'고 응답한 비율도 8.8%다.
해당 설문조사에선 학교 주관의 현장 체험학습을 '폐지해야 한다'는 응답률도 55.9%로 집계됐다. 교총 관계자는 "현장 체험학습 중 문제가 생기면 교권을 존중하기 보다 어떻게든 책임을 묻고 잘못을 잡아내려고 하는 상황"이라며 "이런 취급을 받으면서까지 현장 체험학습을 나갈 필요가 있느냐는 목소리가 나온다"고 말했다.
현장 분위기가 이렇다보니 오랫동안 수학여행을 기대한 학생들은 '수학여행의 추억'을 포기해야 하는 상황에 놓였다. 교육당국도 노란버스 문제 외에 대안은 마련하지 못하고 있다. 교육부 관계자는 "교육과정의 일환인 체험학습은 아이들에게도 소중한 기회"라며 "각 학교에 안전 매뉴얼 등을 지속적으로 안내하고 있다"고 말했다.
"수학여행이 줄줄이 취소되는 게 노란버스 때문만은 아닙니다."
학교의 현장 체험학습용 전세버스에 어린이 통학버스 기준을 적용하도록 하는 이른바 '노란버스 사태' 이후 교육현장에서 나오는 얘기다. 교육당국이 일반 전세버스로도 수학여행을 갈 수 있도록 법 개정을 추진하면서 사태가 일단락되는 분위기인데도 현장학습 취소가 잇따르는 데는 또 다른 이유가 있다는 것이다.
교육현장에서는 현장학습에서 사고가 발생할 경우 교사 개인의 책임론이 불거지는 구조를 '사라지는 소풍'의 이유 중 하나로 꼽는다. 교사가 소송 대상이 될 수 있다는 부담이 '노란버스 사태'를 계기로 현장학습 기피로 터졌다는 것이다. 특히 수학여행 같은 현장학습은 정규 교육 과정에도 포함되지 않기 때문에 교사 입장에서는 사고 예방이나 사고 발생 후 대응 측면에서 대안이 마련되지 않는 한 현장학습을 추진할 유인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는 얘기가 나온다.
현장학습에서 예기치 않게 발생한 사고 이후 교사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한 사례는 이미 드물지 않다. 최근 직장인 익명 커뮤니티 블라인드에는 한 학부모가 "아들 현장학습 때 사고 나서 다쳤다고 글을 썼던 사람인데 댓글로 변호사 알아보라고 얘기해줘서 상담하고 왔다"는 글까지 올라왔다. 글 작성자는 "학교에서 매뉴얼을 준수했다고 해도 교사가 현장에서 일어난 사고(업무상 과실치사) 책임을 벗어날 수 없다고 해서 힘을 얻고 왔다"며 "보조교원이 동행했다면 같이 소송을 걸면 된다고 하는데 비슷한 경우가 있으면 도움이 될까 해서 글을 올린다"고 적었다.
법원에서도 현장학습 사고를 두고 교사의 지도·감독 소홀을 지적한 판례가 많다.
대표적으로 현장학습에서 교사의 의무를 평소보다 무겁다고 본 판례가 있다. 경북 영주의 한 초등학교 수학여행에서 2017년 7월 A군이 쏜 장난감 화살에 B군이 맞아 왼쪽 눈이 실명한 사건이 발생했다. A군은 장난감 화살촉에 붙은 고무 패킹을 떼고 끝부분을 칼로 날카롭게 깎아 베개로 얼굴을 가리고 있던 B군에게 쐈다.
재판부는 "현장학습에 참가한 학생은 전적으로 학교의 보호·감독 아래 놓이게 되기 때문에 교사들에게 평소보다 무거운 주의 의무가 요구된다"며 "위해성 도구 소지 금지, 위험한 장난 금지, 취침시간 지키기 등 일반적인 안전교육을 실시했더라도 소지 물건 검사 의무와 취침 등에 관한 지도·감독 의무를 소홀히 해 사고가 발생한 만큼 보호·감독 의무를 다했다고 보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또 "담당교사의 과실과 피해 학생이 입은 손해에 상당한 인과관계가 있다"며 현장교사의 책임을 물어 경상북도교육청이 A군과 함께 위자료 500만원과 손해배상금 2억2700만원을 B군에게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교육청이 불복해 항소했지만 대구고법이 항소를 기각하면서 판결이 확정됐다.
현장학습에서 발생한 사고에 대해 교사 책임이 있는지를 따질 때 법원이 가장 중요하게 보는 쟁점은 사고가 예측가능한지다. 문제는 예측가능한 정도를 어느 만큼으로 볼 것이냐다.
인천 C고등학교는 2012년 6월 수학여행 프로그램으로 강원도 정선에서 레일바이크 체험활동을 했다. 학생 4명이 탄 레일바이크 뒤를 D군 등 4명이 탄 레일바이크가 뒤따르고 그 뒤에 학생 2명과 담임교사 등 4명이 탄 레일바이크가 있었다. 맨 앞서 가던 레일바이크가 갑자기 멈춰서자 두번째 레이바이크에 타고 있던 D군이 브레이크를 잡았지만 추돌해 바이크에서 떨어졌다. 맨 뒤에서 따라오던 레일바이크에서도 이를 보고 브레이크를 잡았지만 D군과 부딪치면서 D군은 머리 내 출혈 등의 상해를 입었다.
레일바이크 운영사인 코레일관광개발와 영업배상책임보험계약을 체결한 현대해상화재보험은 B군에게 보험금을 지급한 뒤 인천시와 인천시학교안전공제회, 맨 뒤 레일바이크에 탔던 학생 2명 등을 상대로 구상금 청구 소송을 냈고 서울중앙지법 재판부는 학생들 대신 교사의 과실이 있다고 봐 소속 단체인 인천시가 구상금 2973만원을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재판부는 "학생들이 레일바이크에 탑승했을 때 운행은 회사 주도 하에 이뤄진다 하더라도 인솔 교사들은 그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사고로부터 학생을 보호할 의무가 있는데 이를 소홀히 해 사고가 발생한 것으로 보인다"며 전체 손해배상 책임의 70%가 레일바이크 운영사에, 30%는 인천시에 있다고 봤다.
교육계 한 인사는 "예측가능한 사고라는 개념을 레일바이크에서 발생할 수 있는 사고라는 수준으로 글자 그대로 적용하면 현실적으로 누가 현장학습을 가려고 하겠냐"며 "최종 법적 책임은 교육청에서 진다고 해도 일단 소송의 직접적인 당사자가 되는 교사는 심적 부담이 상당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또다른 관계자는 "학교 밖에서 학생들을 지도한다는 것 자체가 어려운 일"이라며 "혹시라도 사고가 나서 긴 시간 고통 받을 가능성을 생각하면 굳이 수학여행을 추진할 이유가 없다"고 말했다.
제주 E초등학교의 사례도 비슷한 경우다. 2008년 제주시 구좌읍 태왕사신기촬영세트장 현장학습에서 이 학교 4학년 G군이 친구들과 인력거를 타며 놀다가 다른 학생들이 인력거 뒤쪽에 탑승해 인력거가 뒤쪽으로 기울어지면서 G군의 왼쪽 약지가 인력거에 끼어 잘리는 사고가 났다.
세트장 운영사와 영업배상책임보험계약을 체결한 메리츠화재해상보험이 G군에게 보험금을 지급한 뒤 제주도를 상대로 제기한 구상금 청구 소송에서 재판부는 "교육활동 중 일어난 사고로 담당교사가 예상할 수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며 "제주도가 운영하는 E초등학교 교장이나 교사가 보호감독의무 위반 책임을 면할 수 없다"고 판결했다. 제주도는 손해배상 책임의 50%를 물어야 한다는 판결에 따라 구상금 445만원을 지급했다.
익명을 요구한 수도권 한 교사는 "학창 시절 추억을 위해서라는 이유로 소풍을 유지하기엔 보완해야 할 점이 많다"며 "실제 원하는 효과를 위해선 현장 안전인력 추가나 교사의 책임범위 정비 등 제도적 뒷받침이 우선"이라고 말했다.
정현수 기자 gustn99@mt.co.kr 박다영 기자 allzero@mt.co.kr 심재현 기자 urme@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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