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낮엔 매춘부, 밤엔 소설가” 성매매 체험 소설, 프랑스에서 10만부 팔린 이유 [나쁜 책]
2001년 프랑스 서점가에 소설책 한 권이 출간되자 출판계가 들썩였습니다. 제목은 ‘Putain’. 창녀, 매춘부, 헤픈 여자란 뜻이었습니다.
이 책은 28세 여성 작가 넬리 아르캉의 자전소설이었습니다. 저자 넬리는 20세부터 캐나다 퀘백대학에 재학하면서 성매매를 했고, 경험을 소설로 썼습니다.
성매매 기간은 무려 5년. 책은 관음증의 시선 속에 10만부 팔렸습니다. 격렬한 논쟁이 끊이지 않았고 TV프로그램은 그녀를 섭외합니다. 그 과정에서 소설 ‘Putain’은 프랑스의 저명한 문학상 후보에 차례로 오르며 문학성을 인정 받았습니다.
급기야 넬리 아르캉의 삶은 2016년 영화 ‘넬리’로도 제작됐습니다. 시쳇말로 창녀의 고백록인 이 소설은 왜 그토록 인기를 끌었을끼요.
넬리의 숙소 앞에 차 한 대가 도착하면 그녀는 외진 아파트로 가서 고객을 받았습니다. 그녀는 소개소 소속이었는데 사장의 ‘허락’이 떨어지면 그곳 아파트로 가서 침대 시트를 갈고 쓰레기통을 비운 뒤 화장을 고치며 앉아 있었습니다.
화대는 ‘반 시간에 50달러, 한 시간에 75달러.’ 돈을 더 줄 테니 시간을 더 달라고 해도, 그녀는 거절하고 돈을 딱 저만큼만 챙겼습니다. 그녀는 이 생활을 5년동안이나 이어갔습니다.
대학생이던 그녀가 성매매에 뛰어든 이유는 단지 돈 때문은 아니었습니다.
◎ “내가 매춘하기 쉬웠던 것은 원래부터 내가 타인들의 것이라는 점을 평소에도 아주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지. 이미 나는 창녀로 운명지어진 거나 다름없고, 실제로 창녀가 되기 전부터 창녀였던 것 같으니까 말이야.”(21~22쪽)
그녀가 갓 스무살이 되자마자 ‘창녀’가 된 첫 번째 이유는 부모에 대한 증오심이였습니다. 넬리의 집안 사정은 복잡했습니다.
그녀의 어머니는 “네 아버지에게 버림받았다”며 하루종일 침대에 누워 있었습니다. 아버지는 그런 아내를 집에 두고 젊은 매춘부를 찾아 다닙니다. 그러면서도 넬리 부친은 딸 넬리의 숙소엔 방마다 십자가를 걸어두는 모순적인 인간이었습니다.
넬리는 양측 부모 모두에게 반감을 가집니다. 그녀는 무기력하게 자기의 처지를 한탄만 하고 살면서 삶을 전혀 바꿀 의지를 보이지 않는 어머니를 ‘굼벵이’라고 모독하기도 합니다.
넬리는 ‘창녀’의 시선에서 남성의 얼굴 뒤에 감춰진 어긋난 성욕을 관찰했습니다. 자신의 매춘부 경험이 언젠가 자기 글쓰기의 ‘원료’가 되리라는 것. 그건 넬리가 ‘창녀’가 된 두 번째 이유였습니다.
사실 ‘창녀’는 인류 역사에서 가장 오래된 직업이지요. 넬리는 자신의 성매매를 인류사적인 관점에서 접근하고, 글을 쓰면서는 토악질 나는 남성과 하부관계인 여성의 계급구조까지 포착합니다.
넬리가 성매매 현장에서 본 남성들은 자신의 부친과 같은 평범한 인간들이었습니다. 가정을 가진 남성들은 자신의 아내가 아닌, 자신의 딸뻘인 여성에게 돈을 지불하며 섹스를 하려 하고 있었습니다.
◎ “만약 자기 아내와 딸이 창녀 노릇을 한다면 어떻게 생각할지, 그들(다른 아버지들) 역시 나처럼 침대 밑으로 콘돔을 내버리거나 전날 흔적인 뭇 남자들의 터럭이 마룻바닥 위를 굴러다니도록 내버려둔 채 손님들을 기다린다면 과연 아버지이자 남편으로서 어떤 생각이 들지.”(47쪽)
넬리는 하루에 ‘고객 대여섯 명’을 상대했습니다. 대부분의 남성들은 주름살과 흰머리, 탄탄하지 않은 몸뚱어리를 가지고 넬리의 방에 들어와 젊음을 탐했습니다. 금발의 젊은 여성인 넬리는 뚱뚱하든 늙었든 못생겼든 아무하고나 살을 섞습니다. 언젠가 아버지가 저 방문을 노크하리라는 예감과 함께 말이지요.
◎ “실제로 수많은 여성들이 자신의 몸뚱이를 마치 채석장처럼 취급한다니까, 먹을 것 가지고 아예 곡예를 부리지, 너무 보잘것없어서 눈물이 핑 돌 만한 양의 과일 조각을 두고도 놀랄 만큼 자신의 먹성을 통제해.”(62~63쪽)
넬리는 5년의 ‘창녀 짓’을 끝마치면서 너무 빨리 늙어버린 것 같다고 언급합니다.
◎ “좌우간 그 방에서 딱 한나절만 보냈는데도 평생 동안 그 짓을 한 것 같은 느낌이 들더군. 까짓 단번에 늙어버린 것 같긴 했지만 엄청난 돈을 벌어들였어. 나는 빠른 속도로 늙어가기 시작했어.”(23쪽)
넬리 자신의 말처럼 “무릎 사이에 얼굴을 파묻은 채로” 인생의 모든 남자들을 만나버린 것이지요.
소설 ‘Putain’의 가장 큰 문학적 성취는, 금기를 부숴버리면서 자전소설의 계보를 충실히 따랐다는 점이었습니다. 성매매 종사자의 자전소설은 ‘여성의 자리’라는 페미니즘적 가치를 획득했습니다.
또 이 책은 거의 한 권 전체가 하나의 문단, 하나의 문장으로 생각될 정도로 문장과 문단이 거의 나눠지지 않고 쉼표(,)만 사용하며 글이 구성됩니다. 마치 웅얼거리는 듯한 기법도 독창성을 인정받았습니다.
그러나 넬리 아르캉은 ‘Putain’의 상업적 성공과 소설가로서의 명성에도 불구하고, 세 권의 책을 더 쓰고는 사망합니다. 2009년 9월 24일, 캐나다 몬트리올의 아파트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고 외신은 전했습니다. 그녀의 마지막 소설은 죽음에 관한 소설이었는데, 소설 집필 과정이 실제 삶에 영향을 끼친 것으로 추정됩니다.
이후 넬리 아르캉의 짧은 삶과 그의 대표작 소설 ‘Putain’은 2016년 영화 ‘넬리’로 영상화됩니다. 안 에몽 감독이 연출하고 밀렌 맥케이가 넬리 역으로 주연한 영화입니다. 그런 점에서 영화 ‘넬리’는 소설가 넬리 아르캉을 위한 헌정의 작품이지요.
그녀가 매춘부로서의 삶을 선택한 것은 앞서 설명한 바와 같이 개인적 동기가 강했습니다. 넬리 아르캉은 ‘창녀’라는 직업을 동시에 이어가며 자기 자신에 대한 혐오를 세계에 대한 혐오로 바꿔냈던 것이지요. 즉, 그녀는 자신과 세계에 대한 글쓰기 행위를 통해 자기 자신으로부터 벗어나고 이로써 스스로를 치유하고자 했던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이 글의 가치를 알아봤던 눈 밝은 프랑스 출판사 편집자에게 발탁되면서 ‘Putain’은 ‘자전소설’의 지위를 획득하기에 이른 것이지요.
자전소설은 고백문학의 한 갈래로서, 21세기 문학계에서 가장 첨예한 장르입니다. 자전소설(autofiction)은 현실과 허구를 적절히 개입시키며 자신의 경험 일부를 드러내는 문학 장르를 말합니다. 자전소설은 집단과 역사를 다루는 소설을 향해 반기를 듭니다. 개인의 내면에 더 치중하자는 의미이지요. 특히 최근 들어서는 여성적 목소리를 담는 경우가 다수입니다.
넬리 아르캉의 문학적 계보는 집단이 아닌 개인으로서의 글쓰기, 특히 ‘여성적 글쓰기’의 계보를 따라가고 있으며, 이는 2022년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아니 에르노의 글쓰기와도 상당히 유사합니다.
하지만 노벨문학상 수상 당시 “사적 기억의 근원과 소외, 집단적 구속의 덮개를 벗긴 그의 용기와 꾸밈없는 예리함”(스웨덴 한림원)이란 찬사를 받았습니다.
과거 소설이 집단과 역사를 중시했다면, 아니 에르노는 여성 개인의 글쓰기를 전 세계 문학의 중심으로 역류시킨 작가입니다. 그런 상황에서 넬리 아르캉은, 아니 에르노의 자전소설처럼 깊이 있게 성매매 경험을 적나라하게 기술한 것이었습니다.
‘넬리 아르캉’이란 이름도 작가의 본명이 아닙니다. 그녀의 본래 이름은 이자벨 포르티에(Isabelle Fortier)이며, 책 출간하는 과정에서 생각한 필명이 넬리 아르캉(Nelly Arcan)이었습니다.
캐나다의 매춘부였던 이자벨 포르티에는 자기 자신의 과거를 ‘넬리 아르캉’이라는 제2의 인물에게 투영시키고 자신의 과거 상처와 ‘작별’하려던 것은, 그렇게 과거의 ‘나’를 떠나보내려던 것은 아니었을까요.
책에는 날것 그대로의 성애 묘사가 가득합니다. 이 기사에 옮겨적기엔 부적절할 정도로 수위가 높습니다. 하지만 이 책에 기술된 어떤 섹스 묘사도, 외설적으로 느껴지진 않습니다. 오히려 넬리 아르캉은 이 글을 쓰면서 ‘죽음 충동(자살 욕망)’으로부터 벗어나려고 애쓰고 있다는 것이 문장마다 절절하기 때문입니다.
결국 이렇게 정리해볼 수 있겠지요. ‘이자벨 포르티에가 넬리 아르캉으로서 썼던 글쓰기 방식은 결국 ‘죽음’을 이겨내고자 했던 몸부림의 한 결과이다.’ 쉽게 말해서 넬리 아르캉 그녀는 살기 위해 이 글을 썼던 것입니다.
그녀 이름이 캐나다 공립도서관 이름으로 선택된 것은, 단지 과거 이 지역 출신 베스트셀러 작가를 기리기 위한 목적만은 아니었을 겁니다. 작가 자신이 한때 ‘창녀’였음을 고백한 용기 때문만도 아니었으리라고 개인적으로 생각합니다.
한 명의 개인이 겪은 역사가 한 시대를 움켜쥐는 보편성을 획득할 때, 자전소설은 단지 개인의 일기가 아닌 시대의 일기가 됩니다. ‘Putain’은 그런 점에서 성매매 종사자 여성의 개인적 일기만은 아닌, 남성의 이중성을 바라본 한 창녀의 기록이라는 대표성을 획득하는 문학이 되는 것이지요. 도서관 공식 명칭을 고민했던 누군가는 바로 그 점을 간파하고 있었을 겁니다.
모든 문학은 자기고백적이며, 자전소설 작가는 그 글의 대상이 되는 시간과 공간으로부터 매번 이탈됩니다. 그렇게 글쓰기를 통해 문자 안에 자신의 내면을 관통했던 시공간을 정박시키고, 작가 자신은 그 시공간으로부터 떠나오기 마련입니다.
넬리 아르캉이 매춘부로서 일했던 ‘방’에서 벌어진 사건과 기억은 전부 소설 ‘Putain’에 남겨졌습니다. 독자는 그녀의 소설을 다시 읽으면서, 자기 자신을 부정하다 결국 자신까지 내던지고야 만 한 여성을 기억하게 될 것입니다.
※다음주에는 사데크 헤다야트의 《눈먼 부엉이》를 다룹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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