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기형·장애 후손에 대물림 ‘최후의 독약’ [베트남 철군 50주년]

윤현서 기자 2023. 9. 30. 0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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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 베트남전 당시 적군 은신처 없애려...뿌린 맹독성 제초제 청산가리 2천배↑
오염된 땅, 회복 위해 아직도 정화 작업...2·3세까지 돌연변이 질환으로 고통

검은 비에 씻겨간 희망 ④ 에이전트 오렌지

‘에이전트 오렌지’. 흔히 고엽제를 일컫는 말이다. 미국이 베트남전쟁 당시 적군의 은신처인 숲을 고사시키기 위해 사용한 맹독성 제초제다. 당시 고엽제를 오렌지색 띠의 드럼통에 담아 살포해 ‘에이전트 오렌지’라 불렸다. 고엽제 피해자들의 아픔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고엽제에 대해 좀 더 자세히 알아볼 필요가 있다.

호찌민 전쟁박물관 관계자가 베트남전 당시 고엽제 살포 현황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윤현서기자

■ 세대를 넘어 고통을 선사한 화학약품

1961년에서 1971년 사이 미군은 여러 가지 화학 제초제와 고엽제 8천만ℓ를 베트남 국토의 약 10~20%에 살포했다. 남베트남민족해방전선 게릴라(베트콩)의 밀림에 감춰진 이동 경로를 노출시키기 위해서였다.

베트콩의 활동지역인 산림을 제거하기 위해 쓰인 고엽제의 주요 성분인 ‘다이옥신’은 청산가리의 2천배가 넘을 정도로 독성이 강하다. 지금껏 인간이 만들어낸 독극물 중 가장 독해 ‘최후의 독약’으로도 불린다. 불과 1g만으로도 2만명 이상을 살상할 수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목표는 적군이었지만, 피해는 피아를 가리지 않았다. 전쟁에 참여했던 우리나라와 미국, 그리고 베트남의 피해는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특히 베트남 국민 중 최소 210만명에서 최대 480만명이 고엽제에 노출됐고, 이후 15만여명이 기형아로 태어났다는 게 베트남 측의 추산이다.

현재 베트남에서는 약 300만명이 암과 기형 등 다음 세대로 유전되는 돌연변이 질환으로 고통받고 있다. 또 고엽제로 나무가 말라 죽은 땅을 회복하기 위해 일부 지역에서는 아직도 소독 작업이 이뤄지고 있다. 고엽제로 인한 고통과 후유증은 현재진행형이다.

■ 울창하던 밀림이 말라가던 그날

고엽제는 한국군이 주둔해 있던 남쪽지방에 많이 살포됐다. 이로 인해 남베트남 쪽에 피해자가 많이 발생했다. 정확한 시기나 규모 등에 대해서는 밝혀진 바가 없으나 한국군이 참전하면서 미군의 고엽제 살포를 직간접적으로 지원했다는 주장도 있다.

전쟁 당시 호찌민 근처 지역인 빈즈엉성에서 참전했던 따꽝비엔씨는 하노이 고엽제 협회에서 일하며 당뇨와 혈액 치료를 받고 있다. 따꽝비엔씨의 자녀 가운데 첫째는 몸이 매우 약하고, 둘째는 낳자마자 사망했다. 셋째는 지적장애를 가지고 태어났다.

그는 “미군이 뿌린 약으로 베트남의 울창하던 밀림이 노랗게 서서히 말라가는 모습을 보면서 작전지역에서 근무를 하고 물을 떠 먹기도 했는데 바로 그 약이 나를 괴롭히는 병을 키울 거라고는 꿈에도 몰랐다”며 당시를 떠올렸다.

2세 피해자이자 하노이 고엽제 피해자 지원센터에서 근무하고 있는 브엉티꾸옌씨는 “장애를 가지고 있으면 일할 수 있는 기회조차 없다”며 “나는 고엽제 피해자로 선정돼 정부의 혜택이나 지원을 받았지만, 베트남에는 기본적으로 장애를 가지고 태어난 사람이 많다 보니 지원을 못 받는 2, 3세들이 많다”고 하소연했다.

미군이 2017년 베트남에서 자신들이 뿌린 독성물질을 처리하는 모습. 호찌민 전쟁박물관 제공

■ 미국도 떨쳐내지 못한 고엽제 공포

베트남전 당시 최대 규모의 미군 기지였던 남부 동나이의 비엔호아 공군기지. 지난 2017년 미국과 베트남의 합동조사 결과, 이 일대 50만㎡가 독성 화학물질에 오염돼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이에 미국 국제개발처(USAID)를 중심으로 지난 2019년 12월부터 제거 작업을 펼쳤다. 10년동안 3억달러(약 4천억원)를 들여 오염 지역을 정화하는 게 목 표다.

미국은 지난 3월 오염물질 정화를 마친 이 일대 일부 지역을 베트남 국방부에 되돌려줬다. 중국 견제와 동시에 동남아시아국가연합에 영향력을 강화하기 위한 의도다. 특히 미국은 올해로 베트남과 포괄적 동반자 관계 격상 10주년을 맞아 1천200억달러에 달하는 무역, 투자 관계를 맺는 등 협력하고 있다.

당시 행사에 참석한 베트남 측 관계자는 기자에게 “미국 측 관계자들은 베트남과 미래 협력 관계를 심화하기 위해 이곳을 특별히 찾았다”며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이날 우리와의 식사 자리에서는 베트남 내륙에서 나온 음식은 손도 대지 않고, 해양 수산물만 먹고 갔다”며 씁쓸해했다.

베트남 호찌민시에 살고 있는 참전 군인과 그의 딸이 고엽제로 인한 후유증으로 힘겨운 삶을 살고 있다. 윤현서기자

■ 고엽제가 빼앗아간 숲을 되찾다

호찌민에서 동남쪽으로 50㎞ 떨어진 껀저섬에 자리한 맹그로브 숲도 고엽제로 큰 피해를 입었다. 하지만 최근 나무들이 엄청난 숫자로 불어나 소생한 초목으로 푸르름을 되찾았다. 베트남 정부와 주민들의 노력 덕분이었다. 지난 2000년 유네스코에서 생태보호지역으로 지정했고, 50여년이 지난 지금에야 과거의 모습을 되찾기 시작했다.

껀저섬에 숨어 있다는 비밀항전기지를 찾아가던 중 수백마리의 원숭이와 새, 악어 등 야생 동물들을 발견할 수 있었다.

껀저섬 관리자는 “베트남전 당시 미군들이 엄청난 폭격과 고엽제 살포로 인해 맹그로브 숲의 대부분이 소실됐지만, 복원작업을 통해 수십년이 지난 지금에야 옛 모습을 거의 회복했다”고 설명했다.

비밀항전기지는 전쟁의 포성이 멈춘 지 50년이 흘렀어도 당시의 긴박함과 비장함이 느껴졌다. 주위가 습지로 둘러싸여 있어 지상군 진입이 쉽지 않다는 장점이 있다. 미군도 끝내 이곳을 찾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결국 미군이 택한 건 고엽제 살포였다.


※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 기금 지원을 받았습니다.

윤현서 기자 031@kyeongg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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