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아들 천재 같다" 놀란 엄마…초3 학생들 실험해보니 [백수전의 '테슬람이 간다']
"천재가 아닌, 천재가 돼버린 사람"
어린 시절 머스크, 멍 때리는 '이상한 아이'
그를 혁신으로 이끈 건 '하루 10시간 독서'
초3 교실에서 500개 물체로 창의성 실험
아이들 상상 커질수록 '남다른 결과물' 만들어
한국인은 '천재가 타고난다'고 생각하지만
창의성은 '창의적일 수밖에 없는 환경'서 나와
“테슬라와 스페이스X를 이끄는 혁신가이자 세계 최고의 부자, 일론 머스크는 천재일까요?”
비 내린 지난 20일 저녁 연세대 백주년기념관. 무대 위 강연자의 돌발 질문에 좌중이 쥐 죽은 듯 조용해졌습니다. 지난 13일 출간한 일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CEO)의 전기(傳記) 「일론 머스크」 북콘서트 현장엔 600여명의 관객이 모였습니다. 관객은 20~30대 젊은 층이 주류였지만, 테슬라 투자자로 보이는 40~50대도 적지 않았습니다.
강연자는 최근 방송 프로그램에서 활발한 활동을 하는 김경일 아주대 교수. 그는 국내 대표 인지심리학자로 알려져 있습니다. 머스크를 논하는 자리에 왜 심리학자가 등장한 걸까요. 김 교수에 따르면 인지심리학의 관점에서 본 머스크는 흥미로운 인물입니다.
이번 주 <테슬람이 간다>는 작가 월터 아이작슨의 화제작 「일론 머스크」 북콘서트에서 나온 머스크와 천재, 그리고 혁신에 대한 이야기를 독자 여러분께 소개합니다. 미리 말씀드리지만 ‘MBTI’ 얘기는 아닙니다.
이상한 아이, 일론
“나는 전기차를 재창조했고
사람을 로켓에 태워 화성에 보내려 합니다.
그런 내가 차분하고 정상적인 친구일 거라 생각했나요?”
- 일론 머스크, 2021년 미 ‘SNL’ 방송 중
“인지심리학자가 본 머스크는 아스퍼거증후군, 주의력결핍 과잉행동장애(ADHD), 외상후 스트레스장애(PTSD) 등 반사회성 기질의 종합선물 세트 같습니다” 김 교수는 일반 사람들이 보기에 머스크가 다소 미친 사람처럼 보일 수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이는 그만의 생각이 아닙니다. 머스크 관련 자서전을 보면 무수히 서술된 내용입니다. 특히 어린 시절의 머스크가 그렇습니다.
머스크의 어린 머릿속에서는 정상적인 발달 이상의 뭔가가 진행되고 있었다. 끊임없이 폭발하는 아이디어와 질문. 모두가 그렇지 않다는 것을 깨닫고선 그는 겁을 먹었다. “내가 미친 애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난 세상이 정말 궁금했다”
- 마이클 블리스마스 「일론 머스크, 대담한 선택」
머스크는 위협을 받는다고 느낄 때면 어린 시절 얻은 PTSD가 뇌에서 감정을 조절하는 부분을 완전히 장악해버린다. 그는 사회적 신호를 잘 포착하지 못했다. 일상의 친절이나 따뜻함 등의 공감 능력을 타고나지 못했다. 책을 통해 배웠을 뿐이다.
- 월터 아이작슨 「일론 머스크」
미래를 과소평가하는 인간
머스크가 어려서부터 남달랐기에 오늘날 이런 혁신을 이룰 수 있었다는 얘기일까요. 김 교수의 얘기를 조금 더 들어보겠습니다.
“인간은 언제나 미래를 과소평가합니다. 대다수는 어떤 일에 익숙해지고 노련해지는 것을 미덕으로 추구합니다. 기존 생각의 틀에서 잘 벗어나지 못해요. 나이가 들수록, 과거에 큰 성공을 거둔 사람일수록 더욱 그러합니다”
그는 18세기 증기기관차가 처음 등장한 시절을 예로 들었습니다. 초기의 기관차는 마차처럼 사방이 뚫려있었고 기관사들은 엄청난 석탄 매연을 고스란히 마셔야 했습니다. 당연히 죽는 사람이 속출했습니다. 지금처럼 매연을 막을 박스형 열차를 만들면 간단했을 텐데 왜 생각하지 못했을까? 당시 사람들은 미래를 보지 못했습니다. 인류가 오랜 세월 탄 마차가 당시 사람들에겐 익숙한 기술이었던 겁니다.
이런 과거의 사례는 무수히 많습니다. 기존의 생각에서 벗어나니 놀라운 진전을 할 수 있었지요. 결국 혁신가는 틀을 깨는 사람입니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은 ‘미래가 바뀐다는 사람’을 감당하지 못합니다.
머스크의 아버지 에롤 머스크 역시 기존의 틀에 갇힌 사람이었습니다. 엔지니어였던 그는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사업으로 성공을 거두고 큰돈을 벌었습니다. 10대의 소년 일론이 미국 같은 ‘큰물’에서 도전해보고 싶다고하자 그는 다음과 같이 질책합니다.
“에롤은 아들을 앉혀놓고 서너 시간 동안 입도 벙긋 못하게 훈육했다. 엄하게 다루는 것을 즐기는 듯했다. 일론이 미국에 가고 싶다고 하자 아버지는 ‘미국인인 체하는 것’이 무엇인지 깨닫게 해주겠다며 가정부를 해고하고 일론에게 집안일을 모두 떠맡겼다.”
- 애슐리 반스 「일론 머스크, 미래의 설계자」
“혁신은 유추에서 일어난다”
인공지능(AI)은 기존의 수많은 데이터를 취합해 빠르게 결과물을 도출합니다. 챗 GPT의 열풍과 함께 검색, 번역, 그림, 글쓰기 등 인간 고유의 영역이라고 생각했던 많은 업무가 AI로 대체될 가능성이 커지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인간은 어떤 일을 맡아야 할까요. 김 교수는 AI가 틀 안에서 움직인다면 인간은 틀을 깨는 존재라고 설명했습니다. 혁신이 가능한 건 오직 인간뿐이란 얘기입니다.
“혁신은 어디에서 오는 걸까요. 저는 유추(analogy)라고 생각합니다. 유추는 지식의 융합입니다. 세상에 엄청난 일은 사소해 보이는 것들을 연결한 것이 많습니다. 스티브 잡스의 아이폰이 대표적이지요. 영역이 다른 두 가지를 하나로 이어 붙일 때 뇌는 활성화됩니다”
김 교수는 유추는 은유(metaphor)에서 나온다고 했습니다. 은유는 사물을 암시적으로 나타내는 수사법으로 시(詩)에서 많이 쓰입니다. 유추와 은유를 하려면 무엇을 해야 할까요? 바로 독서입니다.
“어린 시절 일론은 책벌레였다. 하루에 10시간씩 책을 읽었다. 가족들이 쇼핑하는 사이 일론은 가까운 서점 바닥에 주저앉아 정신없이 책을 보곤 했다. 학교와 마을 도서관의 책을 모조리 다 읽어버렸고 브리태니커 백과사전 두 질을 통째로 외웠다”
- 애슐리 반스 「일론 머스크, 미래의 설계자」
김 교수는 말했습니다. “한국인이 10대 시절 가장 많이 보는 책은 참고서와 사전입니다. 은유가 0%인 책이지요. 이것은 독서가 아닙니다. 청소년기에 이런 사전만 읽으니 성인이 돼서 책을 멀리합니다. 이런 교육으로 기존의 틀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요, AI를 이길 수 있을까요?”
“천재는 타고나지 않는다”
김 교수는 다시 머스크에 대해 언급합니다. “머스크는 천재일까요? 천재라기보단, 천재가 되어버린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한국 사람들은 천재가 타고난다는 생각을 강하게 합니다. 물론 IQ는 타고납니다. 하지만 IQ는 인간을 설명할 수 없는 수치입니다”
그는 초등학교 3학년생을 대상으로 한 실험을 언급했습니다. “가끔 주변에서 ‘우리 아이가 천재인지 봐달라’는 말씀을 하세요. 그러면 저는 ‘제가 누구나 천재로 만들 수 있습니다’고 우스갯소리로 답하곤 합니다”
김 교수의 실험은 다음과 같습니다. 3개 반 교실 아이들에게 위 사진과 같은 물체 500개를 똑같이 뿌려놓습니다. 1반에선 “각자 물체 5개씩 골라서 새롭고 신기한 걸 만들어봐라”고 주문합니다. 그러면 아이들은 서로 눈치를 보다 가장 평범한 물체를 골라 평범한 걸 만듭니다.
2반에선 “마음에 드는 물체 5개를 골라라”고 말하고 교실을 나갑니다. 아이들은 남이 안 고른 특이한 물체를 고릅니다. 김 교수가 갑자기 교실에 들어가서 “새롭고 신기한 걸 만들어봐라”고 말합니다. 아이들은 당황합니다. 하지만 4~5명 중의 1명은 기발한 것을 만듭니다.
3반에선 물체를 천으로 가려놓고 묻습니다. “새롭고 신기한 걸 만든다면 뭘 만들래?” 아이들은 엄청난 것을 얘기합니다. 지구 평화 로봇, 명왕성행 로켓, 기름 없이 가는 자동차 등 아이디어가 쏟아집니다. 이후 김 교수는 물체를 공개하고 말합니다. “이 물체 중 5개를 골라서 조금 전에 얘기한 걸 만들어봐” 그러자 놀랍게도 아이들은 1,2반보다 훨씬 창의적인 물건을 만들게 됩니다.
“말도 안 되는 큰 꿈을 꿔라”
이 실험의 결과가 말하는 건 무엇일까요. 혁신은 ‘창의적일 수밖에 없는 환경’에서 온다는 겁니다. “인지심리학자는 창의적 인재라는 표현을 쓰지 않아요. 창의적 상황으로 몰고 가느냐가 차이를 만들 뿐입니다. 생각의 변화가 기존의 틀을 깹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고정관념을 가지고 있죠. ‘큰 결과를 내려면 큰 도구가 필요해’라고요”
‘머스크는 엄청난 천재일 거야’라는 생각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그는 지난 20년간 인류를 화성에 보내고 지구가 지속가능한 에너지로 전환되는 세상을 그렸습니다. 그는 천재라기보단 ‘말도 안 되게’ 꿈이 큰 사람입니다. 그렇지 않았다면 세계 최고의 부자가 된 현재에도 주당 100시간을 일하며 공장에서 잠을 청할 리 없겠지요. 그 거대한 꿈은 머스크를 잡스의 뒤를 잇는 금세기 최고의 혁신가로 자리매김하게 했습니다.
김 교수는 다음과 같은 말로 강연을 마무리했습니다. “꿈과 목표를 구분해야 합니다. 건물주는 목표일지언정, 꿈일 수는 없습니다. 하고 싶은 행위가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동사’가 있는 사람이요. 머스크는 전기차든 화성이든 사람을 옮기는 행위를 하는 사람입니다. 이제 여러분께 묻겠습니다. 당신의 동사는 무엇인가요?”
▶‘테슬람이 간다’는
2020년대 ‘모빌리티 혁명’을 이끌어갈 테슬라의 뒷이야기를 풀어갑니다. 최고의 ‘비저너리 CEO’로 평가받는 일론 머스크도 큰 탐구 대상입니다. 국내외 테슬라 유튜버 및 트위터 사용자들의 소식과 이슈에 대해 소개합니다. 아래 기자 페이지를 구독하면 매주 기사를 받아볼 수 있습니다.
백수전 기자 jerry@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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