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와인] ‘포도로 수놓은 스페인’ 카사 로호 틴타 피나
‘전형적(典型的)’이라는 단어는 명예인 동시에 멍에다.
대체로 ‘교과서와 같다’는 좋은 뜻으로 쓰이지만, 때로는 ‘뻔하다’는 의미를 갖는다.
‘전형적인(typical) 스페인 와인’에 대한 평가 역시 비슷하다.
스페인 기후는 매우 혹독하다. 강수량이 지나치게 적고, 토양은 척박하다. 좋은 와인은 원래 적은 강수량과 척박한 토양에서 빚어진다.
스페인은 그 정도가 심하다. 스페인 포도밭에는 키 작은 포도나무가 듬성듬성 심겨 있다. 프랑스나 이탈리아 유명 와인 산지처럼 키를 맞춰 나란히 늘어선 포도밭을 보기 어렵다.
포도송이 숫자도 매우 적다. 거친 스페인 기후와 토양 조건에 맞춰 포도나무를 관리하기 때문이다. 비가 적게 오니 당연히 포도송이 숫자도 적다. 대신 포도 알맹이가 달고 단단하다.
보통 스페인 레드 와인은 15도 내외 알코올 도수를 보인다. 품종을 막론하고 과일 향이 풍부해 어느 음식에나 두루 어울린다는 평이 대다수다.
하지만 그 뒤로는 ‘단편적이고 복합미가 떨어지는 달콤한 와인’이라는 아쉬움이 따라붙었다. ‘일부 브랜드를 빼면 세계적인 반열에 오르기 어렵다’는 고정관념도 뿌리 깊게 자리 잡았다.
카사 로호를 세운 호세 루이스 고메즈 가르시아(Jose Luis Gomez Garcia)와 라우라 무뇨즈 로호(Laura Munoz-Rojo) 부부는 스페인 와인이 제대로 대접받지 못하는 현실에 분노했다.
2007년 처음 만난 부부는 스페인 전역에서 나는 포도로 와인을 빚기로 했다.
스페인은 프랑스나 이탈리아보다 포도 재배 면적이 넓다. 재배 면적으로는 전 세계 1위 국가다. 대서양과 맞닿은 동쪽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부터 서쪽 끝 바르셀로나에 이르기까지 포도를 키우지 않는 곳이 없다.
2014년 비로소 카사 로호 이름으로 첫 와인이 나왔다. 이후 10년 동안 카사 로호는 덜 알려진 스페인 토착 품종 포도로 정제된 와인을 만들었다.
보통 좋은 술이라 하면 필연적으로 생산 지역과 생산자를 세심하게 따진다. 소주를 예로 들면 일반 희석식 소주보다 안동소주가 비싸다. 안동 소주 중에서도 특별한 명인이 만든 제품이 더 높은 가치를 띈다.
와인 역시 예를 들면 프랑스 중에서도 특정 지역, 그 특정 지역 유명 생산자가 본인 밭 한 귀퉁이 소규모 밭에서 만든 것이 가장 높은 평가를 받기 마련이다.
카사 로호가 만드는 와인은 이런 통념을 넘어선다. 와인을 만드는 지역 특성을 고스란히 담을 수 있다면 얼마나 비싼 와인을 만드는 지역인지, 밭 주인이 누구인지 같은 이름값은 따지지 않는다.
대신 한 발 더 깊이 들어갔다. 카사 로호 대표 제품 가운데 하나인 에메미고 미오는 시에라 데 라 필라(Sierra de La Pila)에 자리 잡은 카사 로호 단일 포도밭에서 만든다. 다른 와이너리는 이곳에서 포도를 키우지 못한다는 의미다.
이 지역은 포도밭 규모가 4헥타르로 그다지 크지 않다. 북쪽 고지대라 건조한 스페인 기후를 감안하면 질 좋은 포도를 키워내기까지 손이 많이 간다. 다른 포도 재배자들이 이 지역을 거들떠보지 않은 이유다.
그러나 와인 양조 경력 42년이 넘은 프랑스 와인 메이커 파트릭 메라즈를 중심으로 한 카사 로호 양조팀은 이 지역 신선한 점토질 토양이 스페인을 대표하는 레드 와인 품종 가운데 하나인 가르나차를 키우기에 최적이라고 판단했다. 그 결과 에네미고 미오는 이 지역 특성을 머금은 유일한 가르나차 품종 와인으로 자리 잡았다.
카사 로호가 가장 최근에 선보인 틴타 피나는 스페인 북부 리베라 델 두에로 지역 특성을 온전하게 살린 와인이다. 이 지역을 대표하는 템프라니요 품종 포도 100%를 사용해 만든다. 올해 1월 2020년산으로 첫선을 보였다.
틴타 피나는 스페인 와인에 씐 낡은 이미지를 개선하기 위해 겉면에는 와인 맛과 개성을 젊은 감각으로 표현했다. 이 그림은 와인 양조가와 소믈리에, 디자이너가 팀을 이뤄 자아낸 결과물이다. 수입사는 에노테카코리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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