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방소멸 막으려면]①“아내는 카페, 남편은 사과와인”…귀농 1위 의성, 비결은
“60대 이웃이 토마토 농사 멘토”
“외지에서 왔다고 텃세도 없어요”
지난 7월 출생아 수가 같은 달 대비 역대 최저 수준을 기록하면서 올해 합계 출산율이 0.6명대로 떨어질 수 있으리라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인구 감소로 직격탄을 맞게 된 것은 수도권이 아닌 지방이다. 진학과 취업 등으로 꾸준히 인구 유입이 이뤄지는 수도권과 달리 지방은 지속적으로 인구가 줄어드는 추세다. 2021년 감사원 보고서는 2067년 무렵엔 전국 243개 지자체 중 229개 지역이 소멸 고위험 지역이 될 거라고 예상했다. 조선비즈는 인구가 줄고 있는 지자체가 어떤 노력으로 소멸 위기에 대응하고 있는지 짚어본다. [편집자 주]
“혼자 시골에 내려와 카페 창업이 쉽지는 않았습니다. 원두는 어디서 구매하고 회계, 세무, 인테리어, 홍보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 맨땅에 헤딩하는 것처럼 어려웠지만 지자체를 통해 6000만원을 지원받고 사업 컨설팅도 받았어요.”
경북 의성군에서 지난 19일 오전 10시쯤 만난 양진영(42)씨는 이렇게 말했다. 양씨는 서울에서 미대를 졸업한 뒤 불교 관련 미술관에서 근무했다. 도시 생활에 지쳐가던 그는 당시 의성에서 진행하던 ‘도시 청년 시골 파견제’에 대해 알게 됐다. 만 45세 이하 타 지역 청년을 선발해 의성에서 다양한 분야 창업을 지원하는 사업이었다.
양씨는 2019년 의성으로 내려와 플라워 카페 ‘꽃숲’(꽃이 숲을 이루다)을 창업했다. 창업 과정에서 의성에서 1년에 3000만원씩 2년간 6000만원을 지원받았다. 양씨는 “냉장고 등 카페 창업에 필요한 물품을 마련할 수 있었다”고 했다.
◇인생 짝꿍도 의성에서 만났다…“로컬의 힘을 보여드릴게요”
‘시골’에서 무턱대고 카페를 창업하는 것이 쉽지는 않았다. 양씨는 “예체능을 전공해 아무 것도 몰랐다”며 “고생을 많이 했다”고 했다. 카페는 무사히 자리를 잡았고 그는 다음 단계로 도약을 준비하고 있다. 카페에서 경력 단절 여성을 고용해 바리스타 교육을 시켜주고, 메뉴 조리법을 공유하고, 플레이팅부터 운영 노하우를 전수하는 사회적 기업을 설립할 계획이다. 양씨는 “주변 친구들을 보면 사무실에서 일하다가 아이를 낳고 복귀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다”며 “받은 것을 (사회에) 돌려드리고 싶다”고 했다.
양씨는 남편도 도시 청년 시골 파견제를 통해 만났다. 양씨는 카페에서 의성콩을 활용한 크림 콩가루 라떼를 판매하고 남편은 사과 와인(시드르) 등 의성 특산물로 술을 빚는다. 양씨는 “서로 의지하고 바쁠 때 도와주며 만나다가 먼저 혼인 신고를 했다”며 “내년 봄에 결혼식을 올릴 예정”이라고 했다.
양씨는 ‘로컬’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대한민국에 도시만 있으면 얼마나 삭막하겠어요? 로컬이 있어야 도시도 공존할 수 있죠. 사람들이 제주도나 강릉을 찾는 이유가 로컬 특색을 경험하기 위해서인데 아직 의성에는 그런 게 없어요. 의성에 마늘만 있는 건 아니거든요. 의성에서 로컬의 힘을 보여드릴게요.”
◇“수의대 준비하다 귀농, 3000평 토마토 농사 막막하지 않아요”
의성에서 같은 날 오후 2시쯤 만난 황윤환(33)씨는 3000평 규모의 밭에 토마토 농사를 짓고 있다. 원래 대구에서 수의대 진학을 목표로 수능을 준비하고 있었으나 진로를 농사로 틀어 2017년 의성으로 내려왔다. 의성은 일교차가 크고 일조량이 풍부하며 강수량이 적다. 그만큼 당도 높은 과일을 생산하기 적합하다고 판단했다. 다른 지역보다 땅값이 저렴한 것도 마음에 들었다.
첫 1년은 일단 밭을 임대해 토마토 농사를 배웠다. 땅 주인이 건강 문제로 농사를 그만두자 황씨가 인수해 본격적으로 뛰어들었다. 수능을 준비하던 황씨가 농사를 짓는 것은 막막한 일이었다. 황씨는 지자체를 통해 이웃에 거주하는 60대 중반의 농사 멘토를 소개받았다. 멘토는 자신의 농사를 지으면서도 황씨에게 성심성의껏 노하우를 전수해줬다.
황씨는 “한해 농사는 병충해를 막는 게 중요하다”며 “병충해가 생긴 줄 모르고 그냥 넘어가면 공들여 키운 작물을 망칠 수 있는데, 농사 멘토는 한눈에 병충해를 알아보고 해결 방법을 알려주더라”고 했다. 농사 선배들이 많으니 새로 온 외지인도 텃세 없이 빠르게 정착할 수 있다는 게 황씨 설명이다.
“막연하게 귀농에 대한 로망만 갖고 쉽게 보시면 안 됩니다. 농사는 실전입니다. 힘들게 일했는데 기대만큼 안 될 수도 있어요. 지자체에서 적극적으로 도움도 받고 어떤 위기도 극복할 수 있다는 각오가 필요합니다.” 예비 귀농인에게 전하는 황씨의 조언이다.
◇비싼 농기계 빌려주고 주택 지원…“일단 살아보세요”
경북 의성으로 지난해 귀농한 인구는 213명으로 전국 시·군·구 중 1위를 기록했다. 의성 인구는 지난 2018년 5만2944명에서 올해 8월 5만35명으로 줄었다. 그런데 귀농·귀촌 인구는 2018년 1034명(698가구)에서 작년 1345명(1110가구)으로 늘었다. 고령화에 대응하기 위해 적극적인 인구 유입 정책을 펼치고 있기 때문이다.
의성은 귀농·귀촌하는 이들에게 이사 비용을 최대 100만원까지 지원한다. 주민들과 친해지기 위한 집들이 비용 30만원도 준다. 농사를 짓는 경우 묘묙 등 구입비 500만원을 지원하고 농사 교육도 시켜준다. 트랙터, 굴삭기, 퇴비 살포기 등 농기구 47종 750대를 월 1만~5만원의 저렴한 값에 대여해준다. 의성군 관계자는 “비싼 농기구는 몇천만원짜리도 있는데 처음 농사 짓는 사람들이 무턱대고 구매하기 부담스럽다”며 “비닐하우스 농사를 하면서 비닐 한번 교체하는 데도 2000만원씩 드는데 군에서 지원이 가능하다”고 했다.
의성에서 농사를 짓다가 관련한 창업을 하고 싶으면 3억원까지 연 2%의 낮은 금리로 지원해준다. 딸기 등 스마트팜에 관심있는 청년들에게 교육도 시켜준다. 사업비 137억여 원을 들여 부지 면적 3.9헥타르(㏊) 규모로 스마트온실 6개 동을 구축했다. 2021년부터 1기 50명, 2기 33명이 교육받았다.
정착도 중요하다. 세대당 주택 구입비 7500만원을 연 2%의 낮은 금리로 지원한다. 귀농·귀촌을 결심하기 전 일단 와서 살아보는 ‘의성 살아보기’ 프로그램도 운영한다. 의성에서 농지 등을 확보했거나 앞으로 확보해 정착하려는 예비 귀농자에게는 1년간 ‘귀농인의 집’ 주택을 무상으로 임대해준다. 의성군 관계자는 “살아보기 프로그램으로 밭에 가서 일도 해보고, 이장님 따라서 마을에 꽃 심는 곳도 방문하고, 재미 삼아 왔다가 매력을 느껴 정착하는 청년들이 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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