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던 경성]‘억센 조선’ 꿈꾼 夢想家들

‘억센 조선의 건설은 우리의 큰 구호의 하나가 되어야 한다. 조선은 약하다. 줄잡아서 억세지 못하다. 못먹고 못입고 못살아서 약하니 가난하여 약한 것이오 못배워서 약하니 지식으로 약한 것이오 뛰고 닷고 밀고 나가고 잡아낫구기에 약하니 체육에 약하고 단련이 약한 것이다. 세상만사가 모두 가난 때문이라고 그만두어버린다면 쓰라리고도 쉬운 일이지만 우리는 할 수 있는 모든 힘을 모아 우리 스스로가 한 걸음씩 ‘억센 조선’을 만들어나가기에 골독(골똘)하여야 하겠다.’(‘억센 조선의 건설’, 조선일보 1932년 1월1일)
‘억센 조선의 건설’은 조선일보가 1932년 신년호에 내건 캐치프레이즈였다. 조선중앙일보 역시 1936년 신년호에 ‘억센 조선을 세우자’는 구호를 내세운 걸 보면, 상당한 공감을 불러일으킨 듯하다. 1936년은 마침 가르미슈-파르텐키르헨 동계올림픽과 베를린 하계올림픽이 열린 해였다. 이 신문은 ‘그 민족의 건강과 그 의기는 그 민족의 사회적 역량을 반영하는 것으로서 우리는 희망의 새해를 ‘억센 조선’의 건설촉진에 총집력할 것으로 믿는다’고 기사를 마무리했다.

◇저명 지식인들이 조선체육회장 맡아
1930년대 신문엔 ‘억센 조선’이란 구호가 종종 등장한다. 특히 스포츠와 연관된 경우가 많다. 근대 스포츠는 20세기 들어 이 땅에 본격적으로 들어왔다. 야구, 축구, 육상 등이 속속 소개되면서 학교 체육을 통해 자리를 잡았다. 1920년 조선체육회 (대한체육회 전신)설립과 함께 각종 스포츠대회가 앞다퉈 열렸다.
신흥우, 유억겸, 윤치호, 여운형 같은 지도층 인사들이 조선체육회(1920년 발족)를 잇따라 이끈 것도 스포츠를 단순히 취미나 여흥거리로 인식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민족이 유약(柔弱)해서 나라를 잃었다고 생각한 이들은 스포츠를 통해 건강한 신체와 정신을 닦아 민족을 다시 일으켜세운다는 목적의식이 강했다.
◇500년 文弱한 조선, 스포츠로 일으켜세워
‘억센 조선의 건설은 무도(武道)의 부흥-상무(尙武)정신의 부흥을 의미하는 것이다.’ 조선일보 1932년1월19일자 1면 사설 ‘무도부흥’(武道復興)은 상무정신의 부흥을 내걸었다. 상무정신을 기르기 위해선 체육적 단련과 분위기 조성이 필요한데, ‘조선인은 오백년 문약(文弱)의 끄트머리에 이것을 독자적으로 발휘할 사이가 없이 드디어 엄대한 변국에 다닥드리어 오늘날에는 잃은 것이오 민간적 사업으로 이것을 일으키기 시작한 지 무릇 이십수년래의 일’이라고 썼다.
신문사가 각종 스포츠대회를 주최하거나 스폰서로 나선 이유도 ‘억센 조선의 건설’ 취지에 공감했기 때문이다. 1932년 2월21일 오후 7시반 경성 시내 한복판 경성공회당서 권투시합이 열렸다. 당대 최고의 복서로 인기있던 서정권의 도미(渡美)송별권투대회였다. 조선일보 주최, 조선권투구락부 후원이었다. 이 경기는 경성방송국이 라디오 중계방송까지 할 만큼 화제를 모았다.
‘(권투는) 다른 운동경기보다 절대의 투쟁의식과 인내력이 주체됨에 따라서 더욱 나약하야가는 조선 청년에게 보급시키려는 것이다. 자기의 피를 흘리면서 남의 피를 보게 되는 이 같은 용감한 운동을 볼 때에 어느 누가 가슴의 피가 뛰지 않으며 쾌재를 부르지 아니할 것인가.’(‘권투대회에 관중 쇄도 보건체조 대개강’, 조선일보 1932년2월23일). 요즘 시각으로 보면 낯설지만, 청년의 투쟁의식과 투지를 고무하기 위해 권투를 장려한다는 입장을 분명히 했다.
권투 대회 다음날인 2월22일 중앙기독교청년회(YMCA)와 공동주최로 시민보건체조강습을 시작한 것도 같은 취지였다. ‘나이 16세를 최저로 최고 40여세의 장년까지 백여명이 이른 아침을 불구하고 신선한 대지의 공기를 마음껏 흡수하면서 참회(참석)한 중 더욱 경하할 일은 꽃 같은 여성 두 사람이 본 강습회에 참회한 것이다. 이것은 아마 보건운동사상의 신기원을 지을 장쾌한 일일 줄 생각한다.’(‘권투대회에 관중 쇄도 보건체조 대개강’)

◇'억센 조선’을 위한 시민대운동회
1932년 5월 8일 전국각지에서 시민운동회가 열렸다. 평양 각조합연합회 주최로 여자선수 80명 포함, 300명이 넘는 선수가 참가한 평양 시민대운동회, 경성상공협회가 장충단에서 연 상공연합회대운동회를 비롯, 목포, 포항, 부산에서도 운동회가 열렸다. ‘운동장을 메울 조선의 건아는 일어서라 나아가라 모이라! 튼튼한 다리 억센 팔구리로 만든 가슴과 어깨,그리고 굵은 목!(이와 같은 건강은 일하는 사람을 제(除)하고 어느 사람에게 있는 건강일 것이냐?) 이같은 건강한 육체를 신록의 숲 사이에 나타내어라. 5월의 태양 아래서 뛰라! 기림리 그라운드로, 장충단으로, 대성동광장으로, 남빈정염전으로, 박간별장으로 평양, 경성, 목포, 포항, 부산의 시민은 달리어라! ‘억센 조선의 건설’의 표어를 선두에 고양하라!’(‘시민대운동’, 조선일보 1932년5월8일)
느낌표를 남발하며 다소 흥분한 어조의 이 사설 부제(副題)도 ‘억센 조선의 건설’이었다.
◇한강 수영장, 일광욕에 여성 참가 권유
‘조선 가정에서는 여름이 되면 흔히 남자들만 강변이나 해변으로 피서를 하지만 부인들은 대개 골방에서 종일 땀을 흘리며 지나야 합니다. 한 가정에서 남자들만 튼튼하고 부인들이 건강치 못하면 불행의 원인이 됩니다. 부인들도 될 수있는대로 한강을 이용하십시오. 한강가에 설비해놓은 본사의 일광욕 수영장에는 부인들의 탈의장과 휴게장을 따로 꾸며놓았으며 특별히 부인들에게는 일일히 ‘뿌이’를 빌려드림으로 조금치도 위험하지 않습니다.’
한강 수영장, 일광욕장을 이용해 무더위가 기승부리는 여름철, 건강을 유지하자는 내용이었다. ‘억센 조선을 세우자, 부인도 한강에 오시라’(1933년7월29일)는 특이한 제목이었다.운동에 소극적인 부녀자들을 적극적으로 초대해 일광욕과 수영을 배우도록 권장했다.부녀자와 어린 아이들까지 공략한 ‘억센 조선’ 캠페인이었다.
◇'억센 조선 만들기’ 프로젝트의 성공
1930년대 마라톤은 조선의 인기 스포츠였다. ‘마라손에 대한 정열은 비상한 듯하야 작금 동경 신의주간 조선일주, 조선횡단, 국경일주, 황해도 일주 마라톤 등등 이것만으로도 5,6가지에 달한다’고 할 정도로 ‘마라손 황금시대’(‘마라손狂시대’, 조선일보 1933년9월3일)였다. 1932년 제10회 로스앤젤레스 올림픽에 김은배, 권태하가 일본 올림픽 대표선수로 당당히 선발됐고 올림픽 본선에서도 각각 6위와 9위를 하면서 기세를 올렸다. 손기정 선수의 베를린 올림픽 우승과 남승룡 선수의 3위 입상은 ‘억센 조선 만들기’ 프로젝트의 하이라이트였다. 조선인이 열등하다는 편견을 뒤집고 당당히 세계를 제패한 것이다.
주말마다 한강에 나가면, 자전거를 타거나 달리기에 여념없는 남녀들을 만날 때마다 100년 전 선각자들의 ‘억센 조선 만들기’ 프로젝트가 떠오른다. 추석 연휴 항저우(杭州) 아시안게임 발(發) 승전보를 접하면서 더 그런 생각에 사로잡힌다. 스포츠는 그냥 스포츠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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