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식' 외교의 초라한 성과…북한도 압수수색이 되나요?
[박세열 기자(ilys123@pressian.com)]
북한 김정은과 러시아의 푸틴의 만남을 보면서, 윤석열 대통령과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내건 '가치 외교'의 계산서를 생각한다. 미국은 김정은과 푸틴의 만남을 "악마의 거래"(민주당 크리스 쿤스 상원의원), "왕따의 구걸(매슈 밀러 미 국무부 대변인)" 등의 표현으로 맹비난했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이런 비난을 먹고 사는 게 김정은이다. 비난이 거세질수록 김정은은 푸틴과 한 '악마의 거래'는 더 돋보이고 변방의 김정은은 세계 무대에서 계속 호명된다. 북한이 가진 달콤한 '지정학적 이점'을 시진핑과 푸틴에게 전시하고 어필할 수 있다.
윤석열 대통령이 입버릇처럼 말하는 건 "힘에 의한 평화"다. 김정은은 이런 발언도 먹고 산다. 한국이 '힘'을 강조할 때마다 북한 역시 '힘'을 강조하고 핵무장을 강화하며 미사일을 쏴댄다.
세상은 어쩌면 윤석열 대통령이 바라는대로 돌아가지 않고 있을 수 있다. 김정은이 바라는대로 돌아가는 것일 수 있다.
이제 계산서를 받아 보자.
윤석열의 '가치 외교'로 북한은 핵 포기에 다가서고 있는가?
대선을 14개월 앞둔 미국은 이제 본격적인 권력 교체기에 돌입할 채비를 갖추고 있다. '바이든 시즌 1'이 종료되는 시점에서, 근본적인 질문을 던질 차례다. 윤석열 정부가 해 온 '가치 외교'는 성과를 냈는가? 북한은 핵 포기에 다가서고 있는가?
북한과 러시아가 '악마의 거래'를 할 때 우리가 취할 수 있는, 혹은 취한 액션은, 안타깝게도 없다. 대통령의 대국민 설명도 없었다. 윤 대통령은 국내 언론도 아니고 외신(AP통신)과 서면으로 진행한 인터뷰에서 "북한과 러시아의 군사 협력은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결의안과 다른 국제 제재를 위반하는 불법적이고 부당한 행위"라고 규정했을 뿐이다. '윤리적 우위'를 강조했을 뿐 '불법적이고 부당한 행위'를 차단할 뾰족한 방법은 현재로서 없는 것 같다. 모두가 이런 현실을 잘 알고 있다. 이를테면, 우린 북한에 대한 제재는 가능하나, 러시아나 중국에 대한 제재는 사실상 불가능하다.
윤 대통령은 인터뷰에서 "국제사회의 강력한 대북 제재는 북한 핵, 미사일 능력의 고도화를 막는 효과를 발휘할 것"이라고 했지만, 지금껏 이어진 수많은 대북 제재 조치에도 불구하고 북한은 군사 능력을 고도화하고 있다. 최근엔 원자력을 추진 동력으로 하는 '핵추진잠수함' 개발 의지를 노골화했다. 윤 대통령은 또 "나토 회원국과 파트너 국가들과 함께 북한의 핵, 미사일 위협 대처 방안을 논의하고, 북한의 불법 행위에 대한 국제사회의 단호하고 단합된 공조를 강조하고자 한다"고 했지만, 구체적인 청사진은 없다. 검찰을 앞세워 북한을 압수수색할 수도 없는 일이다. 국제 사회와 '우려'를 공유하는 건 이미 충분히 되고 있는 일들이다.
이 교착상태를 즐기는 건 김정은이다. 북한이 탄약 소모품과 재래식 무기를 러시아에 지원하고, 러시아가 북한에 핵추진잠수함과 정찰위성 등 군사기술을 제공하는 시나리오는 점점 가시화되고 있다. '적'과 '아군'의 선명성이 도드라지자 재빠르게 북한은 양분된 세계의 반대 진영에 온 몸을 던져 올라 탔다. 한미의 '가치외교'가 북한을 중국과 러시아에 밀착하도록 만들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게임은 점점 더 어려워지고 있다. 윤석열 정부는 '출구 없는 제재'의 함정에 빠진 모양새다. 제재 자체가 목적이자 수단이 되어버렸다. 그 틈바구니에서 김정은은 오히려 기회를 잡았다.
반면 미국의 바이든 대통령은 점점 궁지에 몰리고 있다. 내년 11월 5일로 예정된 미국 대선 캠페인이 본격적으로 시작되는 시점을 감안하면 바이든 대통령의 실질적 임기는 이제 1년 남짓 남았다. 미국 내 분위기는 바이든에게 우호적이지 않다. <월스트리트 저널>은 지난 10일 "민주당이 바이든에 대해 패닉에 빠지기 시작했다"는 제목의 사설을 통해 암울한 전망을 내 놓았다. 요컨대 미국 유권자의 73%가 바이든 대통령이 재출마하기에 너무 나이가 많다고 답했다는 여론조사와 바이든 직무 수행 지지율이 42%에 불과하다는 여론조사를 인용하며 민주당이 바이든을 밀어붙이기도, 그에게 후보직을 내려놓으라고 하기도 어려운 딜레마 상태에 빠졌다는 지적이다.
지난 25일, <워싱턴포스트>와 <ABC> 뉴스가 공동으로 여론 조사를 실시했더니, 트럼프가 52% 바이든이 42%를 기록해 트럼프가 오차범위 밖(10%포인트)에서 이기는 것으로 나타났다.
윤석열 정부 외교 정책으로 우리가 얻은 것은 무엇인가?
한미 동맹 70주년을 수식하는 화려한 미사여구들 틈바구니에서 윤석열 정부의 '외교 정책'을 냉정하게 평가해 볼 때가 왔다.
첫째, 우리가 '더 강한 힘'을 원할수록 똑같이 '더 강한 힘'을 원하는 북한에 대항하는 국내 보수 진영의 마지막 보루는 '핵무장'이었지만, 윤석열 대통령과 바이든 대통령이 합의한 지난 4월 '워싱턴 선언'은 한국의 핵무기 보유 가능성을 원천 차단했다. "사실상 핵공유"가 최대의 성과인데, 그마저도 "사실상 핵공유가 아니다"라고 못박은 미국 관료들에 의해 부정당했다.
둘째, 경제적 차원. 윤석열 정부가 바이든 행정부의 외교 정책에 적극 호응하면서 얻은 것이 무엇인지도 분명치 않다. 삼성, SK, LG, 현대자동차 등 한국 대기업들은 바이든 행정부 출범 이후 약 2500억 달러의 투자 계획을 발표했다. 그러나 미국의 인플레이션감소법(IRA)과 반도체법(CHIPS and Science Act)에서 한국에 대한 배려는 여전히 불확실성으로 남아 있다. 미국 내에서도 "미국은 무역 정책을 수립할 때 동맹국의 관점을 고려하지 않았다", "미국에 진심인 한국을 홀대해선 안된다"는 목소리가 나올 정도다. 미국 상무부는 22일 반도체법 '가드레일' 규정을 공개하며 미국에서 반도체 생산 보조금을 받는 기업에 대해 향후 중국에서 확대할 수 있는 반도체 생산능력을 5% 미만으로 묶어두기로 확정했다. 한국 정부가 기준을 완화해달라고 요구했지만, 받아들여진 건 사실상 없다.
셋째, 미국의 외교 정책에 적극 동조한 결과는? 윤석열 정부는 우크라이나 전쟁에 발을 더 깊숙히 담그기로 했지만, 정작 최근 미국을 방문한 우크라이나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대통령은 환대를 받지 못했다. 최근 <월스트리트저널> 여론조사에서 공화당 유권자 62%가 "우크라이나 지원이 과하다"고 답했다. 바이든 대통령도 출구전략을 고민하고 있는 상황에서 우리 정부가 러시아와 관계 파탄을 담보로 '설거지'에 동원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올만 하다.
넷째, 국내 정치의 경우. 외교적 파워는 국내 유권자의 지지 속에서 나온다. 하지만 윤석열 정부는 '친일 논란'에 휩싸이며 중도층의 '국가 정체성'을 건드려버렸다. 결과는 허약한 지지율 토대 위 위태한 외교 정책이다. 국가를 이루는 건 국민이고, 국민이 가진 '정체성 문제'가 때때로 경제적 이익을 압도하는 경우는 드물지 않다. '한미일 공조'를 위해 윤석열 대통령은 일제강제 징용 피해 보상을 포기하고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를 묵인했지만, 이 리스크를 상쇄할 '반대 급부'는 제대로 챙긴 것이 없다는 평가다. 일본과 군사 훈련이나, 미국의 '확산 억제'는 일본과 미국이 더 좋아할 일이다. 오히려 중국의 양안 문제에 개입하는 듯한 제스처로 관리해야 할 리스크만 계속 확장되고 있다. '친일 논란'을 감수하고 국내 정치를 포기한 대가가 겨우 이 정도였던가?
사실 윤석열 대통령에게 외교 안보 전문성이 있다고 생각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수능 문제 처럼 수사를 통해 '전문가'가 될 기회도 없었다. 모든 외교 기획의 '브레인'이 김태효 국가안보실 1차장이라는 걸 모르는 사람은 없다. 김태효 차장의 '외교 구상'에 윤석열 대통령이 완전히 빨려들어간 모양새다. 하지만 정치적 책임을 지는 건 선출직인 윤 대통령이지, 일개 참모인 김태효 차장이 아니다. 지금 윤 대통령은 국내 정치에서 지지율을 잃고 있다. 대미, 대일 관계에서 '실리'보다 '이념'을 앞세웠고 한미일 공조(동맹이 아닌)라는 가역적인(불가역적이지 않은) '상징 자본'을 획득했을 뿐이다.
윤 대통령은 지금 유형의 실리보다 무형의 성과를 추구하고 있다. 그 사이 북한 군사력은 고도화되고, '북중러 공조'는 실질적 형태로 가시화되고 있다. 대체 윤석열 정부의 외교로 우리가 얻은 것은 대체 무엇인가?
윤석열 대통령은 국내 정치하듯 국제 정치를 한다. 하지만 국내 정치엔 선거라는 공정한 심판 기준이 있고, '지지율'과 '득표'라는 보상이 있을 수 있지만, 국제 정치에선 그런 게 없다. 심판이 없는 무대에선 실리가 가장 중요시된다. 윤 대통령이 핸들링하는 한국 정치의 여야 관계처럼, 출구 없는 교착상태는 남과 북 사이에서도 고착화되고 있다. 하지만 대통령은 출구 없는 터널 속에서 '나만 옳으면 돼'라며 고집을 피운다. 대체 세계 정세라는 걸 제대로 인식하고 있는지 지켜보는 사람은 불안하지만 눈가리개를 한 경주마처럼 '좋빠가(좋아, 빠르게 가)'만 외치고 있다. 어쩌면 한참 가다 뒤를 돌아봤을 땐 아무도 없을 수 있다.
둘로 쪼개진 세계, 명징한 이분법에 몸 담은 자의 역설. 어쩌면 세계는 윤석열 대통령이 바라는 대로가 아니라, 북한이 바라는 바대로 돌아가고 있는 것일 수 있다. '윤석열식 외교'에 대한 성찰이 윤석열 대통령에게 필요할 때다.
[박세열 기자(ilys123@pressian.com)]
Copyright © 프레시안.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尹대통령 "불편했던 한일관계로 힘들었던 것 잘 알아"
- 내년 캘리포니아주 패스트푸드 최저시급 20달러, 미 최고수준인 이유는?
- 이재명의 영수회담 제안, 노림수는?
- 이재명, 윤석열 대통령에게 조건 없는 '민생영수회담' 제안
- 윤 정부의 신원식·유인촌·김행 후보자 지명, 57.1%가 '잘못된 인선'
- 딸기는 물을 건너고 산을 넘을 수 있을까
- 국제질서 혼란기, 윤석열 정부가 능동적으로 해야 할 일은?
- '이재명 체포동의안 논란'에도 민주당 지지율 47.6% , 국민의힘 36.2%
- 의대 신입생 5명 중 1명 강남3구 출신, 그 비율도 매년 증가한다
- [만평] 추석달은 차오르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