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쪽이들 보는 것 같아요"…한국 국회, 어쩌다 이 지경
여야 막말에 정치 양극화 폐단 드러나
민족 대명절인 추석, 국민들은 밥상에 정치를 올리곤 한다. 21대 마지막 정기국회에 들어서면서 "민생을 챙기자"는 국회의원들의 약속은 공염불에 그치고 있다. 고성과 막말이 난무하는 국회에 국민들은 혐오를 넘어 피곤함을 느낄 지경이다.
21대 마지막 정기국회가 문을 연 지난 9월 1일 김진표 국회의장은 개회사를 통해 "세종대왕께서는 '나라의 하늘은 백성이고, 백성에게는 밥이 하늘'이라고 하셨다. 화급한 민생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국회와 정부가 비상한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고 당부했다. 하지만 고작 나흘 뒤 설훈 더불어민주당 의원의 '탄핵' 발언으로 여야는 '막말 대전'의 장을 열었다.
설 의원은 지난 5일 대정부 질문 첫날 한덕수 국무총리에게 고(故) 채모 상병 사건 수사 외압 의혹과 관련해 질의하던 중 "이 사건은 대통령이 법을 위반한 것이고 직권남용 한 게 분명하다"며 "탄핵까지 갈 수 있는 소지가 있다"고 했다. 이에 국민의힘은 "탄핵, 특검, 국정조사 중독"이라며 설 의원을 국회 윤리특별위원회(이하 윤리특위)에 제소했다.
설 의원의 발언 바로 다음 날이었던 지난 6일 대정부 질문에서는 국회의원을 향한 '쓰레기'라는 막말이 국회의 품격을 떨어트렸다. 북한 외교관 출신 태영호 국민의힘 의원이 민주당을 비판하자, 민주당 의원들 사이에서 "북한에서 쓰레기가 왔네"(박영순 의원) 등 원색적인 비난이 나온 것.
이에 분개한 태 의원은 지난 7일 단식 투쟁 중인 이재명 민주당 대표를 찾아가 "북한에서 온 쓰레기라는 말을 할 수 있느냐"고 항의하다 민주당 의원들에게 끌려 나갔다. 이런 일련의 사태는 또 여야의 '제소전'으로 이어졌다. 국민의힘은 태 의원에게 쓰레기라고 칭한 박영순 의원을, 민주당은 이 대표를 찾아간 태 의원을 각각 윤리특위에 제소했다. 단 사흘 만에 국회 윤리특위에 3명의 의원이 제소됐다.
이런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국회의 행태는 국민들의 정치 혐오로 이어지고 있는 분위기다. 내년 총선을 8개월여 앞둔 가운데 시행되고 있는 각종 여론조사에서 30%에 가까운 무당층이 집계되는 게 이미 만연해진 정치 혐오를 방증한다. 한국갤럽 9월 3주 차 조사(자세한 내용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 홈페이지 참조)에서 무당층 비율은 29%였다. 8월 1주 차 조사에서는 32%에 달했다. 한 정치권 관계자는 "본회의장에서 고래고래 소리 지르고 중재가 안 되는 의원들의 모습을 보면 TV에 나오는 '금쪽이'들을 보는 것 같다"고 했다.
'한국 정치의 양극화 심화', '의원들 간의 비방이나 막말'은 유권자들의 '국회 불신'을 강화한다는 지적이다. 국회법 제25조에 따르면 본회의나 위원회에서 다른 사람을 모욕하는 발언을 하면 안 된다. 또 회의 중 함부로 발언하거나 소란한 행위를 해 다른 사람의 발언을 방해해서도 안 된다. '국회의원 윤리강령'에도 품위 있는 발언 규범을 규정하고 있다. 이같은 규정을 어기면 의장은 경고나 제지를 할 수 있고, 그 정도가 심할 경우 국회법 제155조에 따라 징계사유에 해당할 수도 있다.
하지만 의원들은 이런 규정을 아랑곳하지 않는 모양새다. 국회입법조사처가 지난 8월 발간한 보고서 '국회의원의 말; 언어의 품격'에는 그 이유에 대한 분석이 담겼다. 보고서에 따르면 제13대 국회부터 제20대 국회까지 총 235건(철회 포함)의 의원에 대한 징계안이 제출됐다. 이 중 41.2%(101건)는 폭언이나 인격 모독성 발언, 명예훼손, 모욕 등 부적절한 발언을 징계사유로 들고 있다. 하지만 이 중에서 윤리특위의 심사를 거쳐 본회의에서 징계가 결정된 사안은 단 1건(강용석 의원)에 불과하다. 일각에서는 국회에서 직무상 행한 발언에 대해 주어지는 면책특권(헌법 제45조)이 의원의 거친 발언을 보호하는 안전판 역할을 한다는 비판도 제기된다.
의회제도의 '모국'인 영국은 어떨까. 의원의 명예와 권위를 매우 중요시하는 영국은 그에 걸맞은 발언 예절을 중시하는 전통이 강하다. 영국에서 최고 권위를 갖는 의회 선례집에 따르면 의회에서는 '온화하고 절제하는'(good temper and moderation) 언어를 사용해야 한다. 발언이 금지되는 단어가 별도로 정해져 있지 않지만, 선례에 따르면 '멍청이, 거짓말쟁이, 불한당, 겁쟁이, 부랑아, 훌리건, 쥐새끼, 배신자' 등이 '비의회적인 언어'(unparliamentary language)라고 여겨진다.
또 의장에게는 발언 질서 유지를 위해 강력한 권한이 주어진다. 폭력적인 언어를 사용한 의원이 의장의 중재에 따르지 않거나 의장의 권위를 훼손할 경우, '해당 의원을 직무 정지에 처한다'는 동의를 토론 없이 표결에 부칠 수도 있다. 직무 정지 처분을 처음 받는 의원은 회의일 기준 5일간 직무 정지에 처하고, 두 번째 직무 정지일 경우에는 20일간, 세 번째 이상일 경우에는 별도의 의결이 있을 때까지 직무가 정지된다. 실제로 49년간 하원의원으로 재직했던 데니스 스키너 노동당 의원은 비의회적인 언어의 사용으로 10여 차례나 의회에서 퇴장당한 바 있다.
국회입법조사처 관계자는 "다양한 사회 세력이 대표되고 서로 다른 이념과 정책이 경쟁하는 국회에서 상대 당이나 의원에 대한 비판은 불가피하지만, 상호 비판이나 비난의 내용인 발언조차도 절제되고 품격있는 언어를 통해서 표현돼야 할 것"이라며 "의원의 발언이 또 다른 정치 갈등을 조장한다면 국회의 기능 중 하나인 사회통합은 더욱 요원해질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우리 국회도 의원의 막말에 대해서 경고나 퇴장명령 등 국회의장의 질서유지권을 엄격하게 집행하고, 중상모욕적 발언에 대해서는 면책특권의 적용을 제외하는 방안도 검토할 필요가 있다"며 "발언질서의 확립을 위해서 제12대 국회까지 존재했던 '발언취소'를 명령할 수 있는 의장의 권한을 재도입하는 것도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홍민성 한경닷컴 기자 mshong@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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