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24일 단식의 득과 실은?…정치인 단식 잔혹사
"속을 비워두는 것이 바로 병을 고치는 방법이다" - 히포크라테스
정치인들은 의지의 표현 '최후의 보루'로 단식에 돌입하지만, 때로는 예상치 못한 논란에 휘말리기도 한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단식도 '웰빙단식', '출퇴근단식'이라는 수식어를 낳았다. 이 대표 전에도 엄청나게 많은 정치인이 단식에 임했다가 논란으로 도마 위에 오른 적이 있다.
여야 할 것 없이 논란됐던 단식 잔혹사
정청래 민주당(당시 새정치민주연합) 의원과 문재인 전 대통령은 2014년 9월에 '세월호 유가족이 원하는 특별법 제정'을 촉구하며 단식 농성을 벌였다. 정 의원은 '단식 농성 중 몰래 흡연'이라는 기사가 나오면서 논란이 됐다. 금연 구역에서 흡연한 것도 문제로 거론됐지만, 단식 상태에서 흡연하면 어지럼증이나 구토 등이 동반될 수 있기 때문에 실제로는 식사 후 흡연한 것 아니냐는 의문이 제기되기도 했다.
같은 시기 단식한 문 전 대통령의 경우 논란이 된 것은 3년이 지난 2017년 4월이었다. 당시 국민의당 대선 후보였던 안철수 캠프 측에서 민주당 대선후보였던 문 전 대통령을 향해 3년 전 단식이 가짜 단식이었다는 의혹을 제기한 것이었다. 근거는 단식 기간 정치자금 사용 내역에 호텔, 감자탕집, 커피전문점 등이 사용처로 기록됐다는 것이었다.
물론 문 전 대통령의 경우, 단식농성장을 벗어난 적이 없어 보좌관이 업무추진비를 사용했을 것으로 추정되면서 안 캠프 측의 다소 무리한 비방이라는 해프닝에 그치긴 했지만, 당시에는 엄청나게 많은 유권자들이 관심을 가지고 이 사안을 지켜보면서 문재인 캠프 측은 큰 곤욕을 치러야 했다.
과거 김성태 자유한국당 원내대표가 2018년 5월 '드루킹 특검' 수용을 요구하며 단식농성에 돌입했다가 한 남성에게 폭행을 당하는 일이 있었는가 하면, 단식 8일째에 건강 이상으로 구급차로 이동하는 과정에서 윗옷을 걷어 올리는 모습이 포착되면서 "단식한 티를 내려고 상의를 올렸다"는 비판을 받기도 했다.
2019년 1월에는 자유한국당 의원들이 '좌파독재 저지 및 초권력형 비리규탄'을 선언하고 2~3명씩 조를 짜 5시간 30분씩 '릴레이 단식 농성'에 들어가 민주당과 누리꾼들로부터 "딜레이 식사 농성'이라는 조롱과 비판을 받았다.
논란 끝없던 이재명의 단식 24일
하지만 이재명 대표의 단식처럼 처음부터 끝까지 논란이 끝이 없던 경우도 찾아보기 힘들 것이다. 처음에는 '출퇴근 단식'으로 논란이 되다 단식 시작 전날 전남 목포에 있는 횟집에서 식사했다는 보도가 나오면서 또 논란이 불거졌다.
민주당은 이에 대해 횟집 방문은 단식 전이고 어려운 상황에 부닥친 수산업자와 자영업자들을 위한 것이었다고는 했다. 그러나 애초 단식에 들어가며 요구한 것 중 하나가 국제해양재판소에 일본 후쿠시마 원전 오염수 방류 제소 등으로 그간 오염수에 대한 불안에 큰 영향을 미치는 한편 수산물 소비 진작에 대한 언급은 부족했던 그간 행보를 생각하면 비판을 면하긴 어려웠다. 국민의힘도 이러한 점을 공략해 지난 11일 논평을 통해 "자기기인(自欺欺人·자신을 속이고 남도 속인다), 이재명 대표는 자신도 믿지 않는 행동으로 국민을 속였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그러다 이 대표 강성 지지층 2명이 국회 내에서 흉기 난동을 벌이는 일이 발생하면서 국회 경호처에서 비상이 걸리기도 했다.
이 대표는 단식 19일째 혈당이 급속히 떨어지며 정신이 혼미해져 구급차로 국회 인근 여의도 성모병원에서 약 20km 떨어진 중랑구 녹색병원으로 옮겨진 점도 논란이 됐다. 대학 병원을 두고 "단식 치료 경험이 많은 전문의들이 있다"고 민주당 측이 설명했던 녹색병원이 야권과 인연이 깊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다.
논란은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병원에서 단식을 이어간 이 대표가 수액을 꽂고 있는 모습이 공개되면서다. 일부 의사들은 이 대표의 링거줄에 보이는 수액이 하얀색이라는 점을 들어 이것이 '고영양 수액 요법'으로 불리는 'TPN(total parenteral nutrition·인체에 필요한 하루의 영양 성분 전부를 정맥으로 공급하는 완전비경구영양법)'이라고 주장했다. 전여옥 전 새누리당(국민의힘 전신) 의원은 일부 의사들의 발언을 인용해 "입으로만 안 먹었지, 혈관으로 뷔페를 먹었다"고 맹비난했다.
국회 본회의 체포동의안 표결 전날에는 "명백히 불법부당한 이번 체포동의안의 가결은 정치검찰의 공작 수사에 날개를 달아줄 것"이라면서 사실상 부결을 호소하면서 불체포특권 포기를 번복하면서 논란이 일기도 했다. 결국 단식의 목적이 '방탄' 아니었냐는 것이다.
국회 본회의에서 가결된 그의 체포동의안으로 민주당 현재 친이재명(친명)계와 비이재명(비명)계로 나뉜 민주당은 수박 색출로 갈등이 격화되고 있다. 한 달째 지속된 논란에 민주당 지지율도 요지부동이다.
이 대표는 부결을 호소했지만 결국 체포동의안은 가결됐고, 법원 구속영장 심사에서 그의 구속영장이 기각되면서 이 대표도 민주당도 한숨은 돌린 것으로 보인다. 그렇지만 일각에서는 "이럴 거면 애당초 단식도 체포안 부결 호소도 왜 한 것이냐"는 지적도 나온다.
단식하면서 내걸었던 요구들도 얻지 못하고, 중간에 이런저런 논란들로 명분까지 다소 잃었다는 평가까지 받았지만 얻은 것도 있다. 이어지는 내홍에도 민주당은 이전보다 이 대표를 중심으로 결집하게 되면서 친명계인 홍익표 원내대표를 얻게 됐다. 셰익스피어 작품 중엔 '끝이 좋으면 다 좋다'(All's Well That Ends Well)라는 희곡이 있다. 이 대표의 단식은 우여곡절이 많았지만, 그 끝은 그렇게 나쁘지만도 않은 모양새다.
건강도 자신감도 다소 회복한 듯한 이 대표는 다시 윤석열 정부를 향해 목소리를 높였다. 그는 28일 "하나 된 힘으로 무능한 정권에 맞서고 국민의 삶을 구하겠다"는 추석 인사 문자 메시지를 당원들에게 보냈다.
다만 구속 영장은 기각됐지만 이 대표의 검찰 수사는 현재 진행형이고, 계속되는 내홍 속 민주당은 당장에는 서울 강서구청장 보궐선거, 내년에는 총선이라는 큰 과제를 눈앞에 두고 있다. 이제 다시 시작을 맞이한 새로운 민주당 지도부는 어떤 끝으로 향할지 이목이 쏠린다.
신현보 한경닷컴 기자 greaterfool@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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