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국·이재명 보고 투자하는거 아니라구욧!"[강은성의 뉴스1픽]

강은성 기자 2023. 9. 29. 15: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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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테마주 투자자, '더 큰 바보' 노리다 '호구 인증' 할 수도
'신의 타이밍' 맞출 수 있다고 생각하면 이미 '폭망'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27일 새벽 구속영장이 기각된 후 경기도 의왕시 서울구치소를 나서며 당 지도부와 인사를 나누고 있다. 2023.9.27/뉴스1 ⓒ News1 김진환 기자

(서울=뉴스1) 강은성 기자 = 국내 증시에는 또다시 정치 테마주가 고개를 들고 있습니다. 매번 선거철마다 죽지도 않고 부활하는 그 특성이 마치 '좀비' 같다고들 합니다.

올 상반기 국내 증시를 주도했던 2차전지(이차전지), 초전도체, 로봇·AI 등은 같은 '테마주'라 하더라도 산업의 혁신적 변화와 실적 기대감, 획기적인 발명 등 테마 상승의 '근거'라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정치 테마주는 해당 기업의 실적이나 성장성, 밸류에이션(실적대비 주가수준)이나 재무구조 등과는 전혀 관계없이 특정 정치인과 모종의 '관련성'만으로 주가가 급등하는 것이 특징입니다.

조국 전 장관도,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도, 한동훈 법무부 장관도 "정치 테마주는 본인과 어떤 관계도 없으니 투자에 유의해달라"고 수차례 강조했지만 시장은 이들의 말조차 외면합니다.

정치 테마주에 투자한 투자자를 만날 기회가 있어 직접 물어봤습니다. 정치인과 아무 관련이 없는 종목인데 왜 투자하냐고요. 혹시 그런 관련성이 없다는 것을 모르고 투자했을까, 기사 전달이 부족했나 싶어서였습니다.

대답은 의외였습니다.

"관련 없는거 잘 압니다. 누가 정치 테마주를 정말 조국, 이재명, 한동훈 덕 보려고 사나요? 우리는 공부하는 투자자예요. 그런 무식한 투자자는 없다고 보는 게 맞을 겁니다."

그럼 왜 사는 걸까요?

그의 답변은 이랬습니다. "어차피 선거철이면 정치 테마주는 나오기 마련입니다. '누구누구 정치인 관련주'로 묶이기만 하면 상한가를 치고 주가가 급등하는게 아주 패턴화돼 있어요. 주식시장에 대해 조금만 공부하면 이런 패턴이 읽힙니다. 오히려 공부하는 투자자니까, 테마주가 떴다 싶을때 발빠르게 들어가서 수익을 챙기는 겁니다. 그거 장기투자하려고 사는 사람 있습니까? 어차피 단타 차익 노리는 거예요."

이 투자자의 대답은 언뜻 현명해 보입니다. 그러나 이런 테마주 투자자들이 한가지 간과하는 것이 있습니다. 본인은 무릎에 사서 어깨, 아니 허리쯤에 파는 '현명한' 투자자이자 욕심부리지 않는 투자자라고 생각하겠지만 자신이 생각한 허리나 어깨 수준의 주가가 '꼭지'일 가능성이 아주 크다는 점입니다.

한 증시전문가는 이렇게 말합니다. "그 주가가 얼마나 더 오를지 혹은 추락할지 그 타이밍은 '신도 모른다'는 증권가 격언이 있어요. 30년 경력의 애널리스트도, 천재적인 트레이더도 그 등락 곡선에 올라탈 수 있는 것은 '신의 영역'이라고 말하죠. 그런데 대다수 테마주 투자자들은 자신들이 '합리적이고 욕심없고 스마트한' 투자를 하고 있다고 믿어요. 테마주 고점에 물리지 않을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갖는 거죠."

경제학의 대부이자 '케인스 이론'으로도 유명한 영국 경제학자 존 메이너드 케인스는 이런 현상을 '더 큰 바보 이론'(greater fool theory)이라고 개념화했습니다. 가격 상승에 대한 기대감이 너무 큰 나머지 특정 자산을 실제 가치보다 어이없이 높은 가격에 구매한 '바보'가 있는데, 그 바보는 '더 큰 바보'가 나타나서 자신의 자산을 더 비싼 값에 구매할 것이라고 믿는 현상을 일컫는 이론입니다.

앞서 '스마트한 투자자'를 자처한 분은, 100년전 케인스가 그를 '바보'라고 칭한 사실을 알고 있을까요?

17세기 네덜란드의 '튤립 버블'이 케인스의 '더 큰 바보 이론' 토대가 됐습니다.

네덜란드 귀족들이 실내 장식 등에 주로 사용하는 튤립을 '돈'이 좀 있는 상인 등 신흥부자들도 사고 싶어 했습니다. 신흥부자 뿐만 아니라 일반시민까지도 튤립 구매 열풍이 불었습니다. 튤립이 현재의 '에·루·샤'처럼 명품 대접을 받았던 겁니다.

그런데 어떤 무리는 튤립 가격 상승을 '투기'의 기회로 봤습니다. 가격이 더 오를 것으로 믿고 시세 차익을 얻기 위해 비싼 튤립을 계속 사들였던 것이죠. 이런 현상이 확대되면서 네덜란드의 튤립값은 한달 새 50배나 껑충 뛰었습니다.

2023년 9월 기준 튤립 가격을 인터넷포털로 검색해보니 한 구근에 2500원, 꽃다발은 3만원 안팎이네요. 지금으로 치면 2500원짜리 튤립 한송이가 12만5000원이 된 셈입니다.

"그 돈을 주고 튤립 한송이를 사다니, 그런 바보가 어디있나" 이런 한숨이 나올 상황이지만 튤립 거품은 꺼질 줄 몰랐습니다. 나보다 더 비싼 값에 튤립을 사는 '더 큰 바보'(greater fool)가 나타날 것이라는 헛된 믿음이 팽배했기 때문이죠.

기형적으로 가격이 급등하며 쏠림현상이 발생하자 당시 네덜란드 법원은 튤립의 재산적 가치를 인정할 수 없다는 판결을 내립니다. 이 판결이 나온 이후 튤립 가격은 최고치 대비 수천 분의 1 수준으로 폭락했습니다.

'더 큰 바보'를 기다리며 투기 대열에 동참한 사람들은 요즘 말로 '고점에 물린' 셈이 됐는데, 튤립은 '장기보유'조차 할 수 없는 한철 시든 꽃이었기에 모든 재산을 허공에 날릴 수밖에 없었습니다.

테마주 투자자는 2500원짜리 튤립 한송이를 12만5000원에 사는 '모험'을 지금 자신이 감행하고 있다는 사실을 조금이라도 인지하는 것이 좋을 듯 합니다. 단타 차익을 노린다고는 하지만, 내가 '바보'가 아닌 '더 큰 바보'일 가능성이 상당하다는 사실을요.

ⓒ News1 김지영 디자이너

esther@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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