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식과 검찰로 보낸 이재명의 시간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가 윤석열 정부를 향해 민생파괴·민주주의 훼손에 대한 대국민사과, 일본 오염수 방류 반대, 전면적 국정쇄신과 개각을 요구하며 지난 달 31일부터 이 달 23일까지 24일간 단식을 시작한 이후 정국은 끊임없이 요동쳤다. 이 대표는 단식 기간 중 국회 단식투쟁 천막 안에서 오전 10시부터 밤 10시까지 지낸 후 국회 당대표실의 간이침대에서 잠을 청했다. 중간 중간 윤석열 정권 폭정 저지·민주주의 회복 촛불 문화제에 참석하곤 했지만, 단식 8일 차에는 2층 계단에서 1층 촛불 문화제에 걸어갈 힘조차 없어 자동차를 이용하기도 했다. 건강이 더 안 좋아진 지난 13일부터는 당대표 회의실을 단식 투쟁장으로 삼아 여론의 주목을 받았다. 당 내에서는 민주당 김은경 혁신위원회가 내놓은 파장이 수면 밑으로 가라앉았으며, 비명계를 비롯한 당내 지도부, 원로들까지 그의 건강을 염려하기에 이르렀다.
이 대표의 단식 기간 동안 문재인 전 대통령, 노무현 대통령의 아내인 권양숙 여사, 김은경 전 혁신위원장이 공개한 3선 이상 의원들의 공천 패널티 등 혁신위 안의 쟁점에 섰던 박지원 전 국가정보원장을 비롯해, 이낙연 전 대표, 종교계, 시민사회원로, 민주당 원로, 당내 최다 모임인 ‘더좋은 미래’, 비명계 조응천 의원까지 나서 그의 단식을 만류했었다.
국민의힘 김기현 대표는 지난 16일 SNS를 통해 “이유 여하를 막론하고 이 대표의 단식 중단을 다시 한 번 정중히 요청한다. 이 대표가 건강이 악화 돼 회복에 큰 어려움이 없도록 단식을 중단해 주길 바란다”며 “이전에도 그랬고 지금도 언제 어디서든 이재명 대표와 만나 허심탄회한 대화를 나눌 준비가 돼 있다”고 전했다.
하지만 제대로 된 여야의 대화는 이뤄지지 못했으며 이 대표는 단식 중인 9일과 12일 수원중앙지검에 쌍방울 대북송금 관련 ‘제3자 뇌물제’로 피의자 신분으로 조사를 받고 국회에 체포동의안이 표결에 부쳐졌다. 이 대표의 단식으로 비명계를 아우르는 듯 했던 정국은 현실과 달랐다. 국회는 21일 본회의에서 이 대표의 체포동의안을 표결해 찬성 149표, 반대 136표, 기권 6표, 무효 4표로 가결했다. 국민의힘 111명과 정의당 6명, 시대전환 1명, 한국의희망 1명, 여권 성향 무소속 의원 2명 등 가결표가 예상되는 120명을 제외하고도 민주당에서 최소 29명의 이탈표가 나온 것이다.
헌정 사상 첫 제1야당 대표가 법원에 출석한 26일 오전 10시7분부터 ‘백현동 개발 특혜’, ‘대북송금’ 등의 의혹으로 서울중앙지법에서 영장실질심사를 받은 이 대표는 9시간 17분 만인 이날 오후 7시 24분에 서울구치소로 향했다. 2017년 3월 박근혜 전 대통령의 이른바 국정농단 사건 영장실질심사는 8시간 40분이 걸렸다.
유창훈 서울중앙지법 영장전담 부장판사는 27일 이 대표에 대한 검찰의 구속영장 청구를 기각했다. “피의자의 방어권 보장 필요성 정도와 증거인멸 염려의 정도 등을 종합하면, 피의자에 대해 불구속 수사의 원칙을 배제할 정도로 구속의 사유와 필요성이 있다고 보기는 어렵다”는 이유에서다.
이에 27일 국민의힘은 비상 의원총회를 통해 “권력의 여부로 구속 여부를 결정했다”며 반발했다. 특히 김기현 대표는 “법치의 비상사태”라며 “이런 식으로 판단하면 조폭 두목이나 마피아 보스는 영구히 처벌받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더불어민주당은 법원의 판결에 환영하며 윤석열 대통령과 한동훈 법무부 장관을 지목해 공세를 퍼부었다. 민주당은 앞서 한덕수 국무총리 해임건의안을 국회에서 가결시키기도 했다. 또한 이 대표는 29일 윤석열 대통령에게 페이스북을 통해 민생 영수회담을 제안한다고 했다. 이 대표를 중심으로 여야가 첨예한 대립각을 더욱 세우게 된 셈이다.
이 대표의 단식은 정국을 해결하는 방안은 아니었다. 비명계와의 갈등봉합, 여권과의 대화, 검찰의 압박은 계속 진행형이다. 이 대표는 공직선거법 위반과 대장동·위례신도시 배임 등 다른 혐의로도 재판 중이라 사법리스크를 완전히 해소한 것은 아니다.
단식 9일 차 였던 지난 8일 한국갤럽은(이번 조사의 표본오차는 95% 신뢰수준에 ±3.1%포인트. 무선전화 가상번호 인터뷰 100% 방식으로 진행됐고 응답률은 14.6%. 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 참조) “민주당 지지도가 34%로 8월 5주(8월 29∼31일) 조사보다 7%포인트 올랐다”고 발표했다. 국민의힘 지지율은 34%로 3주째 같은 수치를 유지 중이다. 이 대표의 단식과 사법리스크가 내년 총선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아직까지는 섣불리 예측할 수 없다는 것이 정치 관계자들의 중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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