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대 아재’ 김관우의 유쾌한 금메달 후기 “전국의 고수님께 이 영광을”[니하오 항저우]

황민국 기자 2023. 9. 29. 1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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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락실 간다고 싫어하시던 부모님, 제일 좋아하실 것
내 게임인생 최대위기는 한 판에 50원서 100원으로 올랐을 때
나고야 대회서 50대 기적도 쏴 봐야죠”
김관우가 28일 중국 항저우 e스포츠센터에서 열린 2022 항저우 아시안게임(AG) 스트리트 파이터 V 결승전에서 대만의 샹여우린을 세트 점수 4-3으로 물리치고 금메달을 획득한 뒤 공동취재구역(믹스트존)에서 취재진을 향해 포즈를 취하고 있다. 연합뉴스



국제대회에서 선수와 기자가 만나는 믹스드존(공동취재구역)은 각박한 공간이다.

이겼던 졌던 경기를 끝낸 선수는 흥분을 넘어 피로가 쏟아지기에 빨리 지나가고 싶고, 취재진은 그 사이에서 몇 마디를 얻어 팬들의 궁금증을 달래야 한다. 오랜 취재로 친분이 있는 사이가 아니라면 짧고 굵은 만남으로 끝날 수밖에 없다.

항저우 아시안게임이라고 크게 다를 리 없지만 28일 e스포츠의 한 종목은 팬 사인회를 방불케하는 장면이 연출됐다. 금메달을 목에 건 선수는 길고 긴 인터뷰를 받아들였을 뿐만 아니라 취재진의 부탁대로 다양한 포즈로 사진 촬영까지 마쳤다. 스트리트 파이터 V에서 우승한 김관우(44)였다.

김관우의 우승 현장이 남달랐던 것은 본인도, 취재진도 같은 추억을 공유해 가능했다. 이 게임이 처음 출시됐던 30여년 전 오락실을 드나들던 이들에게 경기장은 오래 전 오락실을 커다랗게 키워놓은 것이자 마찬가지. 때로는 숨죽이며, 때로는 소리를 지르며 경기를 함께 즐기다 금메달까지 나왔으니 하고 싶은 이야기도 듣고 싶은 이야기도 많았다.

김관우가 지난 28일 중국 항저우 e스포츠센터에서 열린 2022 항저우 아시안게임(AG) 스트리트 파이터 V 결승전에서 대만의 샹여우린을 4-3으로 물리치고 금메달을 획득한 뒤 공동취재구역(믹스트존)에서 취재진을 향해 포즈를 취하고 있다. 연합뉴스



김관우에게 던진 첫 질문은 역시 ‘오락실에서 동전 100원으로 즐길 때 금메달을 상상했느냐’는 것이었는데 대답이 더 걸작이었다. “아 100원부터 게임을 하셨어요? 전 50원이었는데...사실 제 게임 인생의 가장 큰 위기가 한 판에 50원에서 100원으로 올랐을 때 거든요. 결국, 버스비까지 다 털어서 걸어다녔지만요.”

학창시절 오락실을 드나드는 것은 달콤한 일탈이었다. 그는 “어렸을 땐 금기였죠. 40대 분들만 이해하실 것 같은데 학교에서 오락실을 간 것을 들키면 혼났어요. 사실 부모님도 싫어하셨죠”라며 “부모님은 사실 어느 순간부터는 포기하시고 그냥 놔두시다라구요. 1등하면 기뻐하시고, 2등하면 왜 1등읗 못했냐고 안타까워하시는 수준? 돌아가서 금메달 보여드리면 정말 좋아하실 것 같아요”라고 웃었다.

김관우를 따라다닌 수식어는 격투게임 인생 36년이었다. 그가 1979년생 양띠이니 초등학생 1~2학년부터 오락실을 다녔다는 이야기가 된다. 기자들 사이에선 과연 그가 스트리트 파이터1(1987년 출시)을 해봤을까, 아니면 대부분의 사람처럼 큰 인기를 끈 2(1991년 출시)가 시작일지 궁금증을 자아냈다.

그 시절을 선도한 선수답게 당연히 전자였다. “아니 스트리트 파이터1을 안 해보셨어요?(웃음) 그 게임은 류와 켄 둘 밖에 고를 수 없었고, 기술도 참 쓰기 어려웠던 것으로 기억해요. 진짜 재밌는 게임이었던 2는 출시됐을 때부터 했고요. 이 대회는 5로 진행됐는데, 게임은 6까지 출시됐으니 참 오래 됐네요.”

28일 중국 항저우 e스포츠센터에서 열린 2022아시안게임 스트리트 파이터 V 결승전에서 대만의 샹여우린을 세트 점수 4-3으로 물리치고 우승을 차지한 김관우가 강성훈 감독과 기자들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연합뉴스



김관우의 표현처럼 오래 된 이 게임은 그야말로 고인물만 남았다는 게 아쉬운 대목이다. 국내에선 격투게임 자체가 큰 인기를 끌지 못하다보니 주변에서 하는 이들도 드물다. 김관우가 이 대회를 준비할 때 다른 국가보다 힘들 것이라는 예상이 나온 이유이기도 했다.

그런데 김관우와 인터뷰에 앞서 취재진과 만난 강성훈 감독의 이야기는 달랐다. 드래곤볼의 원기옥으로 이번 금메달 도전을 설명한 강 감독은 “국내에서 이 게임을 한다는 모든 이들이 달려와서 도왔습니다. 사실 이 게임을 하는 30~40대들이 가까우면 훈련장으로, 멀면 온라인이라도 도왔기에 너무 고마웠습니다”고 귀띔했다.

김관우도 “9월에는 정말 e스포츠협회와 훈련을 도와줬던 분들 그리고 감독님 외에는 만나지 못할 정도로 집중했죠. 절 돕겠다는 한 마음으로 옛 실력을 꺼내준 분들이 너무 고맙다”고 말했다.

김관우의 금메달이 취재진의 흥분을 자아낸 것은 40대라는 상징성도 영향을 미쳤다. e스포츠도 다른 종목은 20대 초반이 전성기라 하지 않는가. 그런데 김관우도 결승전의 상대였던 대만의 샹여우린도 44살 동갑내기였다. 나이 이야기에 김관우도 흥분했다.

“(게임할 때) 반응이 잘 안 되고 머릿 속에서 하라고 하는데 손이 잘 안 움직이고 그래요. 이제 힘든 나이라는 거죠. 그래도 우리(40대) 더 많이 연습하면 우리도 옛날의 실력을 되찾을 수 있다. 그러면 저처럼 금메달을 딸 수 있다. 꼭 그렇게 말해주고 싶어요.”

나이를 극복하라는 메시지를 던진 김관우는 앞으로도 계속 내달리겠다는 각오다. 다음 아시안게임은 2026년 일본 나고야에서 열린다. 누군가가 던진 “50대의 기적도 써 달라”(2030년 아시안게임도 출전하라)는 말에 웃음꽃이 피었다.

강 감독은 “40대에서 실력이 더 늘어난 선수니 포기만 없다면 계속 갈 것”이라 두둔했다.

김관우는 “여러 분이 응원해주신다면 계속 해보겠다. 게임 재밌어서 하는 거잖아요? 아직 재밌으니 계속 싸워볼게요”라는 마지막 인사와 함께 다시 만날 그 날을 기약했다.

항저우 | 황민국 기자 stylelomo@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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