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인뿐, 북적이는 명절은 옛말" 쇠락하는 전남 버스터미널 [르포]
이용객 감소로 경영난, 입점 상가 공실
전남 터미널 코로나19 이후 6곳 줄폐업
"폐업 가속화…준공영제·세금 감면 검토"
[무안=뉴시스]김혜인 기자 = "명절 분위기 안 난지는 한참 됐소. 터미널엔 다 병원 다니는 노인들 뿐이제."
추석을 앞둔 지난 25일 오후 전남 보성군 벌교공용버스터미널.
명절을 맞아 서울·부산 대도시에서 선물 꾸러미를 들고 고향을 찾는 귀향 행렬은 찾아볼 수 없었다.
대합실 의자엔 지팡이를 든 칠동리 어르신들만 30분 째 마을 버스를 기다리고 있었다.
터미널은 지역 별로 나뉜 군내·군외버스 창구가 13개에 달할 만큼 큰 규모였지만 실제 이용 중인 곳은 절반에 불과했다.
터미널 내 상점도 줄줄이 문을 닫았다.
빛바랜 간판이 걸린 다방·슈퍼·분식집은 자물쇠가 잠겼거나 셔터가 내려져 있었다. 미술인협회와 인력 사무소 두 곳 만 상점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2층 예식장으로 향하는 계단엔 거미줄이 쳐지고 천장은 페인트 칠이 벗겨져 있었다. 불 꺼진 복도와 문에 적힌 '예식장' 옛 글씨체는 을씨년스러운 분위기를 더했다. 피로연장엔 하객을 맞지 못한 식탁 수십 여 개가 놓여있었다.
40년 차 버스 운전기사 박영웅(62)씨는 "명절에 인적 끊긴 지 오래"라고 했다.
박씨는 "예전엔 객지 자식들로 버스가 꽉 차 다음 차를 타는 승객도 있었는데, 지금은 텅 비었잖소"라며 한산한 대합실을 가리켰다. 또 "하루 보성과 고흥 360㎞를 오가는 동안 30명 정도만 태운다. 다들 자가용을 타니 버스를 이용하는 사람은 시골 노인 뿐"이라고 했다.
박씨는 대합실 앞에 쪼그려 앉은 어르신을 보고 "어머니, 갑시다" 라며 노인의 짐 보따리를 대신 들었다. 그는 16인승 버스에 승객 1명을 태우고 고흥으로 떠났다.
서울서 성묘를 위해 매년 벌교읍을 찾는 김모(60)씨도 "서울에서 고향 가는 버스 마저 끊기는 게 아닌 가 싶다"며 쓴 웃음을 지었다.
10여년전만 해도 교통 허브이자 만남의 광장이던 벌교터미널은 이용객 감소로 쇠락의 길에 들어섰다. 터미널은 2009년 당시 하루 이용객이 700여 명을 웃돌았지만 현재는 100여 명만 오가고 있다.
터미널은 코로나19를 기점으로 경영 악화로 지난 6월 30일 폐업했다. 보성군은 이용객 불편을 최소화하기 위해 터미널을 임차 운영하고 있다.
같은 날 보성군 곡성군 석곡터미널도 썰렁하긴 마찬가지.
표 판매소는 묵은 먼지와 상자가 쌓인 창고가 됐다. 창구 앞엔 군에서 설치한 무인 발권기 두 대만 자리했다.
이날은 근처 시장에서 명절을 앞두고 오일장이 열렸지만 대기 승객은 1명 뿐이었다.
벽면엔 검정 테이프가 붙은 '임시버스 배차시간표'가 눈에 띄었다. 코로나19 이후 감차된 시간표를 가린 것이었다. 줄어든 버스는 거리두기가 해제됐음에도 다시 원래대로 돌아오지 못했다.
석곡~광주행 버스는 오후 1시 30분 이후 오후 6시 10분. 4시간 이상 배차 간격이 벌어졌다.
버스 시간표를 살피던 이기연(65)씨는 "몇 년 전까지만 해도 광주행 버스가 매 시간 마다 있었는데 2~3시간 단위로 버스가 줄더니 코로나19 이후 그마저 남은 버스도 없어졌다"고 토로했다.
버스터미널의 위기는 지역인구 감소와 함께 찾아왔다. 코로나19도 터미널의 폐업을 앞당겼다.
방역 조치로 이동량이 줄면서 터미널의 주 수입원인 표 수수료와 상점 임대수익이 감소한 것이다.
전남 지역에서는 지난 2020년부터 올해까지 여객자동차터미널 6곳(광양읍·곡성석곡·고흥녹동·영암읍·영암신북·보성벌교)이 잇따라 폐업했다. 고흥 지역 버스터미널 2곳은 적자 누적 등의 이유로 향후 1~2년 내 문을 닫을 예정이다.
전남 터미널 이용객도 코로나19를 기점으로 5년 새 42.4%나 감소했다. 거리두기 해제 이후에도 터미널 이용 회복은 제자리걸음이다.
전국여객자동차터미널사업자협회가 집계한 전남 터미널 이용객은 2019년 941만2212명, 2020년 568만4650명, 2021년 502만8542명, 2022년 520만6835명, 2023년 541만4880명이다.
터미널 시외·고속 터미널 노선도 축소되면서 이용객의 불편도 불가피하다. 전남 49개 버스 터미널 노선은 2020년 1월 877개에 달했지만 지난 1월 660개로 줄었다.
전국여객자동차터미널사업자협회는 시외버스 터미널 재정 지원을 강조했다.
김정훈 전국여객자동차터미널사업자협회 사무국장은 "지역 터미널 대부분이 코로나19 이후 수입을 회복하지 못한 채 경영난을 겪고 있어 문을 닫는 사업장이 늘어날 것"며 "터미널이 지역을 잇는 거점 역할을 하는 만큼 재산세 감면과 준공영제 도입을 검토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민간 사업자가 폐업한 터미널을 임시 운영하는 전남 시군에서도 폐업 사업장 증가에 따른 예산과 효율적인 운영 방안을 두고 고심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전남도 관계자는 "수요 조사를 통해 오는 2024년부터 일부 노후 터미널에 대해 환경 개선 사업을 진행하겠다"며 "정부에 재산세 감면과 터미널 부지 활용을 통한 수익 창출도 건의할 예정"이라고 29일 밝혔다.
☞공감언론 뉴시스 hyein0342@news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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