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자 5명에 생명 선물한 아들…그후 엄마의 삶은 달라졌다[21그램]②
"수혜자 만난 날이면 꿈에 나와…여느 때보다 즐거운 표정"
[편집자주] 흔히 영혼의 무게를 '21그램'이라고 표현합니다. 쌀 한줌보다 가볍지만 삶의 소중함을 깨닫게 하는 무게입니다. 영혼이 빠져나가면서 누군가의 삶에 생명을 불어넣는 이들이 있습니다. '장기조직기증 희망자'들입니다. 삶의 끝과 시작이 교차되는 순간을, 우리는 '기적'이라 부릅니다. <뉴스1>은 이번 추석 연휴 기간 우리 삶의 기적 같은 순간을 전해드립니다.
(서울=뉴스1) 김예원 이재명 기자 = "안녕하세요. 생명나눔강사 이소현이라고 합니다."
햇살이 따사롭던 지난 8월의 어느 날, 경기도 한 고등학교에서 특별한 수업이 시작됐다. 시끌벅적하던 아이들은 이소현씨가 수업 영상을 틀자 숨을 죽이고 집중했다. 화면에는 앳된 얼굴을 한 소년의 모습이 가득했다. 소년의 이름은 이학준. 2021년 10월, 당시 17살이었던 학준군은 장기조직 기증으로 5명의 환자에게 생명을 선물하고 세상을 떠났다.
생명 존중과 기증 문화를 소개하는 이씨의 '특별한' 수업에는 학준군의 사연이 꼭 등장한다. 학준군은 이씨의 아들이다. 이 사실을 알게 된 학생들은 수업이 끝난 후 이씨 주변으로 모여들어 위로의 말을 건넨다. "선생님 힘내세요" "오늘 너무 잘 들었어요" 화면에서 웃고 있는 아들은 기억 속 모습 그대로라는 게 이씨의 말이다.
"학준이 눈은 저만 따라다녔어요. 그 맑은 눈에 담긴 엄마가 세상의 전부인 아들이었죠."
◇평소와 다름없던 밤
학준군은 4살쯤 열성경련에 걸리고 난 뒤 쭉 뇌전증을 앓았다. 혼자서 걷기도, 밥을 먹기도 쉽지 않았던 아들은 엄마랑 보내는 시간을 가장 좋아했다. 오후 9~10시쯤 되면 강아지를 비롯한 온 가족이 모여 기도하고 하루를 마무리했다.
학준군에게 심정지가 찾아온 날도 평소와 다름없던 밤이었다. 심폐소생술에도 불구하고 쓰러진 학준군의 뇌파는 여러 차례 검사에도 불구하고 수평선에 가까운 직선을 그렸다. 여러 차례 검사가 지속되던 어느 날, 이씨를 따로 불러낸 의사 선생님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장기기증을 고민해 보지 않겠냐고.
"생각보다 담담했어요.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그때 살려야만 하는 학준이 또래가 있었던 건 아닐지 싶어요."
권유를 받은 순간 이씨는 중환자실의 풍경이 머릿속에서 스쳐 지나갔다. 아들에게 생사의 갈림길이 가까워질 때마다 찾았던 병실과 장기 투병자들. 이씨는 그들의 얼굴에 묻어났던 간절함이 아들의 무사를 바랐던 자신의 마음과 다르지 않다고 느꼈다. 2021년 10월의 어느 날. 가족과의 상의를 거친 끝에 이씨가 입을 열었다. "절차를 밟고 싶습니다"
"순간순간이 기적이었죠. 장기 검사부터 이식 과정 모두가요."
아들은 또래에 비해 작고 가벼웠다. 치료를 위해 저열량 식단을 유지한 탓에 몸무게도 39kg에 불과했고 성장도 더뎠다. 병원에서도 이식 가능 여부를 걱정했지만 최종적으로 학준군은 5명의 사람들에게 새로운 삶을 선물했다. 살아생전 늘 자식에게 약물 바늘을 꽂게 했던 일이 마음에 걸렸던 엄마는 아들의 장기가 건강하다는 의료진의 말이 미안하고 고마웠다.
이씨는 아직도 아들과 마지막 인사를 나눴던 순간이 선명하다. 임종 예배를 드리고 본격적인 절차를 진행하기 위해 중환자실에서 외과 수술실로 이동하던 순간, 그때만큼 아들이 늠름하고 자랑스러운 순간은 없었다고 이씨는 입을 열었다.
◇"'생명나눔강사'로 일할 생각 없나요?"
그 자랑스러움은 지난해 4월 강사 활동을 시작하면서 더욱 커졌다. 학준군이 새 생명을 선물한 지 2년이 채 되지 않았던 어느 날. 한국장기조직기증원(KODA)에서 한 통의 전화가 걸려 왔다. 생명나눔강사로 활동해 볼 생각이 없냐는 제안이었다.
아직은 낯선 장기 기증 등 생명 나눔 활동에 대해 경험이 있는 기증자와 사례자가 직접 강사로 참여하면 큰 도움이 될 것이라는 이유에서였다. 이씨는 기꺼이 제안을 수락했다.
이씨는 코로나19 거리두기가 해제된 올해부터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했다. 전국 각지의 중·고등학교를 찾아가 자살 예방 등 생명의 소중함을 설명하고 장기기증 등 활동에 대해 홍보한다.
아들을 떠나보낸 이야기를 누군가에게 털어놓는 건 여전히 쉽진 않다고 이씨는 말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일을 계속하는 건 국내 장기기증 문화 확산에 조금이나마 보탬이 되고 싶어서다.
아들이 걸어간 자리에 계속해서 발자국을 늘려간다면 어느 순간 곧고 단단한 길이 되어 또다른 누군가의 희망이 될 수 있을 거라는 게 이씨의 생각이다. 그에겐 그 길을 누군가에게 알리는 지금 이 순간이 회복이자 위로다.
이외에도 생명의소리합창단 등 장기기증과 관련된 다양한 활동에 참여하다 보면 수혜자를 만날 때도 많다. 학준군의 이야기를 접한 수혜자와 그 가족들은 이씨를 볼 때마다 미안한 표정을 짓는다고 말했다. 그럴 때마다 이씨는 몸 둘 바를 모르겠다고 설명했다. 그저 그들이 남을 위해 건강하고 행복한 삶을 산다면 아들도 만족할 거라는 생각이다.
"수혜자를 보는 행사가 있는 날이면 꼭 그렇게 꿈에 나와요. 평소엔 보고 싶어도 얼굴 코빼기도 안 비추더니."
이씨는 지금도 이따금 그날의 결정을 되돌아본다. 장기기증을 한 그날 학준군이 깨어있었다면 어떤 선택을 하려고 했을까. 이씨가 한 선택에 아들도 만족할까. 허공에 뿌려진 물음에 답은 돌아오지 않는다. 다만 이씨는 아들이 그 어느 때보다 즐거운 표정으로 친구들과 엄마를 바라보고 있었던 어젯밤 꿈을 떠올릴 뿐이다.
kimyewon@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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