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발로 김정은 은신처 부순다”…한국군 공개한 ‘K-벙커버스터’ 위력은 [박수찬의 軍]
“우리 군의 탄도미사일은 내가 무덤까지 갖고 가야 할 비밀이다.”
군 고위직을 역임한 전직 당국자가 한국군 미사일 전력에 대한 기자의 질문에 남긴 답이다. 여러 차례 다시 물었지만, 그의 입은 끝내 열리지 않았다.
이같은 기조는 지난 26일 열린 건군 제75주년 국군의날 기념식과 시가행진에서 일부나마 바뀌는 모습을 보였다.
한국군의 신형 탄도미사일이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북한 핵·미사일 위협에 맞설 능력이 있다는 점을 과시하려는 군과 정부의 의도가 작용했다는 해석이다.
◆北 벙커 파괴 ‘슈퍼 미사일’ 등장
이날 기념식과 시가행진에는 두 종류의 탄도미사일 발사차량(TEL)이 모습을 드러냈다. 군 당국은 공식확인을 거부하고 있지만, 전문가들은 현무-2C와 현무-4인 것으로 보고 있다.
미세한 차이는 있다. 얼핏 보면 두 TEL은 차이가 없지만, 현무-4는 차량 위에 있는 미사일 발사관 뒤쪽 화염편향장치 형태가 현무-2C와 다르고 발사관도 더 길다.
2016년에 처음 공개된 현무-2C는 현무라는 이름을 쓰지만, 기존 현무-2A·B 탄도미사일과는 외형과 성능 등에서 큰 차이가 있다. 지난해 기준 50여발을 보유한 것으로 전해진다.
2017년 6월 충남 안흥 시험장 인근 해상의 바지선에 탑재된 TEL에서 시험발사가 이뤄졌다. 이때 쓰인 TEL은 국군의날 75주년 기념식에 등장한 것과 거의 같다.
다만 지난해 10월 북한 미사일 도발에 대응해 강원 강릉시 모 비행단에서 동해상으로 발사됐던 현무-2C는 비정상적으로 비행해 후방에 있는 기지 내부로 날아가 낙하했다.
현무-2C는 사거리 800㎞ 이상이며, 탄두중량은 0.5t으로 알려졌다. 현무-2A·B보다 비행거리는 늘어났으나 탄두중량은 감소한 모양새다.
이는 한·미 미사일 지침에 따른 결과다. 지침은 지난 2021년 폐기됐지만, 현무-2C가 개발되던 시기에는 2012년 한·미가 합의한 지침이 존재했다.
이같은 상황은 2017년 미사일 탄두중량 제한 폐지 및 2021년 한·미 미사일 지침 폐기로 변화를 맞는다. 기존보다 위력이 세고 사거리도 늘어난 탄도미사일을 얼마든지 만들 수 있게 된 것이다.
6·25 전쟁 당시부터 지하벙커 건설에 힘을 기울여온 북한은 핵·미사일 및 전쟁지휘시설과 해·공군기지 등을 지하화했다. 미사일이나 폭탄으로는 파괴하기가 어렵다.
공군 타우러스(TAURUS) 장거리 공대지미사일은 도입 규모가 300발 미만으로 전면전 초기 대응에도 부족한 수준이다.
육군 전술지대지유도무기(KTSSM)는 휴전선 일대 갱도진지 타격이 우선이다. 북한 내륙 지하시설 공격용 무기의 필요성이 제기되는 대목이다.
현무-4는 이같은 수요에 부응해 개발된 ‘벙커버스터’다. 2017년 미사일 탄두중량 제한이 해제된 직후부터 개발이 본격화됐다. 사거리 800㎞, 탄두중량은 2t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현무-4는 현무-2C를 토대로 국방과학연구소(ADD)가 보유한 탄도미사일 기술을 융합, 발전시킨 형태다.
ADD가 2010년대 추진했던 KTSSM, 현무-2B 개발 등으로 확보한 지하관통탄, 열압력탄 등의 관통 기술과 현무-2C의 유도체계와 고체연료 엔진 및 대형 TEL을 결합해 탄두중량을 늘렸다는 평가다. 이를 통해 현무-4는 높은 파괴력과 명중률을 동시에 확보했다.
KTSSM은 1~3m 두께 콘크리트를 뚫을 수 있다. 현무-4는 KTSSM보다 훨씬 높은 정점고도를 지니고 있으며, 그만큼 낙하 속도도 매우 빠르다.
음속의 수 배가 넘는 속도로 급강하하는 현무-4의 2t짜리 탄두부는 KTSSM보다 매우 높은 운동에너지를 지닌 채 지상에 빠르고 강하게 충돌한다. 북한이 지하 깊숙한 곳에 만든 벙커로 무력화할 정도의 위력이다.
군은 현무-4보다 위력이 강한 고위력 현무 탄도미사일도 개발했다. 지난해 국군의날 기념식 영상에서 잠깐 등장했다. 일각에선 이 미사일이 현무-5라고 추정한다.
엔진이 화염을 뿜으며 상승하는 방식 대신 가스로 미사일을 밀어올린 뒤 일정 고도에서 점화하는 콜드런치 기술이 적용됐다.
탄두중량 8t짜리 미사일을 쏘려면 강한 추력이 필요한데, 이는 고온·고압의 화염과 가스 방출을 수반한다. 온도 및 압력이 높은 화염과 가스에 발사대가 노출되면 손상 등의 위험이 있다. 콜드런치는 이같은 위험을 방지하는 효과가 있다.
군은 고위력 현무 탄도미사일의 실체를 확인해주지 않고 있다. 하지만 북한의 핵실험이나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발사 직후 순항미사일이나 KTSSM을 공개했던 것처럼 7차 핵실험 등이 단행되면, 전격적으로 실체가 드러날 가능성이 있다.
◆존재만으로도 北에 큰 부담
지하시설을 무력화하는 고위력 탄도미사일은 북한에 상당한 부담을 안겨준다.
휴전선 일대 갱도포병에 대한 우려가 나왔던 1990~2000년대에는 갱도 입구를 공습하면 무력화할 수 있다는 관측이 많았다. 하지만 입구를 가로막은 바위만 치우면, 갱도 재가동이 쉽다는 게 문제다.
전쟁 지휘시설이나 핵무기 저장고 등은 산 중턱을 굴착해서 만든다. 핵공격도 견뎌낼 수 있을 정도의 내구성이 필요하므로 깊이가 수백m에 달한다.
이같은 지하시설을 무력화하려면 입구보다는 터널, 환기구를 무너뜨리는 것이 더 효과적이다.
터널이 무너지면 외부 인력 접근이 쉽지 않고, 추가 붕괴 우려로 시설 사용이 어렵다. 환기구가 부서지면 내부 인원이 호흡할 공기가 없어 질식사한다.
지하 수백m 아래에 있는 터널을 부수혀면 강력한 관통력을 갖춘 고위력 미사일, 폭탄이 필수다.
북한으로서는 전략적 이점 중 하나가 사라진다. 지하시설을 통해 한·미 연합군의 공습을 회피해야 전력을 보존하면서 공세를 펼칠 수 있는데, 고위력 탄도미사일이 등장하면 지하시설 활용이 쉽지 않다.
지하시설의 내구성을 강화하는 방안도 있다. 하지만 막대한 예산과 장비, 인력이 소요되는 만큼 적용 대상은 전쟁지도부 등에 한정될 수밖에 없다.
이렇게 되면 한반도 유사시 북한 전쟁지도부는 특정 지하시설에 오랜 기간 머물기 어렵다.
종심이 짧은 한반도에서는 탄도미사일을 발사하면 도달하기까지 걸리는 시간이 매우 짧다. 평양 이남에서 서울로 스커드-B 탄도미사일을 쏘면 5분 안에 서울에 도달한다. 현무 미사일도 이와 비슷한 수준으로 알려졌다.
지하시설을 통째로 매몰시킬 수 있는 고위력 미사일이 수 분 안에 낙하할 위험이 있다면,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수시로 이동하며 전쟁을 지휘할 수밖에 없다.
이 과정에서 한·미 연합군의 전자전 또는 북한 내 사정으로 지휘 공백이 발생한다면, 전쟁에 치명적 영향을 미친다.
북한 핵·미사일 시설과 군수공장 등도 소규모 지하시설에 분산해야 한다. 단일 지하시설에 핵·미사일과 무기 생산장비 등을 대규모로 모았다가 고위력 미사일 공격을 받으면, 전쟁 수행에 큰 문제가 생긴다. 이는 북한 행정체계에 상당한 부담을 준다.
한·미 미사일 지침이 폐기된 직후 한국군은 그동안 축적했던 고위력 미사일 기술을 하나둘씩 꺼내고 있다. 이를 통해 북한에 대한 압박 강도를 높이면서 핵·미사일 위협에 대응하고 있다.
북한이 도발 수위를 높인다면, 한국군도 창고에 쌓아둔 채 공개하지 않았던 비대칭무기를 추가로 공개할 가능성이 높다는 점에서 군의 향후 움직임에 관심이 쏠린다.
박수찬 기자 psc@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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