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누리가 우리 소원을 이뤘죠”…달에 흠뻑 빠진 과학자들
“달은 소원 이뤄주는 존재…더 친숙해졌다”
“지금도 새 사실들 많이 발견돼”
“탐사할수록 달에 대한 궁금증 많아져”
달이 왜 그렇게 멀리 있다고 생각했나 싶어요. 달 탐사를 시작한 이후로 달은 친숙한 이미지가 됐습니다. 흔히 달을 보면서 여러 상상을 하고 소원을 빌잖아요. 나에게 달은 소원을 들어주는 게 아니라 이뤄주고 있는 존재입니다.
김대관 한국항공우주연구원 미래혁신센터장
한국인에게 보름달은 농사의 풍작과 다산을 상징하는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추석에 농작물을 거둬들이고 보름달에 소원을 비는 전통은 우리 사회가 달을 얼마나 소중한 존재로 인식했는지 보여준다. 민족 대명절인 추석을 ‘달의 명절’이라고 부르는 이유기도 하다.
이미 50여년 전에 인류가 달에 발자국을 남겼지만, 여전히 한국에게 달은 멀기만 한 존재였다. 우리 기술로 달을 탐사하는 건 쉽지 않아 보였고, 실제로도 그랬다. 하지만 한국의 첫 달 탐사선인 ‘다누리’가 지난해 무사히 달 궤도에 안착하면서 많은 것이 달라졌다. 이제 한국은 자체 기술로 달의 구석구석을 지켜볼 수 있게 됐다.
달을 사랑해 연구에 빠진 과학자들이 있다. 이들이 있었기에 다누리의 지금이 있을 수 있었다. 이들은 달을 ‘가깝고도 먼 미지의 세계’라고 표현했다. 눈으로 쉽게 볼 수 있지만, 여전히 밝혀지지 않은 것이 많아 오히려 신비하다는 의미다.
보름달이 뜨는 추석을 맞이한 달을 연구하는 과학자들의 마음가짐은 어떨까. 조선비즈는 다누리 개발에 참여하고, 다누리로 달을 탐사하고 있는 과학자들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김대관 한국항공우주연구원 미래혁신센터장과 김경자 한국지질자원연구원 우주자원개발센터장, 이병선 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 위성탑재체연구실장, 진호 경희대 우주과학과 교수가 달에 대한 자신들의 사랑을 조심스럽게 고백했다.
김대관 센터장은 2020년 항우연 달탐사사업단에 합류한 뒤 단장을 맡아 다누리 개발을 이끌었다. 김대관 센터장에게 달은 즐거움이자 무대고, 직장이다. 다누리 이전에는 멀게만 느껴졌던 달이 지금은 자신의 분신이 맴돌고 있다는 생각에 친숙하다고 한다.
김 센터장이 좋아하는 그리스·로마 신화의 주인공은 포세이돈의 아들인 오리온이다. 어릴 적부터 오리온 별자리를 바라보는 게 좋았다고 한다. 오리온은 달의 여신 아르테미스의 연인이기도 하다. 김 센터장에게 달 탐사는 운명이었을지도 모르는 셈이다.
김 센터장은 “지금은 달 탐사를 일로 하고 있지만, 그냥 어렸을 때부터 달은 남다른 존재였던 거 같다”며 “경제적인 이유나 정치적인 이유에서 달을 탐사하는 측면도 있지만, 우주를 알기 위해 도전한다는 순수한 이유가 가장 크다”고 말했다. 이어 “거꾸로 생각해보면 우리가 달을 가지 말아야 할 이유도 없다”고 강조했다.
김경자 센터장도 달에 대해 애착 이상의 특별한 감정을 느끼고 있다. 김경자 센터장은 달 표면의 물과 같은 저에너지 원소를 측정하는 감마선 분광기를 개발했다. 감마선 분광기가 찾는 물은 달 기지 건설의 핵심인 수소를 확보할 수 있는 중요한 자원이다.
김경자 센터장은 “예전에는 달에 토끼가 있다는 동심과 같은 감정으로 달을 바라봤다면 이제는 자체 개발한 탑재체가 돌고 있다는 생각에 굉장히 특별한 느낌을 받는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우리가 직접 가서 탐사하고 있어 미지의 세계는 벗어났다고 하지만, 달이 생각보다 따뜻하다든지 새로운 사실들이 발견되고 있다”며 “이제는 상상이 아닌 현실적으로 달을 바라보고 있다”고 덧붙였다.
이병선 실장은 추석 연휴를 반납하고 유럽 아제르바이잔으로 향했다. 10월 2일부터 열리는 국제우주대회(IAC)에서 세계 최초로 개발한 심우주 탐사용 우주 인터넷(DTN)을 전 세계에 자랑하기 위해서다. DTN은 달에서 통신이 끊기더라도 노드 단위에서 연결을 복구해 자동으로 데이터를 송수신하는 탑재체다.
이 실장은 과학자로서 달에 대한 의미를 묻자 쑥스러운 듯한 모습을 보였다. 이 실장은 “우리가 개발한 우주 인터넷으로 방탄소년단(BTS)의 ‘다이너마이트’ 동영상을 전송한 사례가 많이 알려졌다”며 “세계 최초의 달 우주 인터넷을 전 세계 과학자들 앞에서 발표할 수 있어 매우 기쁘다”고 말했다. 이어 “올해로 30년 넘게 천문우주를 연구했는데, 최근 달 탐사에 참여하면서 큰 재미를 느꼈다”고 강조했다.
한국천문연구원 출신인 진호 교수는 달의 자기장을 탐구하고 있다. 다누리로 측정되는 달의 자기장을 보고 있자면 궁금증이 걷잡을 수 없이 많아진다고 한다. 남들과 똑같이 바라보던 달이 이제는 하나의 ‘자기장 지도’로 보일 정도라고 한다.
진 교수는 “자연현상이라는 게 탐사를 하면 할수록 궁금증이 더 많아진다”며 “평소에 잘 올려다보지도 않았는데, 요즘은 길을 걸으면서도 자세히 보게 되고, 다양한 생각을 한다”고 말했다. 이어 “달은 인류가 지구에서 살아가는 데 큰 영향을 미치는 천체지만, 그동안은 형이상학적으로 생각하거나 망원경으로 관측해야 했다”며 “달 탐사가 자원을 넘어 원천적인 질문에 대한 해답을 줄 수 있을지 모른다”고 전했다.
한국에게 달 탐사는 이제 첫걸음일 뿐이다. 과학자들은 달을 더 잘 알기 위해선 ‘다누리 키즈(Kids)’가 반드시 나와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김경자 센터장은 “달 과학이라는 게 돈이 많이 들어가는 건 아니지만, 젊은 세대가 현 세대를 이어줘야 발전한다”며 “급속한 발전은 아니더라도 장기적인 계획을 세우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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