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국민해열제 캡슐 열었더니 청산가리…한 동네 7명 죽었다 [뉴스속오늘]

김미루 기자 입력 2023. 9. 29. 05:30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유일한 유력 용의자…2023년 7월11일 사망
[편집자주] 뉴스를 통해 우리를 웃기고 울렸던 어제의 오늘을 다시 만나봅니다.

1955년 출시된 '타이레놀'은 압축된 알약이 아닌 가루가 든 캡슐 형태였다. /사진제공=미국 'CRIME MUSEUM'
해열진통제 '타이레놀'은 약국과 편의점에서 가장 잘 팔리는 일반의약품이다. 코로나19(COVID-19) 대유행 이후 매출이 크게 늘었는데, 엔데믹 이후에도 판매액 기준 부동의 1위를 지키고 있다.

타이레놀 포장재는 작은 상자를 열고 그 안에 씰을 떼어내야 약을 꺼낼 수 있는 형태다. 한번 포장을 뜯어내면 바로 티가 난다. 처음 타이레놀이 출시된 1955년부터 30년 동안만 해도 포장재가 이 같은 형태는 아니었다. 플라스틱병에 여러 알이 들어 있는 식이었다. 약의 모양도 압축된 알약이 아닌 가루가 든 캡슐이었다.

출시 30년 만에 대대적인 변화를 꾀한 데는 1982년 9월29일 벌어진 '시카고 타이레놀 독극물 살인 사건'이 있었다. 존슨앤드존슨(J&J)이 판매하던 타이레놀 캡슐에 누군가 독극물 청산가리를 주입했고 이를 먹은 시카고 소비자 7명이 사망했다. 41년이 지난 지금도 범인을 잡지 못한 채 미제 사건으로 남았다.
형 죽음에 울다 두통 생겨…타이레놀 먹은 동생 부부도 사망
당시 사건을 보도한 신문 지면. /사진=텔레그래프 갈무리
1982년 9월29일 아침 미국 일리노이주, 12살 소녀 메리 켈러만은 감기 기운과 함께 인후통을 앓았다. 그의 부모는 집에 있던 타이레놀 병에서 2알을 꺼내 딸에게 건넸다. 몇 시간 뒤 켈러만은 화장실 바닥에서 쓰러진 채 발견됐고 끝내 숨을 거뒀다.

같은 날 역시 일리노이주, 27살 아담 야누스가 심장마비로 쓰러져 병원에 이송됐으나 숨졌다.

아담의 동생 스탠리와 스탠리의 아내 테레사는 형의 죽음에 슬퍼하다가 두통을 느꼈다. 두통약을 찾던 이들은 아담의 집에서 타이레놀을 발견하고 나눠 먹었다. 스탠리 부부가 쓰러진 채 발견됐다. 스탠리는 당일, 테레사는 이틀 후 사망했다.

아담, 스탠리, 테레사가 갑작스럽게 죽자 당국은 이를 이상하게 여기기 시작했다. 한 소방대원은 메리 켈러만의 이송을 담당한 동료 대원에게도 타이레놀을 먹었는지 확인했고 급사 사고가 아닌 살인 사건이라고 파악했다.
美 국민 해열제…'무차별 독극물 테러'에 쓰여
일리노이주 쿡 카운티 검시관 사무실에 청산가리가 든 타이레놀 캡슐과 아세트아미노펜이 든 캡슐이 놓여 있다. /사진=A&E 보도화면 갈무리
회수한 타이레놀 캡슐 안에는 본래 성분인 아세트아미노펜이 아니라 청산가리 65밀리그램이 들어 있었다. 치사량의 1만배였다. 사망자의 혈액에서도 청산가리 성분이 검출됐다. 사망자 사이에는 연관이 없었고 구입처도 서로 달랐다. '무차별 독극물 테러'였던 것.

현지 경찰은 순찰을 돌며 타이레놀을 먹지 말라고 방송했다. J&J에서도 1억2500만달러(현재 환율 약 1600억원)의 대규모 리콜을 실시했다.

그러나 소식을 미처 접하지 못했던 메리 라이너(당시 27)는 출산 후 찾아온 복통을 해결하려고 타이레놀을 섭취했다가 사망했다. 같은 날 유나이티드항공 스튜어디스 폴라 프린스(35)도 타이레놀을 먹고 숨졌다. 끝으로 메리 맥팔랜드(35)까지 희생되고 나서야 타이레놀 3100만개 병이 모두 회수됐다.

조사 결과 경찰은 의약품 제조 과정에서 독극물이 채워진 게 아니라 시카고 안에서 누군가에 의해 약이 변질된 것으로 파악했다. 누군가 타이레놀을 구입하고 캡슐을 열어 타이레놀 가루를 청산가리로 바꿔치기한 뒤 그 병을 몰래 가게나 약국에 가져다 놓았던 것.

J&J는 현상금 10만달러(현재 환율 약 1억3000만원)를 걸고 나섰지만 범인을 잡을 수 없었다. 회사의 시장점유율은 35%에서 8%까지 추락했다. 그러나 적극적인 위기관리로 3년 만에 시장점유율을 회복하는 데 성공했다.

당시 전량 회수라는 조치를 전격적으로 한 데 이어 제품 보호 방법을 새롭게 개발해 변조 방지 포장을 도입했다. 언론에 회수 상황을 투명하게 공개하고 무료 상담 전화를 설치해 소통 창구를 마련했다. J&J의 위기관리는 현재까지도 훌륭한 사례로 평가받고 있다.
유력 용의자 제임스 루이스, 본격 수사 앞두고 사망
/AP=뉴시스
유일한 용의자가 있었지만 지난 7월11일 사망했다. 용의선상에 올랐던 제임스 루이스는 당시 본인을 '타이레놀 살인자'라고 지칭하며, 사건을 멈추고 싶다면 자신에게 100만달러를 보내라는 협박 편지를 보냈다.

현지 검찰도 루이스가 J&J에 원한을 품을 만한 사정이 있다며 그를 의심해왔다. 루이스의 외동딸이 5살일 때 심장 수술을 받았는데 봉합사가 끊어져 사망했고 그 봉합사 제조사가 J&J의 자회사인 '에시콘'(Ethicon)이었다는 것.

루이스는 1982년 10월1일 J&J에 딸의 죽음과 관련한 항의 메일을 보낸 혐의로 기소됐다. 유죄 판결을 받고 연방 교도소에서 13년간 복역했다. 그러나 독극물 주입과 살인 혐의는 끝까지 부인했으며 유력 용의선상에만 올라 있을 뿐 단 한 차례도 기소되지 않았다.

되레 수사당국에 타이레놀 캡슐을 열어 청산가리를 주입할 수 있는 방법을 설명해주면서 "수사당국이 당시 사건에 대한 조사를 J&J 자체에 맡겨서는 안 됐다"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면서도 수사에 도움을 주는 좋은 시민이 되고 싶었을 뿐이라고 잡아뗐다. 1992년에 한 교도소 인터뷰에서는 "율리우스 카이사르가 어떻게 살해당했는지 말할 수 있다고 해서 그것이 내가 살인자라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며 "타이레놀 살인범은 여전히 거리에서 춤을 추고 있을 것"이라고 했다.

시카고 CBS방송에 따르면 수사당국은 "사건 발생 40주년을 맞은 2022년 9월 비공개 수사를 재개, 충분한 정황증거를 확보하고 2023년 9월 루이스를 독극물 주입 및 살인 등의 혐의로 기소할 예정이었다"고 밝혔으나 루이스가 숨지면서 모든 계획이 백지화됐다.

※ 참고자료
미국 'CRIME MUSEUM' 웹사이트

김미루 기자 miroo@mt.co.kr

Copyright© 머니투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